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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새로운 웹 2.0 서비스, 소재의 고갈

최근 만났던 세 분이 우연히 같은 이야기를 했다,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없는 것 같다"



이 세 분은 서로 공통점이 없지만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거나 발견해야하는 과업을 갖고 있었다. 한 분은 기존 회사를 운영하며 새로운 수익원을 발굴하기 위해, 또 다른 한 분은 회사의 신규 사업을 발굴하기 위해, 한 분은 투자할 회사를 찾기 위해 새로운 웹 서비스를 찾고 있었다. 그 분들이 탄식처럼 내 뱉은 이야기는 이런 것이었다,

"웹 2.0 이후에 많은 서비스가 나오리라 예상했는데 그렇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 2년 간 나온 웹 서비스들도 특별하고 주목할만한 것은 없었던 것 같다. 요즘은 심지어 새로운 웹 서비스를 위한 소재가 고갈된 것은 아닌가 싶기도 하다. 스스로 아이디어가 없는 것을 보면 소재의 고갈은 나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조금씩 자신의 상황에 따라 다른 이야기를 했지만 소재의 고갈에 대한 답답함을 호소하는 것은 다를 바 없었다. 그러나 나는 다른 생각이 들었는데, 그 동안 우리가 새로운 웹 서비스를 위한 소재를 탕진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우리는 실제 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상상하기만 했고 그 과정에서 소재를 탕진해 버린 것이 아닌가 싶었다. 이런 저런 것을 상상하고 그 상상 속에서 무엇이 가능하고 가능하지 않은지 판단해 버림으로써 소재를 써 보지도 못하고 날려 버리는 것 말이다.

새로운 웹 서비스를 위한 소재의 고갈은 소재 자체의 실현 가능성을 문서와 상상으로 끝내 버린 결과라고 생각한다. 누구도 상상한 것이 현실화되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 지 예측할 수 없다. 그럼에도 단지 상상하는 수준에서 소재를 사용해 버리고 또한 토론 수준에서 그 소재가 무의미할 것이라고 판단해 버린다. 그런 과정을 통해 현실화되는 소재는 별로 없고 논의되는 소재만 많아진다. 생각과 말로 소재를 탕진하는 건 전형적인 책상머리 기획자의 태도다. 작은 프로토타입(prototype)이라도 만들어 보고 "그 소재는 새로움이 없다"고 말한다면 이해한다. 그러나 머릿 속에서 생각하고 말로 이해하고 문서로 정리하며 끝내 버린 소재라면 그것이 의미없다 단정하기 힘들다.

다시 말해 새로운 웹 서비스를 찾는 사람들이 요즘 겪는 "소재의 고갈"은 사실은 실천력이 부족하거나 고민의 시스템에서 실천의 요소가 없기 때문에 발생하는 자기 갈등이지 현실이 아니다. 새로운 웹 서비스로 만들 수 있는 소재는 무궁무진하다. 방금 떠오른 소재 하나가 있다. 야밤에 글을 쓰는 '나'를 스스로 바라보며 내 상태를 기초로 이런 웹 서비스를 하나 생각해 봤다.

- 지금 시각 새벽 1시 30분. 나는 이 시간에 글을 자주 쓴다. 그런데 이 시간대에 깨어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더구나 글을 쓰거나 뭔가 일을 하는 사람도 그리 많지 않다.

- 그러나 또한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대에 깨어 있다.

- 이런 사람들을 위한 커뮤니티를 하나 만들자. 단 이 커뮤니티는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만 글을 쓸 수 있다. 웹 사이트도 이 시간대에만 열린다.

- 사이트 이름은 "night mate"로 하자. 도메인은 night-mate.com으로 하자.

- 주요 콘텐츠는 야밤에 잠 못드는 사람들과 연계된 콘텐츠로 구성한다. 콘텐츠 구성의 아이디어는 주요 키워드와 연관 키워드에서 찾는다. 예를 들어 네이버에서 "야식"으로 검색을 하면 관련 키워드로 "야식 배달", "야식 메뉴", "족발" 같은 것이 나타난다. 주요 콘텐츠 중 "야식"의 하위 메뉴를 "주변 야식 배달 식당", "야식에 가장 좋은 메뉴", "족발에 대한 고찰"과 같은 것으로 구성할 수 있겠다.

