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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를 믿고 보는 영화, 숨바꼭질 관람 후기



어제 밤 정말 오랜만에 야간에 영화를 봤다. 영화를 주말이나 평일 아침 첫회에 보는데 가격도 저렴하고 사람이 적기 때문이다. 하지만 <숨바꼭질>은 영화 장르가 스릴러물이기 때문에 할 수 없이 밤 늦게 봤다. 공포영화나 스릴러물은 밤에 봐야 좀 더 몰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일 밤 시간임을 고려하면 많은 관객이 있는 편이었다. 몇 번 깜짝 놀라기도 했고 칼부림 장면 때는 얼굴을 찌푸릴 수 밖에 없었지만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운 영화였다. 영화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는 상태에서 본 영화라 큰 기대가 없었기 때문에 더 만족도가 높았던 것 같다. 

 

스포일러없이 영화의 관람 후기를 쓰는 것은 굉장히 힘들다. 이 영화는 특히 영화 중후반부에 큰 반전이 있기 때문에 더욱 더 그런 것 같다. 중후반부 이후에 대해 묘사하다보면 반드시 어떤 스포일러가 튀어 나오게 되는데, 그걸 피하는 게 관람 후기를 쓰는 관건인 것 같다. 어쨌든 스포일러없이 이야기해 보겠다.

 

 

 

복합 장르

 

 

최초 이 영화의 장르를 '공포물'로 알고 있었다. 몇 개의 포스터 중 이 포스터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한 것 같다. '숨바꼭질 괴담'이라고 되어 있으니 더 그렇게 생각한 것 같다. 그런데 포스터에서 진실을 이야기하고 있다. '충격 실화 스릴러'라고 말이다. 그런데 <숨바꼭질>의 홍보는 스릴러라기 보다는 괴담과 공포물이라는 인상을 많이 주었는데 마케팅 속임수라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실제 영화가 시작된 후 얼마 동안은 공포 영화같은 느낌을 받는다. 그러나 오래지 않아 공포를 주는 대상이 구체화되고 특별한 능력이 있는 것은 아니라서 공포물이 아닌 스릴러물로 변한다. 

 

순진하게 스토리 전체를 받아들이자면 괴담에 근거한 스릴러물이지만 귀신이든 유령이든 가상의 괴물은 나오지 않고 <텍사스 전기톱 살인 사건>에 나오는 괴력의 살인마도 나오지 않는다. 하지만 <숨바꼭질>에는 공포를 주는 캐릭터가 등장하고 전혀 기대치 않았던 캐릭터라서 더 충격적이다. <숨바꼭질>은 공포영화로 봐도 무방하지만 "꺄악!"하고 매번 소리를 지르는 그런 류의 공포가 아니라 등골이 서늘해지는 느낌의 공포라고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분명한 건 가족 영화는 아니라는 점이다. 둘 이상의 가족이 등장하지만 그렇다고 훈훈한 가족 영화는 아니다.

 

 


 

배경 아파트

 

 

<숨바꼭질>은 두 개의 아파트가 주요 배경으로 등장한다. 주인공의 형이 살고 있던 아주 오래된 아파트인 '송월아파트'와 주인공이 살고 있는 최신 고급 아파트다. 영화의 중반부까지는 '송월아파트'에서 스토리가 진행되고 마지막은 최신 고급 아파트에서 진행된다. 


영화 속 송월아파트의 외관은 지금은 공원으로 변한 홍콩의 구룡채성을 보는 듯 했다. 아마 이 이미지를 참조하여 새로운 이미지의 아파트를 재창조한 것이 아닌가 싶다.  

 


 


 

영화에 나오는 아파트 내부는 1960년대 최신식 아파트로 당시엔 돈 좀 있는 사람들이나 들어가서 산다하여 '연예인 아파트'라고 불렸던 동대문 아파트를 배경으로 한 것 같다. 

