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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솔직한 이야기

나는 좋아하는 사람이 딱 정해져 있는 것 같다. 이건 내가 위대한 사람이 되긴 애당초 글러 먹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위대한 사람의 절대적 조건 중 하나는 스스로 어떤 사람은 좋아한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 말을 함으로써 이미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사람들을 적으로 만들기 때문이다. 난 그런 위대한 사람이 될 생각이 없고 되려고 노력하지도 않고 되어야만 하는 이유를 갖는 직업이나 생활을 하지 않기 때문에 그로부터 자유롭다. 그래서 내가 정말 좋아하는 사람을 마음껏 이야기한다.

2006년 9월 현재 지난 12개월 간 내가 새롭게 좋아하는 사람은 다섯 명이다. 와우! 정말 많다. 아마 지난 10년 간 좋아했던 사람보다 12개월 사이에 더 많은 사람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주변 사람들의 이야기처럼 '블루문도 좀 둥글어 진 것 같아'라는 평가가 맞지 않나 싶은 착각까지 하게 된다.

하나. 현미씨.
올해 서른이 된 여성이다. 우연히 누군가 소개로 3년 전에 만났고 함깨 이지스를 기획, 개발하며 온갖 일을 다 겪었다. 심지어 어느 날 그녀는 내 잔소리와 비판을 견디지 못하고 업무 시간 중에 가방 들고 뛰쳐 나가기도 했다. 물론 그 다음 날 아침 멀쩡하게 다시 출근했다. 우리는 그 사건을 '울어라, 캔디야'라고 부른다. 그녀는 내가 회사를 만들 것이며 함께 일했으면 좋겠다고 말할 때 일고의 여지 없이 "같이 합시다"라고 대답했다. 내가 그 이야기를 하기 위해 몇 개월을 고민했는데 그녀는 너무 쉽게 대답했다. 지금 그녀는 몇 시간 전까지 야근을 하며 엉뚱한 내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일했다. 정말 멋진 친구다. 나는 그녀에게 내 기술과 insight를 완벽히 전수하기 위해 비실비실 졸면서 옆에 앉아 있었다.

둘. 병근님.
나보다 두 살이 많은 병근님, 대학교 때 우리 또래를 정말 많이 괴롭혔던 소위 70년 개띠에 속한 분. 1999년 후반 이 분은 마치 지금 '블루문'처럼 만났다. 당시 나는 'skyhawk'라는 닉네임으로 유명했고 이 분은 내 홈페이지의 팬이었다. 그와 만남은 6개월 만에 처참하게 끝났다. 나는 그 이후 거의 3년 이상 당시의 트라우마를 극복하지 못하고 깊이 방황했다. 그를 다시 만난 게 아마 18개월 쯤 된 것 같다. 그는 여전했고, 나도 여전했다. 아마 그래서 우리는 다시 만나서 과거의 아픔을 금새 극복하고 지금 새로운 이야기를 하고 있는 지 모른다. 나는 그의 능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고 그는 자신의 능력에 겸손하다. 나는 새로운 관계를 제안했지만 늘 그에게 미안하다. 그가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인 지 알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냥 그에게 '대안'이 되기로 했다. 그가 나를 선택하면 새로운 무엇을 시작하는 것이고 그렇지 않더라도 관계없다. 어떤 관계는 매우 오랜 시간 동안 증명해야 하는 것이다. 그와 내가 만난 지 7년이 되었으니 앞으로 7년을 더 기다려도 관계없다.

셋. 지회형.
올해 마흔인데 여전히 20대 초반의 고민을 대수롭지 않게 서로 나누고 있는 형이다. 나는 형에게 모든 이야기를 하고 형은 새벽 2시에도 아무런 부담없이 내게 연락을 한다. 나는 그런 연락을 정말 당연하게 생각하고 전화를 받는다. 형은 386세대라고 불리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대학교에서 데모 한 번 제대로 한 적은 없었다고 한다. 그는 기타를 '정말' 잘 친다. 가끔 그의 기타를 듣고 있으면 '저 인간이 왜 사업을 하려고 할까?'라는 고민에 빠진다. 그냥 기타 치면 대성할텐데 말이다. 형은 내가 이지스를 만들 수 있게 했다. 내가 다시 이 바닥으로 돌아올 수 있게 만든 사람이다. 지금도 많은 도움을 주고 받고 있다. 그런데 그게 핵심이 아니다. 형과 나는 그런 게 없어도 그냥 만난다. 일요일 밤 11시에 만나서 여기저기 쏘다니며 잡다한 이야기를 한다, 아무런 일이 없어도. 얼마 전에 형과 나는 약속을 한 게 있다, 돈 많이 벌면 일 년에 한 번은 서로 좋아하는 것을 위해 여행을 떠나자고. 서로에게 희망을 주는 관계는 정말 중요하다. 형은 늘 내게 0순위고 나도 형에게 그래야 한다고 믿는다.

