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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알바 뛰는 택시 기사들

이 기사는 모든 택시 기사들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며 또한 택시 기사를 비난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다. 미리 밝혀두지 않으면 또 뭐라고 할까봐 겁나서 이야기한다.







자가용이 없는 관계로 하루에도 몇 번씩 택시를 타곤 하는데 버릇이 된 건지 다른 지방에 가서도 택시를 자주 탄다. 그런데 택시를 타다 보면 가끔 택시 기사들이 알바를 뛰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때가 있다. 특정 업소 소개, 특정 장소 소개는 흔한 일이고 심한 경우 상품 소개도 하는 경우가 있었다. 오늘도 그런 일이 있었다.

내일모레면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지만 나는 아직 운전 면허가 없다. 별 다른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고 운전 면허가 없어도 사는데 별 지장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가용이 없어도 대중 교통과 택시의 환상적 콤비네이션이면 최소한 서울 시내에서 이동하는데 불편함은 전혀 없었다. 물론 크리스마스 이브에 술 마시다 강남역에서 두 시간 동안 택시 못잡았던 아픈 추억을 제외한다면.

오늘 운전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택시를 타고 이동하던 중 어처구니 없는 일을 겪었다. 그 일이 이 글을 쓰게 만든 계기다. 알바 뛰는 택시 기사에 대한 이야기 말이다,


1. 내가 이야기하면 몇십만 원은 깎아 주는데...

인터넷에서 수없이 많은 검색을 한 후 집에서 가까운 운전학원에 등록하기 위해 택시를 탔다. 이미 많은 검색을 통해 대략의 가격대를 알고 있었고 일반 운전학원이 아니라 전문학원을 선택한 것도 운전 경험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다. 속성학원도 있다지만 그냥 제 돈 내고 느리더라도 제대로 배우고 싶었다.

택시를 타고 그냥 갔으면 될 일인데 심심하다고 말을 건낸 게 화근이었다,

"요즘 운전 면허 따는데 비용이 너무 비싸요."

이 한 마디에 택시 기사는 귀신같이 눈치를 채고,

"운전 배우러 가시나봐요?"

라고 한다. 늦은 나이라 쑥쓰러운 마음에 그렇다고 하니 운전 면허에 대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대뜸 내 집이 어디냐고 한다. 아까 탄 곳이라고 하니까 왜 거기를 가냐며 더 가까운 곳에 좋은 학원이 있다고 한다. 물어 보지도 않고 휴대전화를 들더니 어디다 전화를 한다. 통화가 되지 않자 이야기를 시작한다,

"**역 근처가 다니기 훨씬 편할텐데요. 거기가 잘 가르쳐 주기로 유명하고 합격율도 높아요."

문득 기분이 묘해졌다, 나한테 제안하는 건가? 이미 충분히 검토하고 신청하러 가는 학원이라고 말했더니 한참을 더 이야기하며 자신이 이야기하면 몇 십만원을 절약할 수 있다고 한다. 이런 이야기는 인터넷에 널리고 널렸기에 "이왕 가기로 한 학원이니 그냥 가렵니다"라고 했더니 갑자기 태도가 급변한다.

"아니 좋은 뜻으로 이야기하는건데 태도가 왜 그래요"

라며 일장 연설을 시작한다. 자기가 좋은 뜻으로 이야기했는데 내가 호의를 거절했다는 듯 막말을 하기 시작했다. 화가 났지만 택시 타고 있는 손님이 무슨 힘이 있나. 핸들 확 꺽어 버리면 끝장인데. 성질을 누르고 "좋은 뜻인지 알지만 그냥 그 학원으로 가 주세요"라고 했다. 그래도 계속 연설이다. 자신의 처남도 멀리서 자신이 추천한 학원을 다녔다며 뭔가 실수한다는 이야기도 했다. 자신이 학원 원장이랑 친해서 직접 추천하면 몇 십만원 절약할 수 있다고 투덜거린다.

겨우 학원 앞에 도착했는데 6천원이던 미터기 요금이 서자마자 1백원이 올라갔다. 내가 예전에 이야기했듯 1백원 갖고 뭐라고 하지 않는다. 방금 올라간 1백원으로 내가 뭐라고 할 것이라 생각했는지 만원짜리를 주니 머뭇머뭇한다. "잔돈으로 주세요"라고 했더니 9백원을 준다. 기분이 드럽기 이를데 없었다. 예전에 한 이야기를 번복하고 싶었다.



2. 그 횟집이 싸고 맛 좋아요...

올해 8월이다. 어머니 생신이라 오랜만에 가족들이 부산에 모였다. 해운대 근처에 콘도를 잡고 휴식을 취하기로 했다. 이틀째 되는 저녁에 동생이 아는 횟집에서 식사를 하기로 하고 콘도를 나와 택시를 잡으려는데 앞에 대기 중인 택시에서 기사가 튀어 나왔다.

"어디 가세요?"