 








 

'이런데 사람이 살 수 있는건가?' 싶은 느낌을 주는 오래된 아파트는 한국 하층민의 삶을 대변하는 것 같다. 철거 지대에서 흔하게 들려오는 각종 사건 사고를 생각할 때 가상의 공간은 아니다. 

 

 

 

캐릭터

 

 

<숨바꼭질>은 3명의 주요한 캐릭터가 영화를 이끌어 간다. 세 명의 배우 모두 인기스타는 아니지만 연기력은 믿을 수 있다. 아니나 다를까 손현주는 강박증과 결벽증이 있는 캐릭터를 훌륭히 소화했다. 숨기고 싶은 과거가 있고 그것을 가족에게도 밝힐 수 없어 고통스러워하는 내면 연기는 찬사를 보낼만 했다. 특히 가위 눌리는 장면에서 마치 내가 가위를 눌리는 듯 함께 숨을 멈추고 있기도 했다. 영화 개봉 후 손현주는 언론사 인터뷰에서 '나 때문에 흥행에 실패할 까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말했다 한다. 그러나 이 영화를 흥행시키는데 그의 역할이 컸음은 영화를 본 모든 사람들의 공통된 평가일 것이다. 

 

 


 

문정희는 낯익은 배우지만 대표작이 떠오르지 않는 배우이기도 하다. 가장 최근에 본 그녀는 <연가시>에서 엄마 역할이었다. 그녀의 필모그래피나 드라마 출연작에서 맡은 배역을 보면 한참을 생각해야 '아, 그 여자'하는 정도다. 뭔가 특별한 캐릭터가 부족하고 늘 누구의 엄마 혹은 누구의 친구 혹은 누구의 지인 식으로 나오기 마련이었다. 이번 영화는 그녀의 영화 인생에 터닝 포인트가 될 것이다. 영화를 보고 나오며 '기회가 주어지면 해낼 수 있는 배우였구나' 싶었다.

 


 

 

전미선은 꾸준한 배우다. 청소년기부터 시작해 지금까지 큰 굴곡없이 여러 역할을 잘 소화하는 것 같다. 25년 가까운 연기 경력 동안 크게 인기를 얻지는 못했으나 다양한 활동을 했고 주어진 역할에 충실한 배우인 것 같다. <숨바꼭질>에서도 그녀는 두 배우 사이에서 조용하지만 균형을 유지하는 역할을 해 낸 것 같다. 스릴러 영화는 긴장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데 그녀는 평범하지만 적절한 시점에서 정서적 균형을 유지하곤 했다. 

  


 

 

 

알고 보면 좋은 점

 

 

1) 스토리도 괜찮고, 긴장감도 좋았지만 씬 스틸러가 없었던 것은 아쉽다. 그런 역할을 할만한 캐릭터가 몇몇 있었지만 의외로 그렇지 못했고 연기력도 미흡했던 것 같다. 씬 스틸러가 없어도 영화는 빠르게 진행되지만 너무 선 굵게 스토리가 진행되는 느낌이 있었다. 잔가지가 없다는 점에서 매력적이지만 때문에 관객의 상상력도 줄어든 것 같다. 

 

2) 이 영화는 유난히 휴대전화가 많이 등장하는 것 같다. 휴대전화 장식품으로 출입구 열쇠를 붙이면 안되는 이유와 뛸 때 휴대전화를 잘 쥐고 있어야 하는 이유를 영화를 통해 알 수 있다. 

 

3) <숨바꼭질>에서 몇몇 다른 영화와 또 다른 이야기를 발견할 수 있다. 영화가 시작하자마자 나오는 한 여성은 영화 <싸이코>의 그것과 매우 유사하다. 아파트의 문을 두드리는 괴한과 영화 후반부의 아이들을 추격하는 괴한은 동화 '해님달님'을 연상케 한다.

 

4) 이 영화는 가능하면 저녁이나 밤에 보자. 영화의 몰입도를 훨씬 높일 수 있다. 

 

5) 영화 보고 나오는 길에 "내 집 마련의 꿈과 집 없는 자의 악몽"이라는 주제로 대화를 나눠보는 것도 재미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