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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Story

신입사원을 위한 조언

일을 가르치며 잔소리를 많이 했던 후배가 회사를 옮기고 얼마 지나지 않아  10여명의 팀을 관리하는 팀장이 되었다. 잘 해 나갈 것이라 믿고 있었는데 어느 날 늦은 밤 연락이 왔다. 집 근처에 왔다면서 잠깐 보자는 것이었다. 심각한 일이라도 있나 싶어 나가봤더니 근처에서 회식이 있어서 인사차 왔다고 했다. 그런데 낯선 사람 몇 명도 같이 있다. 얼마전 입사한 신입 사원이라고 했다. 서로 소개를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후배 팀장은 자신이 일을 배우며 느꼈던 점을 신입 사원들에게 알리고 싶어 안달이 난 것 같았다. 회식이 끝난 늦은 시각임에도 토끼같은 눈으로 팀장의 이야기를 경청하는 신입 사원들을 보며 저게 바로 신입 사원에게 요구되는 첫번째 덕목인 집중(attention)이 아닐까 싶었다. 상황이 어떻든 간에 일단 집중.

신입사원이 회사에 들어가서 해야 할 일 혹은 취해야 할 태도에 대한 많은 글이 있다. 나도 많은 신입 사원들을 대상으로 멘토링을 하거나 강의를 하며 여러가지 이야기를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최초의 목적과 달리 대부분의 이야기가 선배들의 잔소리로 변질되는 걸 보며 뭔가 중요한 요소를 빠뜨리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했다. 우리가 신입 사원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신입 사원과 대립되는 개념은 경력 사원이고, 경력 사원이란 어떤 일을 이미 경험해 본 사람을 말한다. 따라서 신입 사원은 어떤 일을 경험하지 못한 사람 그래서 곧잘 실수를 할 수 있는 상태의 사람을 말한다. 신입 사원에 대한 주변의 조언은 대개 그런 실수를 하지 않도록 하는데 집중하고 있다. 문제는 그런 식의 조언 - 실수를 하지 않는 방법 - 을 아무리 많이 해도 결국 실수를 하기 마련이라는 점이다. 조언자들 중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은 없지만 그렇다고 신입 사원의 실수를 너그럽게 이해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조언의 탈을 쓴 '사전 경고'인 경우가 매우 많기 때문이다.

물론 신입사원에게 조언을 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이런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선의로 하는 이야기일 뿐 '사전 경고'라고 주장하는 내가 이상한 사람이라고 말할 지 모르겠다. 상상해 보자. 내 부서에 신입 사원이 들어왔다. 여러분은 업무와 관련하여 어떤 생각을 먼저할 것인가? 그리고 그 신입 사원에게 도움이 될만한 이야기를 해야 한다면 어떤 이야기를 해 줄 것인가? 수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이야기"를 해 주고 싶을 것이다. 그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이야기란 자신과 관련하여 가장 큰 실수를 하지 않도록 만드는 것이기도 하다. 신입 사원에게 자신이 얻을 수 있는 것보다 자신이 줄 수 있는 것이 많다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 아닌가. 힘의 불균형 상태에서 신입 사원들은 원하든 원치 않든 "가장 기억에 남을 수 있는" 수많은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 잊는다.

만약 여러분이 신입 사원에게 어떤 조언을 하고 싶다면 가장 먼저 인정해야 할 것은 '사전 경고'를 하고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다. 때문에 신입 사원은 여러분의 이야기를 듣고 심한 압박감을 느끼게 되고 여러분의 이야기가 길어지면 길어질수록 더욱 힘들어질 수 밖에 없다. 더 많은 것을 전해주기 위해 하는 이야기 - 여러분의 선의에 의한 이야기 - 를 하면 할수록 신입 사원의 고개가 숙여지는 이유는 그것이다. 반면 자신의 이야기가 선의든 뭐든 간에 신입 사원에게 '사전 경고'로 받아 들여짐을 이해하고 나면 오히려 짧고 명쾌하게 신입 사원을 위한 조언을 할 수 있다.결국 자신의 이야기는 신입 사원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가장 위험한 어떤 일을 막고자 하는 것임을 자신도, 신입 사원도 이해하기 때문이다.

내가 신입 사원에게 하는 이야기가 '사전 경고'임을 인정한 후 나의 조언 패턴은 크게 바뀌었다. 과거에는 신입 사원을 옆구리에 차고 다니며 수 많은 조언을 했다. 그러나 스스로 '사전 경고'를 받아 들이게 되면서 내가 신입 사원에게 하는 조언은 매우 짧고 간략하게 줄어 들었다. 그것을 정리한 것이 바로 "신입 사원을 위한 3A"다. 이 가이드는 선배가 후배에게 하는 이야기라기 보다는 조언을 하는 사람과 조언을 받는 사람 모두가 오해없이 조언을 이해하기 위한 가이드다.

