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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를 잘 하는 법

회사에서 일상적인 업무를 제외하고 가장 많이 하는 일이 무엇일까? 대개의 사무직 회사원은 ‘회의'를 가장 많이 한다. 그 이야기를 듣고 생각해보니 나도 그랬던 것 같다. 회의의 형식은 다양하지만 끝없는 회의를 했던 것 같다. 서로 대화할 시간이 부족했던 것도 아닌데 회의라는 이름과 어떤 공간에서 끝없이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나중엔 했던 이야기를 또하고 또하는 이유를 알지 못할 정도로 회의를 반복했던 것 같다. 한번 물어보자, 여러분은 회의를 왜 했는가? 그렇지, 나는 그 답을 안다. 내가 회의하자고 한 적은 없다.


왜 회의를 하는가?

회의는 의견을 듣고, 조정하고, 합의하는데 목적이 있다. 토론할 필요가 없는 안건을 위한 회의는 존재할 필요가 없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많은 회의는 이미 회의할 필요가 없는 주제 때문에 열리곤 한다. 그런 이유로 인해 많은 회의 참석자들은 이미 화가 난 상태에서 회의에 참석한다. 그들의 머릿속에는 이런 생각들이 가득할 것이다,




‘왜 이런 회의를 해야 하는 거지?’
‘내가 왜 이 자리에서 시간을 낭비해야 하는 거야?’
‘누가 이 따위 회의를 하자고 이야기한 거지?’
‘이 회의하고 또 야근하겠지’


게다가 회의에는 그 회의의 목적에 걸맞지 않는 사람들이 늘 앉아 있고 이들은 또한 상석에 앉아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회의의 숨은 목적


회의의 목적이 어찌 되었든 회의는 곧 열릴 것이고 자신 또한 그 회의에 참석해야 한다면 투덜거리는 대신 회의에 임하는 태도를 분명히 하는 것이 현명하다. 어떤 사람들은 자신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표현하는 대신 대리인을 참석하도록 하여 자신의 의견을 간접적으로 표현하는 경우도 있다.


몇 년 전 우리는 새로운 웹 사이트를 구축하고 있었고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일정이 늦어진 상태였다. 회사 내부에서는 누군가 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의견이 있었고 그 보다는 문제를 찾아서 웹 사이트를 빨리 완성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여러 번 회의가 열렸지만 실제로 책임을 명확히 한 경우도 없었고 그렇다고 문제를 찾아서 늦어진 일정을 해결 할 방안을 내놓지도 못했다.

그러던 중 개발 팀장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고 말았다. 무의미한 회의가 반복되고 있다고 느낀 그는 자신이 참석해야 하는 회의에 다른 사람 - 의사 결정에 관계하기 어려운 사람을 대리로 보냈다. 분노한 회의 참석자들은 아주 오랜만에 회의에서 하나의 결정을 내리게 되었다. 개발 팀장을 몰아 내는 것이었다.

나는 토요일 아침 회의를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데 초 봄의 맑은 햇살이 가득 찬 회의실에 모인 6명의 참석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개발 팀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문제의 해결 방안은 누군가 책임을 지는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심지어 대리로 참석한 개발팀의 일원도 그 의견에 동감하는 표정이었다. 물론 그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틀 후 개발 팀장을 프로젝트 지연의 책임을 지고 해고 되었다. 그 후 웹 사이트가 완성되었냐고? 설마.

회의에 참석한다는 것은 단지 논의하고 토론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특히 어떤 문제가 발생했고 그것이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지루하고 비이성적인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면 회의에 더욱 열심히 참가해야 한다. 사람들은 더 이상 이런 회의가 반복되지 않기를 원하고 그것을 위해 어떤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이다. 



회의의 기술

1. 회의록

회의 주제자에게 필요한 커뮤니케이션 기술의 기본은 회의록을 작성하는 기술에서 시작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회의록은 여러 사람이 어떤 주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토론하는 것을 말하고 그 기록이 회의록이다. 때문에 회의록은 회의에서 언급된 내용이 모두 포함되어야 하고 회의 이후 참석자 혹은 그 회의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 회의 내용을 파악할 수 있도록 작성해야 한다.