- 메인 페이지에는 현재 접속 중인 사람들의 목록이 보이도록 하자. 목록을 보기만 해도 어떤 이유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있는지 알 수 있도록 하자. 5가지 정도의 현재 상태를 나타내는 아이콘 - 불면증, 철야, 공부, 오늘만 우연히, 약속 - 을 만들자. 상태 표시를 통해 서로의 상태를 직관적으로 볼 수 있도록 하고 메시지를 쉽게 주고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구현하자.

- 이 웹 서비스는 늦은 밤에 잠 들지 못하는 어떤 사람들의 커뮤니케이션을 위한 것이다. 늦은 밤은 감성이 자극되기 쉬운 시간대다. 느슨한 이성와 활발한 감성, 때문에 짧은 이야기로도 쉽게 친해질 수 있다. 짧은 이야기를 주고 받을 수 있는 가벼운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고안하자. 로그인이 필요없는 익명 게시판이 좋겠다.

위 메모를 쓰는데 정확히 7분 걸렸다. 이 간단한 메모를 끝내고 나는 제로보드나 phpBB, 텍스트큐브를 이용하여 간단한 프로토타입을 만들어 볼 수 있을 것이다. PHP든 JSP든 Ruby든 자신이 쓸 수 있는 도구가 있다면 그걸로 만들자. 심지어 Visual Basic으로 만들어도 관계 없다. 웹에 대한 건 웹 툴로 만들어야 한다는 편견부터 버리자. 프로토타입은 뭐든 빨리 만들 수 있는 것으로 하면 된다. 약 2~3일 정도면 프로토타입 사이트를 만들 수 있다. 이후 네이버, 다음 등 포털에 사이트를 등록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메타 블로그나 평소 다니는 카페 혹은 메신저를 통해 아는 사람들에게 사이트를 소개하여 최소 100여 명의 최초 사용자를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100명을 확보하지 못하면 평소 인간 관계의 척박함을 의심해 보자.

4주 정도 사이트를 운영해 보고 이 사이트를 크게 키울 수 있을 지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만약 사이트가 잘 운영되지 않고 방문자도 재미가 없다고 소리치면 그 때 "이런 소재는 답이 나오지 않는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이런 소재는 일단 기각할 수 있다. 아니면 만들어진 프로토타입을 기준으로 좀 더 세련된 콘텐츠와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갖춘다면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문제는 상상으로 끝내는 것이 아니라 직접 해 보는 것이다. 그 이후에 이 소재가 정말 재미없거나 재미있다는 판단을 할 수 있다.

물론 똥인지 된장인지 퍼 먹어봐야 아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맞는 말이다. 만약 웹 서비스 기획을 전문으로 하는 내가 "만들어봐야 안다"고 말하면 어떤 고객이 "아이구, 맞습니다"라고 응답할까. 그러나 매일 새로운 웹 서비스만 생각하고 사는 나조차 어떤 소재가 성공할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쌀로 밥을 할 수 있다는 건 모두 알고 있지만 쌀알로 예술품을 만든다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한다. 실제로 그런 일 - 조그만 쌀알에 시를 적거나 사람 얼굴을 그리는 예술가 - 을 하는 경우도 있다. 단지 어떤 소재만으로 상상하는 것은 소재를 탕진하는 행위다. 하나의 소재가 수백, 수천가지의 실천적 과제를 만들어 낸다. 그 과제 하나하나를 평가하고 가능성을 타진해야 한다. 하나의 소재를 단지 하나의 과제로 바라보기 때문에 새로운 웹 서비스가 나오지 않는 것이고 그런 웹 서비스를 기다리는 사람들이 "소재의 고갈"이라고 탄식하는 것이다.

문제는 상상력과 스토리텔링(story telling : 이야기 풀어내기)의 부족이지 소재의 고갈이 아니다. 소재는 과거에도 그랬고 현재도 무궁무진하다.


또 다른 이야기 하나. 새로운 웹 서비스를 기획하거나 찾는 분들이 "소재의 고갈"을 이야기하는 게 반드시 그들의 상상력 부족과 스토리텔링의 부족 때문은 아니다. 실질적인 이유가 있다. 1990년도 후반 국내에서 IT 산업이 중흥할 때 수 많은 아이디어성 웹 서비스가 나왔다. 그로부터 10여년이 흐른 지금 우리가 모두 인정하는 명제가 하나 있다,

"재미있는 아이디어가 돈이 되지는 않는다"

비록 어떤 회사나 어떤 투자자가 재미있는 아이디어만 있어도 돈을 쏟아 붓겠다 약속하더라도 그 이야기의 진실은 사실 이런 것이다.

