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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뭔가를 다시 하기엔 너무 늙었다

우리는 원칙적인 이야기를 쉽게 합니다. 새로운 무엇에 도전하려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자주 합니다,

  

"뭔가 다시 하기에 너무 늦었다 싶을 때가 바로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시점이다."

  

그러나 정작 이런 조언에 합당하게 스스로 행동하느냐 물으면 할 말을 잃곤 합니다.

 

 

며칠 전 한 프로그래밍 커뮤니티 QnA 게시판에 누군가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30대 중반인데 프로그래밍을 배워 미래를 준비하려 합니다. 너무 늦지 않았을까요?"

 

이 질문에 어떤 답변이 있었을까요? 예상한 답변들이 나옵니다. 

 

- 대단하다

- 새로운 도전 자체가 의미있다

- 힘내라

 

그리고 곧이어 현실적인 조언이 나옵니다

 

- 전공이 뭐냐?

- 이 바닥도 경쟁이 치열하다

- 공부해야 할 것이 아주 많을텐데 머리가 굳어 힘들 것이다

 

이런 조언이 나오자 보다 강력한 현실적 조언을 하는 사람도 나옵니다.

 

- 전혀 관계없는 일을 했고 전공도 다른데 이제와서 준비하는 건 위험하다

- 가장으로서 책임도 생각해야 한다

- 프로그래밍 뿐만 아니라 어학 실력도 키워야 한다

- 나이가 너무 많은데 어린 상급자 밑에서 일할 수 있겠나

 

질문자가 답변을 하자 더 심한 이야기도 나옵니다.

 

- 회사를 먼저 그만둔 건 잘못이다, 좀 개념이 없는 것 같다

- 막연하게 프로그래밍 배울 바에야 차라리 치킨집 준비가 낫다

- 대기업 과장이라면서 그 정도 개념도 없나

- 프로그래밍을 너무 쉽게 보는 것 아닌가

 

 

질문과 대답을 보며 여러가지 생각을 했지만 가슴 깊이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사람들은 남들 삶에 흔하게 조언하며 정작 자신의 이야기는 하지 않는구나."

 

조언을 하신 분들이야 진심을 담아서 했겠으나 정작 질문자의 마음을 이해하고 질문자가 전혀 새로운 길을 선택하는 어떤 상황을 이해하려는 생각은 별로 없었던 것 같습니다. 질문자가 프로그래머의 길을 가겠다고 어떤 게시판에 공개적으로 이야기하고 조언을 구할 때 특히 그의 나이가 적지 않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더 많은 고민을 했을 겁니다. 질문자가 자신의 고민을 공개한 것은 아마도 주변에 공감할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누가 보더라도 질문자의 선택은 바보같은 짓이니까요. 


질문자는 처음 질문을 할 때 자신의 상황을 거의 밝히지 않았습니다. 나이만 이야기했죠. 그러다 답변을 하며 어떤 일을 하고 있고 어떤 대우를 받고 있으며 가족 관계가 어떠하고 대학에서 어떤 학습을 받았다는 이야기까지 하게 되었죠. 사람들은 그런 정보를 바탕으로 질문자에게 더 많은 조언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조언은 점점 변질되어 "차라리 닭집 사장을 해라."는 식의 막말(?)까지 나오게 됩니다.

 

어떤 질문에 조언하는 것은 쉽습니다. 그러나 조언을 하기 위한 조건으로 '책임감'을 제시하면 어떨까요? 자신이 한 조언에 대해 자신도 똑같이 행동할 것이라는 조건을 걸면 어떨까요? 이런 조건부로 조언을 할 사람은 별로 없을 겁니다. 우리는 매우 자주 '도움 될만한 참고 이야기'라는 핑게로 책임지기 힘든 배설을 하는 경우가 있지 않나 반성합니다.

 

저는 그 분이 훌륭한 프로그래머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게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래서 "힘내세요, 저도 같은 길을 가려고 합니다."라고 댓글을 달았습니다. 백 마디의 조언보다 더 힘이 되는 것은 "나도 그래."라고 말하는 게 아닌가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