넷. 노사장.
정석님은 표현하기 좀 그렇다. 노씨? 노군? 정석군? 정석씨? 머시기 아빠? 이런 저런 생각을 하다 그의 지위와 그의 비전을 생각했을 때 노사장이 좋을 듯 했다. 그래서 계속 노사장이라고 부르는데 이 친구는 나를 늘 '블루문님'이라고 부른다. 어이, 나도 회사 대표란 말야! 노사장의 존재를 처음 안 것은 벌써 10년 가까이 되었다. 그가 해킹으로 세간의 화제가 되었던 과거의 일 말이다. 나는 완벽히 그 존재를 잊고 있었는데 그가 다가왔다. 테터툴즈를 중심으로 한 회사가 만들어졌다는 걸 알고 그와 인터뷰를 하면서 나는 과거의 기억을 다시 복구할 수 있었다. 아! 이 친구가 그 때 그 친구였구나. 우연히 이어졌던 석찬과의 그 얄팍하며 끈질긴 관계(* 일 년에 한 번 만나며 그래도 가끔 만나긴 하는)도 다시 기억에 떠 올랐다. 덕분에 요즘도 노사장에 대한 기사는 '위대한 해커' 어쩌구하는 이야기로 흘러 간다. 그 이야기를 먼저 쓴 게 나라서 꽤 미안하다. 잊고 싶은 과거였을 수 있을텐데 말이다. 노사장과 나는 사적인 관계로 만났고 최근엔 업무적 관계로 만난다. 그러나 나는 그가 무언가를 원하고 내가 그것에 도움을 줄 수 있다면 언제든 만난다. 내 입장은 그렇다. 뭔가를 줬을 때 그것이 의미있다면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게 내 입장이다. 나는 그가 내 입장을 이해하는 동안은 언제든 만날 수 있다고 본다. 더구나 그는 요즘의 소위 IT 사업자 중에선 가장 똑똑한 사람 중 하나다. 오늘, 어쨌든 그는 내 이야기를 들으려 하고 나 또한 그의 요청을 받아 들인다. 뭐 그 정도면 된 것 아닌가? 벤처라는 게 원래 어드벤처의 약자니까 모험적인 관계는 늘 의미있다.

다섯. 김이사.
동갑내기 이 친구는 자신을 숨기는데 익숙하다. 하는 일이 그랬고 만나는 사람에 대한 보안을 유지하는 것이 자신의 신뢰를 보장하는 기초적인 룰이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이 친구와 만남은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기'였다. 그냥 내가 쓴 글을 읽다 보니 좋았다고 했다. 그리고 몇 개월 후에 어떤 일을 하자는 말을 했고 또 몇 개월이 지나서 진짜 일을 의뢰했고 지금은 그 일을 하고 있다. 그는 내가 정말 싫어하는 관계를 만들어 버렸다. 친구와 함께 일하는 것. 나는 그런 걸 정말 싫어 한다. 친구는 친구, 일은 일이라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친구와 함께 일을 하면 최악의 경우 친구를 잃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친구와 일을 하는 건 철저히 거부했다. 어쩌면 이 친구는 목적의식적으로 내게 접근했을 수 있다. 한 동안 그것 때문애 깊이 고민했다. 나는 사업을 하기 위해 든든한 업체가 필요했다. 하지만 아무리 대단한 놈들이라도 친구와 교환할 가치는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나는 그의 제안을 받아 들였고 심지어 내가 믿고 의지하는 사람들도 함께 이 사업에 끌어 들였다. 내가 실수하고 있는 걸까? 내가 원칙을 어긴 걸까? 일단 12개월을 더 지켜보기로 했다. 그 동안 내가 변할 것이고, 그가 변할 것이고, 내 친구들도 변할 것이다. 나는 예언가가 아니다. 하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인간은 변하지만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나는 김이사의 본성을 봤고 그것이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내가 친구와 사업을 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어겼을 때 스스로에게 한 조건부 약속이다. "본성은 변하지 않는다"


그리고...

서른 다섯 살의 나는 늘 외로웠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그건 정말 이기적인 생각이었다.  대부분의 순간에 늘 내 주위에는 나를 보는 사람들이 있었고 그들 덕분에 나는 여전히 생존하고 있었다. 나는 참 이기적이었다. 손으로 꼽아 보니 나를 믿고 나에게 말을 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늘 그들을 번외로 두고 삶의 가치를 생각했던 나는 이기주의자였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더 나이가 들기 전에 이걸 깨달았다. 그래서 오늘 이런 이야기를 했다, 내가 좋아하고 내가 믿고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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