근처 횟집으로 가려고 한다니 반색을 하며 타라고 한다. 네 명이 택시를 타고 행선지를 이야기하고 출발했다. 출발하자마자 택시 기사가 횟집이 어디냐고 다시 묻는다. 해운대 어디라고 이야기를 하자 대뜸

"거기 바가지고 횟감도 안 좋아요"

라고 한다. 그 횟집은 동생이 몇년 동안 다녔던 곳이고 집 주인도 잘 아는 곳이다. 그래도 그 동네 지리에 밝은 - 대개 그렇다고 믿지 않나? - 택시 기사가 악평을 하니 묘한 마음이 생긴다. 그렇게 좋지 않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이 잘 아는 횟집이 있으니 거기로 모시겠다고 한다. 이미 전화로 예약을 해 둔 상태라 힘들다고 했더니 관계 없다면서 거기로 갈 것이냐고 물어 본다. 그 때 뒷자리에 있던 동생이

"아저씨 그냥 거기로 가 주세요"

라고 했다. 그 말에 택시 기사는 입을 다물더니 몇 초 지나지 않아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으며 이렇게 말한다,

"아이고, 이거 큰일 났네. 제가 아까 거기에 휴대전화를 두고 왔어요. 지금 다시 돌아가야겠는데, 손님들 여기서 내리시면 안될까요? 택시 요금은 받지 않겠습니다."

택시를 탄 지 5분도 지나지 않았다. 우리가 예약한 횟집까지 가려면 아직 먼 거리였다. 나는 무슨 소리인가 싶어 고개를 갸우뚱했지만 휴대전화를 놓고 왔다니 돌아가는게 맞겠다 싶어 택시를 세우자 내렸다. 그 때 동생이 소리를 질렀다,

"아니 이 아저씨가 무슨 소리를 하는 거에요. 택시를 탔으면 끝까지 가야지, 여기서 내리면 어떻게 가라는 거에요!"

그래도 택시는 묵묵히 정차를 해 버렸고 가족들은 택시에서 내려야했다. 내려서도 나는 분위기 파악을 못하고 있었는데 그제서야 동생이 찬찬히 상황을 설명해줬다,

"저 택시 기사 자기가 아는 횟집에 못 데리고 가니까 우리보고 내리라고 한 거야. 그 횟집에 데리고 가야 리베이트를 받거든. 정말 짜증난다. 여기서 어떻게 다른 택시 잡으라고."

그제서야 분위기 파악이 되었다. 콘도 앞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자신이 아는 횟집에 데려가면 택시비도 받고 소정의 사례(리베이트)도 받으니 일석이조인 것이다. 그래서 콘도 앞에 그렇게 택시가 많았던 것이구나. 멍청한 나는 그것도 모르고 '아저씨가 휴대전화를 잃어 버렸으니 빨리 가셔야지'라고 생각했다.


3. 안 멀어요...

올해 5월에 친구들과 경주에 놀러 갔을 때 일이다. 경주는 20대 때 오고 처음이었다. 더운 여름 날에 걸어다니는 땀 분수대가 되었던 기억이 생생하다. 이번엔 모 호텔에 여장을 풀고 여유있게 대중 교통도 이용하며 관광을 했다. 마지막 날 호텔 근처에 있는 관광지에서 몇 시간 구경을 한 후 저렴한 저녁 식사를 다짐했다.

택시를 잡으려 했는데 그날 따라 택시가 너무 오지 않았다. 30분 정도 기다린 끝에 근처 가게에 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콜 택시를 요청했더니 금세 택시가 도착했다. 호텔 근처에 있는 식당가로 가자며 출발했다. 출발한 지 몇 십초 지나지 않아 택시 기사가 식사를 할 것이냐고 물었다. 그렇다고 하니 자신이 잘 아는 저렴하고 맛 있는 식당이 있다고 한다.

얇은 귀가 팔랑 거리기 시작했다. 쌈밥을 매우 잘하는 집이라며 가격도 저렴하다고 했다. 얼마냐고 물었더니 1인당 8천원 정도라고 한다. 게다가 경주에서 알아주는 집이라고 한다. 그 정도면 괜찮다. 거기로 가자고 했다. 택시 기사는 오케이 싸인과 함께 달리기 시작했다.

쌈밥집에 도착했다. 택시비가 1만 5천원이 나왔다. 쌈밥집에서 1인분 가격은 8천원이 맞았다. 원래 우리 계획은 호텔 근처의 5천원 하는 순두부집에서 저녁 식사를 해결할 계획이었다. 결론은 우리, 아니 그 결정을 한 내가 바보였다.



이 글을 읽은 사람들은 아마 이렇게 이야기할 것이다, '나잇살 처먹고 알바하는 택시 기사한테 당한 니가 바보지' 맞다, 내가 바보다. 택시 기사님들이 손님에게 정직하게 뭔가 조언할 것이라고 믿었던 내가 바보다. 그래서 지금 이야기한 세가지 경우 말고도 당한 것이 한 둘이 아니다. 그런데 나는 지금도 바보짓을 거듭하고 있다. 세상 모든 택시 기사가 알바를 위해 손님들에게 강권하거나 거짓말하거나 사기를 친다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일부 택시 기사들이 그런 짓을 하고 내가 운 없게 그 경우에 걸렸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게 너무 자주 발생한 건 내 운이 없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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