 
1. Attention : 집중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신입 사원에게 집중할 것을 요구한다. 사람의 집중력은 한계가 있고 개인적인 차이도 매우 크다. 대부분의 신입 사원은 주위에서 집중을 요구할 때 집중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그러나 그 집중력은 곧 한계에 이르기 마련이다. 만약 신입 사원에게 조언하고 싶다면 그에게 충분한 여유가 있는 지 확인할 필요가 있다. 필요하다면 다른 사람이 개입하는 것을 막아야 하고 혹은 말하고 싶을 때 말하지 말아야 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입 사원이 자신에게 집중하고 있는 듯 보이는 상황을 착각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신입 사원은 해당 업무에 대해 잘 모르거나 처음 접할 뿐 그렇다고 백지 상태는 아니기 때문이다.

누구든 이미 경험한 것에 기초해서 새로운 것을 배운다. 대부분의 신입 사원은 충분하든 그렇지 않든 나름의 경험과 가치관을 이미 구축한 상태다. 조언을 하려는 사람은 조언의 중요성을 신입 사원에게 강조하기 전에 신입 사원이 가진 경험과 가치관이 무엇인지 먼저 들어야 한다. 집중이 필요한 것은 신입 사원이 아니라 조언을 하려는 사람이다. 먼저 신입 사원에게 집중해서 그의 경험과 가치관을 들어야 한다. 그 후에 자신이 할 이야기를 선택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무작정 자신의 이야기를 시작하며 신입 사원에게 집중을 요구한다면 조언자와 신입 사원 모두에게 시간 낭비가 될 것이다.


2. Ask : 묻기
어떤 일을 가장 빠르게 배우려면 '묻기'에 망설임이 없어야 한다. 시키는대로 행동하고 그에 따른 결과가 나왔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라 다른 방식으로 시도해 보고 잘 되지 않는다면 '묻기'를 반복하는 행위를 통해 학습 효과는 극대화된다. 우리는 신입 사원에게 늘 이야기한다, "모르는 게 있으면 언제든 물어 보세요" 그러나 정작 질문이 시작되면 매우 귀찮아 하는 경향이 있다. 신입 사원들의 질문은 창의적이거나 새롭기 보다 이미 자신이 경험했던 그리고 이제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뻔한 것이기 마련이다. 그런 질문에 대한 대답은 친절하지 않고 무미건조하며 심지어 불쾌한 반응으로 돌아 온다.

만약 당신이 신입 사원에게 '묻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조언을 했다면 그에 대응하는 반응을 보장해야 한다. 팩시밀리 사용법을 일주일동안 15번 물어 보는 신입 사원에게 매번 똑같은 대답을 짜증내지 않고 할 자신이 있어야 한다. 물론 훌륭한 조언자는 3번째 똑같은 질문을 하는 신입 사원을 위해 팩시 밀리 사용법을 메모지에 적어서 줄 것이다. "당신이 묻는다면 언제든 답을 얻을 것이다" 따위의 조언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묻는 행위 자체가 어려운 것이 아니라 적절하고 친절하게 대답해 줄 사람이 적을 뿐이다. 


3. Action : 행동
조언자들은 회사에서 좋아하는 업무 행동에 대해 많은 이야기를 한다. 그 중 가장 많은 것은 "말보다 행동을 먼저하라"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서 이런 저런 생각을 하는 것보다 도전하고 시도해보는 게 훨씬 낫다고 말하곤 한다. 멍청한 신입 사원들은 이 조언을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인다. 그래서 신중하게 생각하고 판단하고 물어야 할 일을 먼저 저지르고 본다. 신입 사원이 신중하지 못하게 처리한 일에 대해 조언자가 책임질 수 있는가? 그렇지 못하다면 행동을 먼저하라는 조언을 삼가야 한다.

책임질 사람이 없을 때는 행동하지 말라는 조언은 행동을 먼저 하라는 조언만큼 어리석다. 책임 소재가 불명확한 어떤 일이 발생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이야기해 주는 것이 낫다. 그런데 이런 경우 조언자들은 대부분 '모른 척 하라'고 이야기한다. 괜히 개입하지 말라고 말하기도 하고, 문제에 대해 상급자에게 보고를 먼저 하라고 말하기도 한다. 정직한 조언자라면 신입 사원에게 조언자 자신이 어떤 일과 어떤 범위까지 책임질 수 있는 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그 범위 안에서 신입 사원의 행동이 이뤄지기 때문이다.



자신이 조언자이건 신입 사원이건 관계없이 3A에 대해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신입 사원은 원인과 결과에 대해 아직 명확히 알지 못할 뿐, 인과관계를 이해하지 못할 정도로 지적 수준이 낮은 경우는 거의 없다. 조언은 행동을 수반하게 되는 법이다. 신입 사원의 실수는 대부분 무책임한 조언에서 시작된다. 문제는 무책임하게 쏟아내는 조언들이지 그것을 거르지 못하는 신입 사원이 아니다. 조언의 폭풍 속에서 유유자적하며 자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만 걸러 들을 수 있다면 이미 신입 사원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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