그런데 회의록 작성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회의록과 녹취록의 차이를 아는 사람이라면 왜 회의록을 작성하는 게 어려운 일인 지 알고 있을 것이다. 녹취록은 단지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옮기기만 하면 된다. 그러나 회의록은 이야기를 요약 정리해야 하기 때문에 작성자의 주관적 판단이 개입될 수 밖에 없다. 이런 이유로 회의록 작성자가 딴 생각을 하고 있거나 발언자의 표현을 잘못 이해했다면 결과적으로 회의록은 발언자의 의도와 다르게 엉뚱하게 기록될 가능성이 높아 진다. 실제로 며칠 전 회의에서 이와 똑같은 일이 있었다. 발언자는 "데이터를 알려 달라"고 했는데 기록자는 "데이터 포맷을 정의한다"라고 이해했고 그렇게 회의록을 작성했다. 만약 내가 그 회의에 참석하지 않았다면 회의록의 내용을 신뢰하여 정작 필요한 일을 하지 못하고 엉뚱한 일을 지시했을 것이다.


대부분의 기업이나 조직에서 회의록을 다시 읽어 보는 경우는 그리 흔하지 않다. 때문에 회의록 작성을 회의 참석자 중 말석에 위치한 사람에게 맡기는 경우가 많다. 가장 어린 사람이나 경험이 적은 부하 직원에게 회의록 작성을 맡기는 것은 매우 어리석은 일이다.

열심히 회의해 놓고 나중에 회의록을 보니 회의 내용의 핵심이 빠져 있거나 엉뚱한 이야기가 기술되었을 가능성을 생각해야 한다. 경험이 부족하거나 회의 주제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 사람에게 회의록을 맡기는 것은 그만큼 회의록 작성을 요식 행위로 생각하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만약 회의록을 작성하기에 참여 인원이 너무 적거나 (3~4명 이하) 회의록을 작성할만한 사람을 찾지 못했다면 일단 회의 내용을 녹음 한 후 회의 참석자 중 한 명을 정해 회의 후에 회의록을 정리하도록 하는 게 좋다.

최근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회의록을 작성하는 사람들이 실수하는 것을 보았다. 회의록 작성의 대표적인 실수라고 할 수 있는 것이었는데 서로 다른 회의록 작성자로부터 발견되었다. 하나는 "내가 아는 것만 기록한다"는 것이었다. A씨는 2시간 이상의 회의를 해도 언제나 원고지 2장 분량의 회의록을 작성했다. 길고 긴 회의를 짧게 요약하는 것은 훌륭한 능력이다. 문제는 그 요약이 실제로 회의한 내용이 아니라 스스로 이해하고 있는 것에 대한 정리라는 점이다. A씨는 회의 주제에 대해 정확히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고 때문에 어떤 내용이 중요한 것인 지 어떤 내용은 단지 제안일 뿐인지 판단하지 못했다. 때문에 자신의 제한된 지식과 경험 수준에서 회의록을 작성했고 덕분에 회의 내용 중 매우 중요한 안건이 기록되지 않는 일이 빈번했다.

B씨의 경우는 또 다른 문제가 있었는데 회의 참석자들이 한 이야기의 주제를 정확히 기록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어떤 사람이 인터페이스를 수정해야 한다고 말했음에도 회의록에는 "콘텐츠 기획이 필요"라고 적혀 있는 식이었다. B씨는 어떤 참석자가 길게 이야기를 할 때 그 이야기의 주제를 정리하지 못하는 문제를 안고 있었다. 대부분 회의 참석자들은 짧게 이야기하기 보다는 길게 이야기하고 한 가지 주제를 이야기하기 보다는 다양한 주제를 이야기한다. 기계처럼 하나의 주제에 대해 기승전결 구조로 완벽히 서술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때문에 회의록을 기록하는 사람은 어떤 참석자가 하는 이야기의 핵심을 정리하는 능력이 있어야 한다. 비록 30분 동안 이야기를 했더라도 그 다양한 예시 때문에 혼란스러워하지 말고 하나의 문장으로 정리할 수 있어야 한다. B씨는 정리라는 부분에서 문제가 있었는데 그가 혼란을 극복하는 최선의 방법은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참석자에게 "정리하자면 이런 이런 내용입니까?"라고 질문하는 것이다. 회의록 작성자는 회의 중간에 참석자들의 의견이 잘 정리되고 있는 지 참석자 전원에게 고지할 필요가 있다.


