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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온라인 미디어의 편집권과 블로거

오늘 새벽 스위스전이 끝난 후 내 머릿 속엔 선수단 중 두 명의 얼굴이 명확하게 떠 올랐다.

이천수와 조재진

열정적으로 경기를 본 사람이라면 이 두 사람의 노력과 투지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특히 이천수의 오럴 사커에 대해 내심 불만이 있었던 내게 그 경기에서 보여준 이천수선수의 모습은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그리고 일필휘지로 그 감정을 옮겼고 오랜만에 다음 블로그에도 그 글을 옮겼다. 다른 사람들과 공감하고 싶어서 블로거 기자단으로 해당 글을 송고했다.

10시간 후.

다음 메인 페이지에 내가 쓴 글이 올라가 있는 걸 확인할 수 있었다.


순간 매우 당황했고 급히 미디어 다음의 담당자에게 연락하여 해당 글을 메인에서 내려 달라고 요청했다. 전화 통화를 통해 나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미디어다음에 그 동안 보낸 기사는 직접 취재를 하거나 사실을 조사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이번 글은 그야말로 감상의 나열이다. 미디어다음 편집진이 이 글을 메인까지 올리도록 선택한 것은 이유가 있겠지만 글쓴이로서 그럴만한 가치가 없다고 판단한다. 이런 글이 다음 메인에 올라간다면 사람들이 '기자 아무나 한다'는 소리를 하게 될 것이다. 메인에서 내려 주시길 요청한다."

미디어다음의 담당자는 제주도 편집팀에서 이 글이 해당 경기에 대한 좋은(?) 감상이라고 판단하여 메인에 등록할 것을 결정했다며 요구 사항을 반영하겠다고 답변했다. 현재 이 기사는 다른 기사로 교체되어 있다.


이 작은 에피소드를 상세하게 나열한 것은 편집권과 블로거의 관계에 대해 말하기 위해서다. 일반적으로 언론사에서 편집권은 엄격한 규칙에 따라 운영된다. 기자들은 자신이 쓴 기사가 지면의 중심에 존재하길 바라고 편집자 혹은 편집장은 기사의 가치 판단을 하여 지면에 위치 시킨다. 이 과정에서 기자들과 충돌하는 것은 일상이다. 편집권과 기자의 충돌 가운데 "그 기사를 구석에 박아 달라"거나 "중앙 지면에서 내려 달라"고 기자들이 주장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물론 오보라든가 잘못된 정보가 포함된 경우는 예외다.

반면 온라인 미디어 중 이번 경우와 같이 일반인이 작성한 기사를 전면부에 배치하는 경우 어느 기준 이상으로 노출되는 것을 꺼리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문제는 이 기준이 개인마다 매우 상이하여 특별한 중심 기준이 없다는 점이다. 어떤 사람은 자기가 쓴 글로 인해 블로그 하루 방문자가 평소보다 10배 증가한 것을 즐거워하지만 또 다른 사람은 몇 십 명이 증가하기만 해도 큰 부담을 느낀다. 개인적인 판단 기준과 온라인 미디어 편집진의 판단 기준, 거기에다 포털로 해당 기사가 공급되었을 때 포털 편집진의 판단 기준이 섞이면 문제는 더 복잡해 진다. 예를 들어 보자.

오마이뉴스의 한 시민 기자가 자기 집 주변의 풍경을 담은 수필형 기사를 써서 오마이뉴스에 송고했다. 이 시민 기자는 오마이뉴스를 구독하는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하고 싶어서 썼을 뿐이다. 오마이뉴스 편집진은 이 기사를 오마이뉴스 블로그 메인에 노출시키기로 결정한다. 이로 인해 해당 블로그의 하루 방문자가 평소보다 5배 정도 증가했다. 그런데 이 기사가 네이버로 전송되었고 네이버 뉴스 편집팀에서 이 기사를 네이버 메인 페이지에 노출시키기로 결정했다. 그리고 기사 하단에 다음과 같은 댓글이 연이어 붙기 시작했다,

- 이것도 기사냐?
- 개마이뉴스다운 기사군
- 요즘은 도그도 카우도 기자라고 하네, 참 기사 쓰기 쉽다

이 상황에서 가장 당황스러운 것은 오마이뉴스도, 네이버도 아닌 기사를 작성한 바로 그 시민 기자다. 처음 의도와 달리 그/그녀가 쓴 글은 뉴스 유통 구조 속에서 새로운 가치를 부여 받고 확산된다. 오마이뉴스라는 도메인(domain) 안에 있을 때 부여 받은 가치와 네이버와 같은 포털 웹 사이트로 전달될 때 가치가 달라 지는 것이다. 오마이뉴스 안에서 '시민 기자'가 갖는 지위는 네이버 뉴스에서 그냥 '기자'가 된다. 전문적인 학습과 직업적 소양, 저널리스트로서 책임과 지위를 갖는 직업 기자와 같은 취급을 받게 된다. 누가 뉴스를 읽을 때 '누가 썼는가?'를 먼저 파악하고 읽겠는가.

이런 경우는 지금까지 일반적이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 논의하고 대안을 구체화시킨 경우가 드물었다. 그러나 일반인들이 작성한 글을 UCC (User-Created Content)라고 부르며 기사화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함에 따라 보다 '편집의 방법'에 대해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게 되었다. 여기서 기사화라는 것은 온라인 미디어, 포탈, 특정 웹 사이트의 메인 페이지에 노출되거나 기사가 다른 도메인으로 넘겨지는 유통 과정에서 새롭게 가치가 부여되는 것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 예제는 오마이뉴스 시민 기자의 경우와 오늘 내게 발생한 경우로 설명했다.

이런 고민을 먼저 시작한 몇몇 편집자는 글을 쓰는 이(사용자, 시민기자, 블로거)가 자신의 글을 어느 수준까지 배포되길 원하는 지 표기할 수 있는 시스템이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글을 쓸 때 다음과 같은 옵션을 선택하는 것이다.

- 포털 배포 시 메인 기사로 사용 금지
- 오마이뉴스 IT 섹션 메인까지 허용

그러나 이런 규칙은 업체와 개인, 업체와 업체 간 계약 조건 때문에 현실화되기 힘들다. 오마이뉴스와 시민 기자가 맺은 사용자 계약이 있고 오마이뉴스와 네이버가 맺은 콘텐트 사용에 관한 계약이 우선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인 대안은 편집자가 해당 기사를 "업체 사용 영역"에 노출할 경우 기사 제작자에게 그 사실을 고지하는 것이다. 미디어다음의 경우 블로거가 제공한 기사를 노출이 심한 영역인 '미디어 다음 only'나 '다음 메인'에 노출할 경우 해당 블로거에게 연락을 취하여 노출에 대한 의사 결정을 타진한다. 물론 대개의 경우 이미 노출을 시킨 후 연락을 한다. 과학적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현실의 문제를 고려할 때 차선의 대안이다.

현실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만큼 온라인 미디어나 포털의 사용자에 대한 의존성이 높아졌다고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 의존성이 부정적인 면으로 확대 강화될 것인 지 아니면 사용자의 자발성과 1인 미디어의 토대가 되는 방향으로 발전할 것인 지 명확히 판단할 수 없다. 그러나 내 입장은 분명 후자로 발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게 되기 위해 온라인 미디어의 편집권과 블로거/시민기자/사용자에 대해 보다 깊은 고민과 연구가 필요하다. 이 연구 과정에서 성숙한 온라인 저널리즘을 위한 다양한 대안이 도출될 것이며 결국 그런 연구 성과가 현재의 문제점을 타개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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