(순식간에 수백만 명의 사용자를 모을 수 있는)재미있는 아이디가 있으면 (그리고 수익 모델이 있어야겠지) 언제든 내게 알려 달라. 그럼 돈을 주겠다!

재미는 있는데 일년 동안 웹 사이트 운영해봐야 사용자 10만 명에 일일 방문자 1만 명 정도라면 수익성을 보장하는 웹 서비스가 아니다. 이 과제를 푸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런 측면에서 "소재의 고갈"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 돈 쓸만한 소재가 없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인기도 있고, 돈도 잘 버는 웹 서비스를 만드는 게 어디 쉬운 일인가? 그런데 그런 소재만 찾는 사람이 있다면 그건 소재의 고갈 문제가 아니라 욕심이 과한 것이다.

요즘 인기 있다는 웹 서비스를 보면 수익을 제대로 거두고 있는 곳은 거의 없다. 아니 없다. 유튜브, 디그닷컴, 플리커, 오커트, 판도라TV, 올블로그, 티스토리, 트위터... 국내외에서 지난 2년 사이 웹 2.0 서비스로 불리는 이런 류의 웹 서비스 가운데 자랑할만한 수익을 거두고 있는 업체는 없다. 단지 많은 사람들이 쓰고 있고 그들의 요구를 충족시키고 있을 뿐이다. 이들 중 어떤 웹 서비스도 전면적 유료화나 부분적 유료화를 단행한 업체는 없다. 기껏해야 '프리미엄 서비스' 정도의 이름으로 좀 더 나은 기능이나 저장 공간을 제공하는 조건으로 돈을 조금 벌고 있을 뿐이다.

이 업체들 중 어떤 업체는 좋은 수익 모델을 "발전"시킬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현재 이들은 일일 방문자나 수집한 콘텐츠의 숫자로 가능성을 증명하고 있을 뿐 실제 투입 비용 대비 수익은 미미한 수준이다. 이게 잘못된 걸까? 아니다. 새로운 웹 서비스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인기를 끄는 데 걸리는 시간과 투입되는 자원도 막대하다. 그런 서비스가 실질적인 수익을 거두려면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새로운 웹 서비스, 창의적인 웹 서비스가 나오지 않는다는 탄식은 현실이다. 그러나 그 탄식의 이유가 더 이상 새로운 소재가 없기 때문은 아니다. 굳이 탓하자면 상상력과 스토리텔링의 부족을 이야기할 수는 있다. 또한 시대가 변하면서 단지 재미있는 아이디어 뿐만 아니라 실질적인 이익을 가져올 수 있는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것도 고려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히 한 가지 사실을 인정해야 한다. 재미도 있고 수익도 동시에 발생하는 환상적인 소재는 처음부터 없었다. 과거에도 없었고 현재도 없다. 미래에도... 아마 없을 것이다.

싸이월드 미니홈피가 도토리라는 사이버머니를 통해 수익을 발생시키며 SK컴즈의 주요 수익원이 되었음을 아는 사람은 많다. 그러나 SK컴즈가 싸이월드를 인수하기 전 2년에 대해 언급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 2년 동안 싸이월드는 막대한 투자 비용을 감수하며 마이너스 수익을 감수해야 했다. 웹 서비스의 비즈니스는 그런 것이다.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돈을 벌어대는 웹 서비스는 없다. 그러나 시작하자마자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막대한 트래픽을 확보할 수는 있다. 이게 중요한 것이다. 바로 돈 버는 건 힘들지 몰라도 사용자의 관심을 끌고 그들의 일상 생활을 장악하는 웹 서비스는 지금도 존재한다.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위해 다른 웹 서비스를 비교 분석하며 자신들이 원하는 것만 보길 원한다. 실제로 그렇게 될 가능성이 없다는 걸 뻔히 알면서 부정하고 싶어 한다. 그리고 이야기한다, "새로운 웹 서비스가 없어. 이제 더 이상 나올 소재가 없나봐"라고. 과연 2007년 12월, 대한민국에서 새로운 웹 서비스, 루키가 나오지 못하는 게 그런 이유 때문일까? 아니면 상상력과 실천력의 부족 때문일까? 대답은 여러분이 알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