2. 사람이 아니라 사실을 비판하라

내가 알고 있는 <회의의 기술>은 대부분 학창 시절에 배운 것이다. 20대 초반에 나는 하루에 10여 개가 넘는 서로 다른 주제의 회의에 참석하기도 했고 의제를 제시하거나 회의록을 작성하거나 토론의 주체가 되곤 했다. 미리 회의 내용과 참석자를 고지해야 하고, 충분히 학습하지 않은 상태에서 진행하는 회의는 잡담의 나열일 뿐이며, 제한된 시간 내에 결과를 도출하지 못하면 즉시 회의를 중단해야 한다는 등 회의를 잘 하기 위한 기술은 모두 20대 초반에 배웠다. 당시에는 이것을 <회의의 기술>이라고 생각하지 않았고 대학생이 가져야 할 상식이자 토론의 기초라고 알았다. 선배, 동료들도 모두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른 후 사회 생활을 하면서 매우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하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매우 난감했는데 마치 내가 상식이라고 생각한 것이 매우 특별한 기술인 듯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심지어 <회의 잘하는 법>과 같은 책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어린 시절 자연스럽게 회의에 대해 학습하지 못한 사람에게 이런 책은 의미가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내 입장에서 이런 책은 마치 '숨 잘 쉬는 법'이라든가 '똑바로 걷는 법'을 알려 주는 것처럼 느껴 졌다. 당연히 알고 있어야 할 것을 굳이 배워야 한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어쩌면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회의를 통해 커뮤니케이션하지 못하는 주요한 이유는 그 자신이 회의를 준비하는 방법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회의에 대한 기본 태도와 방법을 배우고 있던 20대 초반의 어떤 날이 기억난다.

그 날 오후에 회의가 있었는데 나는 회의 자료를 검토하지 못했고 주제에 대해 정확히 인식하지도 못했다. 회의가 시작되기 전에 참석자 전원에게 미리 사안을 검토하지 못했음을 알려 주고 이번 회의에서 나는 발언권이 없다고 스스로 이야기했다.

5시간 동안 진행된 회의에서 나는 아무런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물론 어떤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주제나 사안도 있었지만 미리 주제에 대해 검토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할 수 없었다. 당시 나와 내 주변의 분위기는 그런 것이었다. 준비되지 않으면 말할 수 없다. 제대로 연구하지 않고 와서 즉흥적으로 떠들어대는 참석자가 있는 회의는 결코 바람직한 결과를 이끌어 낼 수 없음을 모두가 알고 있었다.

아마추어 시절에도 그런 일 - 준비하지 않고 회의에 참석하여 발언권을 얻는 사람을 경멸했는데 소위 프로라고 말할 수 있는 회사와 관련된 회의에도 이런 사람들을 자주 발견한다. 배포한 자료를 읽지 않고 와서 그 자리에서 생각한 이야기를 꺼내 놓는 사람들. 그러나 문제는 이 사람들 자신 보다는 회의를 주최하는 사람이 아닌가 한다. 메일로 회의 주제 하나 던져 놓거나 관련 자료 몇 개 보내 놓고 당연히 학습하고 오기를 바라는 회의 주최자들이 많다. 그렇다고 읽지 않은 사람들을 회의에 참석시키지 않겠다고 공언할 객기도 없으면서 남을 탓할 일은 아닌 것 같다.

회의 자체 보다는 회의를 준비하고 자료를 배포하고 그 내용을 사전 인지시키는 작업이 훨씬 중요하다. 그래야 아무도 준비하지 않고 누구도 고민하지 않는 '난상토론'과 같은 어처구니없는 회의를 근절시킬 수 있다.


