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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기획의 천재성, 모짜르트와 살리에르

영화 <아마데우스>는 모짜르트의 전성기에 그를 흠모하며 시기했던 살리에르의 애증을 다룬 영화다. 때문에 이 영화는 모짜르트의 생애와 음악을 매우 많이 다루고 있지만 사실 살리에르를 주인공으로 바라 본다면 완벽히 다르게 해석될 수 있는 영화다. 살리에르는 모짜르트를 일단은 흠모했다. 그의 천재성에 반했고 그래서 한 동안 그를 후원하기도 한다. 그러나 아무리 노력해도 자신의 능력이 모짜르트에 비할 바 없음을 깨닫게 되었을 때 흠모의 마음은 애증으로 변하고 다시 분노로 변한다. 결국 모짜르트를 죽음으로 유도하는데 일조한다.

이 영화의 시놉시스는 역사적 사실과 많은 차이가 있다. 그러나 노력으로 결코 따라 잡을 수 없는 천재성에 대해 생각할 때 늘 이 영화를 떠 올리곤 한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기획이라는 일은 대부분의 경우 천재성이나 창조성 보다는 유능함과 성실함에 의해 업무 능력이 결정된다. <무슨 대리 기획 천재 되기>라는 제목의 책이 있는 걸로 아는데 이 책은 기획에 대한 천재성이 있는 자가 아니라 그저 남에게 욕 먹지 않고 훌륭하게 기획을 하고 싶은 사람을 위한 책이다. 아니다, 그런 사람을 위한 처세와 요령을 알려 주는 책이라고 보는 게 맞다.

그러나 가끔 아주 가끔 기획자에게 천재성이 요구되기도 한다. 이럴 때 천재성이 없는 기획자는 늘 '토론'이라든가 '회의'라든가 '연구'와 같은 단어를 방어막 삼아 일단 견디는 경향이 있다. 그렇게 '토론'하고 '회의'하고 '연구'한 결과 누가 봐도 뻔하고 뻔한 결과물을 기획 산출물이라고 내 놓곤 한다. 우리는 흔히 누구든 기획을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맞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은 창조력이나 천재성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조금만 겸허하게 자신을 바라 본다면 우리들 대부분은 자기 속에 창조력이나 천재성이 없다는 걸 쉽게 깨닫는다. 깊은 아픔을 경험하겠지만 그걸 깨달았다는 자체로 세상을 좀 더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안 되는 일을 억지로 하려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은 없기 때문이다.

만약 자신이 어떤 영역의 기획에서 천재성을 발휘하지 못한다면 대안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 더 이상 기획을 하지 않는다. 그러나 이것은 너무 가혹하다. 어떤 사람은 비록 천재성은 없더라도 생업을 위해 기획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두번 째 방안이 매우 현실적이다. '더 잘하는 기획의 영역을 찾는다'. 혹시 지금 웹 기획을 하고 있는 기획자이며 스스로 이 일에 천재성이 없다는 생각이 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기획이라는 일에 매우 깊은 흥미를 느끼고 있다면 다른 영역에서 기획해 보길 권한다. 어쩌면 이 일이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일 지 모른다. 기획이라는 상위 영역의 업무가 맞지 않는 게 아니라 웹이라는 하위 영역이 맞지 않을 지 모른다. E-commerce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community가 맞지 않을 수도 있고 아니면 지금 다니는 회사가 맞지 않을 수도 있다.

몇 년 기획 했다고 '이 일은 나와 맞지 않아'라고 실망하는 자에게 하는 이야기다. 물론 그 반대편에는 몇 년 기획 했다고 '난 딱 기획 체질이야'라고 깝죽대는 자에게도 하는 이야기다. 뭔가 일이 잘 되지 않을 때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해야 한다. 거의 대부분의 문제는 단 한 가지 이유가 아니라 여러 가지 이유의 결과이기 마련이다. 현명한 자는 문제가 생겼을 때 자신을 가장 먼저 돌아 본다. 어리석은 자는 상황과 환경을 탓하고 늘 의미 없는 방황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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