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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김유신은 말 목을 제대로 잘랐나?

김유신이 화랑 시절에 주색에 탐닉하였다가 이제 그만두자고 생각했으나 어느 날 말 위에 잠이 들었을 때 말이 천관의 집 앞에 이르자 말의 목을 잘라 버렸다는 일화가 있다. 아무리 아끼는 짐승이라도 주인의 뜻을 어겼으니 필요 없다며 말 목을 쳐 버리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것이다. 이 우화는 대장부 뜻한 바 있으면 끝을 봐야 한다는 의미로 구전 되고 있다.

김유신이 주색에 쩔어 있을 때 그 모친 말씀하시길 "그딴 식으로 살면 니 인생도 쫑이야"라고 경고했다. 김유신은 그것을 받아 들이고 천관이라는 기생이 있는 집을 멀리 했으나 사람의 말을 모르는 말은 그저 주인이 별다른 지시가 없고 제 등 위에서 졸고 있으니 가장 자주 가는 집으로 갔다. 덕분에 모가지 잘렸다. 자, 아이큐 몇 자리인 지 알 수도 없는 말이 잘 못한 것인가, 김유신의 평소 행동이 훌륭했던 것인가 고민이 된다. 후자가 분명한데 왜 김유신은 아리따운 여인인 천관 앞에서 말 목을 쳐 발라 버리는 엽기적 행각을 벌였을까. 최근 경기도 이천 주민들이 살아 있는 새끼 돼지의 사지를 산체로 뜯어 버렸다고 하는데 아마도 천관 또한 김유신의 엽기발랄한 퍼포먼스를 보고 '뭐 이런 새끼가 다 있나?'라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그냥 "나 이제 엄마 때문에 못 와. 연락 끊자."라고 말하면 될텐데 김유신 자신의 유약함을 개오버하면서 천관에게 보여 준 것이 아닐까 싶다. 오밤중에 술집 앞에서 멀쩡한 말 목을 치는 퍼포먼스까지 하고 며칠 후 다시 술 마시러 올 수는 없지 않겠는가.

컨설턴트로서 김유신과 애꿏게 희생당한 말에 대해 생각한다. 이성적으로 볼 때 말은 제 할 일을 열심히 했다. 김유신은 주색잡기에 연연하다 어머니의 간곡한 만류에 의해 '이제 그만~'을 선언했고 한 동안 열심히 살았다. 그런데 중요한 건 말에게 그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거다. 앞으로 천관네 집은 금지 구역이라는 설명을 하지 않았다. 아무리 말이 멍청하기로 주인이 명확한 경고를 했다면 그 똑똑한 말이 김유신이 조는 동안 거기로 갔을까. 어쨌든 김유신보다 멍청한 말은 주인의 별 다른 명령이 없는 상황에서 나름대로 경험 상 아무런 지시가 없을 때 가장 주인이 원하는 어떤 길을 선택했을 것이다. 덕분에 목이 잘렸다. 불쌍한 말.

대개의 컨설턴트들은 김유신의 말처럼 행동한다. 클라이언트가 자신의 변화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하지 않으면 - 설마 김유신이 어머니의 간곡한 부탁을 말에게 이야기했을까? - 컨설턴트들은 클라이언트가 늘 했던 이야기를 기준으로 어떤 일을 판단하게 된다. 그런데 클라이언트의 어떤 상황은 이미 변해 버렸다.안타깝게도 컨설턴트가 클라이언트의 의중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늘 그들이 걷던 길을 걷게 되면 김유신의 말처럼 처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이유도 모르고 목 잘리는 거다.

김유신은 자기 의중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말의 목을 자름으로써 무엇을 얻었을까? 자신이 제대로 정리 못한 아리따운 천관과 관계를 끊었다. 내가 천관이라고 해도 엄한 말 목을 그 자리에서 잘라 버리는 퍼포먼스를 보고 두려움에 치를 떨었을 것 같다. 수 틀리면 김유신이 내 목을 저렇게 처 버릴 지도 모르지 않나. 두번 째, 이 사건은 동네 방네 소문이 났을 것이다. 김유신 엄청 독한 놈이다. 마마보이다. 잘 못 건드리면 목 날아 간다. 김유신 브랜드 제대로 인지되었을 것이다. 세번 째, 저 놈 심지 있다. 제가 결심하면 사랑하는 말 목을 그 자리에서 칠 정도로 독한 놈이구나. 뭐 이런 이야기가 돌지 않았을까. 말 한 마리 목 자르고 그런 평판 얻었으면 나쁜 장사는 아니다.

하지만 오늘 다시 한 번 생각을 요구한다, 김유신은 말 목을 제대로 자른 것인가? 말 대신 그 자리에 사람이 있었다면 어떠 했을까. 정말 중요한 질문이다. 김유신이 말 대신 그 자리에 사람이 서 있었다면 어떤 결정을 했을까. 아니, 말과 사람이 다른 점이 무엇일까. 나는 말처럼 행동하고 있나, 사람처럼 행동하고 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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