정말 이해되는 회의의 방법

회의를 잘 하는 방법의 핵심은 인간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아닌가 한다. 너무 광범위한 결론이라고 생각한다면 ‘인간의 사회적 특성에 대해 이해하는 것'으로 바꾸어 말할 수도 있다. 개인적인 대화가 아닌 어떤 목적에 의한 대화인 회의에서 상대방 뿐만 아니라 회의에 참석한 사람들의 사회적 특성을 이해한다면 자신이 취해야 할 태도를 쉽게 판단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 사람이 아니라 사실에 대해 비판하라고 말하는 것이다. 끝으로 정말 서로가 이해할 수 있는 회의의 방법을 이야기한다. 우리가 전능한 존재가 아닌 바에야 이런 식의 회의가 진행될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그래도 알아둬서 나쁠 건 없지 않나. 게다가 이건 실현 가능한 방법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래 3가지 원칙만 지키면 어떤 상황에서도 늘 서로를 이해하는 회의가 될 수 있다.


1. 사흘 전에 회의를 이야기 해 줄 것

물어보나마나 가장 싫은 회의는 "지금 모여주세요"로 시작하는 갑작스러운 회의다. 그런 건 회의라고 하지 말고 집단 담화라고 하자. 의견 발표회도 괜찮겠다. 어차피 그런 식으로 회의 요청을 한 사람도 안건에 대해 상세히 준비할 시간이 없었을 것이다. 그러니 회의하자고 말하지 말고 이야기 좀 하자고 요청하는 게 낫다. 회의는 참석자들이 안건에 대해 준비하고 책임질 수 있는 이야기를 하고 그 결과 '무엇을 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래봐야 내일도 누군가 여러분에게 이메일을 보내거나 전화를 할 것이다, "지금 회의 합시다"


2. 회의에서 내가, 그리고 나머지 사람들이 무엇을 이야기할 지 알려 줄 것

회의 참가자들은 무조건 자신의 의견을 이야기해야 한다. 너무 많은 사람이 참석하는 회의라면 각각의 의견을 대표할 수 있는 패널을 뽑는 게 좋다. 단지 회의의 내용을 청취하려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 시간에 그 자리에 올 필요가 없다. 녹취된 파일을 공유하거나 회의록을 읽어봐도 충분하다. 발표할 내용도 없는 사람을 회의에 초대하지 말라. 내가 갈 필요가 없는 회의라면 상대방이 불쾌하지 않게 정중히 거절하라. 물론 상대방은 그래도 참석하라고 할 것이다. 싸울 것인가, 시간을 조금 낭비할 것인가. 상대방이 누군가에 따라 다르다.


3. 회의가 언제 끝날 지 알려 줄 것

나는 회의를 할 때 예상 소요 시간을 늘 알려줬다. 1시간 혹은 30분 같은 식으로. 2시간 이상이 소요될 경우 중간 휴식 시간도 알려줬다. 회의 시간을 지키는 좀 더 확실한 방법은 타이머를 가져다 두는 것이다. 타이머 시간이 끝나면 회의 중이라도 무조건 끝낸다. 아직 논의할 내용이 남았으면 추가 회의를 나중에 다시 요청했다. 이론상 그랬다. 영화나 드라마에서 미국의 대학 수업 시간을 보면 수업 종료 종이 울리면 교수가 이야기를 하든 말든 학생들은 제 갈 길을 간다. 교수 또한 급하게 이야기를 끊는다. 한국의 현실은 어떤가? 수업 종료 종이 울리든 말든 자기 할 말은 끝까지 하는 교수가 흔하고 용감하게 자리를 떠나는 학생은 드물다. 미국식으로 회의를 하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지만 현실은 한국이다.


그다지 어렵지 않은 제안이지 않나? 그런데 한 번 해 보라, 저게 얼마나 힘든 건지 곧장 깨닫게 될 것이다. 그래서 회의를 잘 하는 법은 기술의 문제가 아니라 문화의 문제다. 규범의 문제고 합리성의 문제다. 회의를 잘 꾸리는 좋은 기술이 있더라도 참석자들이 그걸 잘 받아 들이지 못한 상태라면 불합리한 회의가 반복될 뿐이다. 정말 회의를 잘 하고 싶은가? 일단 사람들에게 회의를 잘 하는 방법을 교육해야 한다. 그리고 회사의 문화로 만들어 가야 한다. 나만 잘해서 되는 일이 아니라는 말이다.



* 이 글은 2011년 12월에 나올 책으로 다시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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