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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Jerome Bruckheimer and Amazing race

전 세계를 여행하며 우승자에게 100만 달러를 상금으로 주는 reality game인 <어메이징 레이스(Amazing race)>의 제작자인 제리 브룩하이머 (Jerome Bruckheimer)는 놀라운 사람이다. 나는 이 프로그램에 대해 시니컬한 반응을 보인 사람들 중 하나였다. 그러나 어느 날 <어메이징 레이스>의 어떤 장면을 보고 이 프로그램의 매력에 빠져 버렸다. 바로 카메라 앞에서 욕설을 퍼 부으며 레이스의 파트너를 비난하는 장면이었다. 그건 거짓이 아니라 진실된 감정이었다. 제리 부룩하이머는 그런 일이 벌어질 지 이미 잘 알고 있었다.

국내에서 시즌 8까지 케이블 TV를 통해 방영되고 있는 <어메이징 레이스>에는 몇 가지 규칙이 있다. 항상 파트너가 함께 움직여야 하고, 선택 도전은 두 사람 중 한 사람만 도전할 수 있다. 한 사람만 포기할 수 없으며 두 사람이 함께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도착이 인정된다. 그 외에도 몇 가지 규칙이 있지만 그리 까다롭지는 않다. 이게 중요하다. <어메이징 레이스>는 잘 짜여진 규칙이 없다. 경쟁자들이 경쟁하도록 만드는 장치는 존재하지만 레이싱 도중 카메라 맨이 질문을 하는 일은 결코 없다. 미리 대본을 주는 것도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이스는 늘 흥미진진하고 의외의 변수가 발생한다. 어떤 시즌의 경우 마지막 두 팀 중 한 팀이 단지 전철을 늦게 탐으로써 100만 달러를 놓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제리 브룩하이머는 이런 일이 벌어질 지 알고 있었을까? 그가 알고 있는 것은 "어떤 것이든 변수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그 변수가 무엇일 지 그와 제작진은 잘 알고 있지만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것만 알 뿐이다. 나머지는 변수로써 그대로 내 버려 둔다. 그것이 이 프로그램의 매력이다. 사후 편집을 통해 일부 내용이 삭제되거나 욕설이 무음 처리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어떤 새로운 변수를 삽입하지 않는다. 제작진은 단지 그들이 제어할 수 있는 것만 제어할 뿐이다. 이것이 이 프로그램의 핵심이다. 제작자가 개입하지만 그 개입은 게임을 진행하는 정도일 뿐 나머지는 불확정성의 원리를 따른다.

웹 서비스를 기획할 때 우리는 모든 사용자들이 웹 사이트에서 제작자가 원하는대로 행동하길 원한다. 그런 장치를 곳곳에 마련한다. 예측하고 추측하고 준비하여 서비스를 만든다. 이런 행동으로 인해 서비스는 생명력을 잃는다. 웹 서비스를 제작할 때 불확정의 영역을 없애는데 집중하기 때문이다. 좋은 웹 서비스는 불확정의 영역을 없애는 것이 아니라 제작자가 가장 잘 아는 영역만 제어하고 나머지는 내 버려두는 것이다. 불확정의 영역이 있을 때 비로소 서비스 스스로 생명력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의미에서 웹 기획자는 잘 짜여진 프로그램을 만들어 웃음이나 눈물을 전달하려는 초보 프로듀서다. 반면 웹 서비스 기획자는 사용자가 목적지에 도달할 수 있는 핵심적인 제어만 가능하도록 서비스를 제작하고 나머지는 사용자 자신의 삶의 방식에 맡겨 두는 불확정의 영역을 보장하는 프로 프로듀서다. 웹 기획을 잘 해야 웹 서비스 기획을 잘 할 수 있다. 불확정의 영역을 보장하려면 확정의 영역을 매우 잘 규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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