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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ffice Story

야근 권하는 회사

야근이 노동 생산성을 향상 시키냐는 질문에 대해 '그렇다'라고 대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화이트 칼라 계층 뿐만 아니라 블루 칼라 계층에서도 잦은 야근이 산업 재해 증가율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는 것은 기정 사실로 이해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회사에서 얼마나 오래 버티느냐에 따라 그 사람에 대한 평가가 갈리는 것도 현실이다. 야근과 노동생산성이 반비례 관계라는 것과 별도로 많은 사람들은 정시 출근은 당연하지만 정시 퇴근은 평화로운 시기에나 가능한 일이라는 인식이 많은 듯 하다.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은 여동생의 남편은 네비게이션 개발사의 팀장으로 근무한다. 그런데 이 친구와 가끔 만나서 이야기를 하자면 5분을 계속하기 힘들다. 쉴사이없이 전화가 걸려오고 스마트폰의 메시지를 확인하느라 정신이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시간대가 퇴근 후든 아침이든 별 관계가 없이 이런 현상이 계속된다는 것이다. 나는 그에게 "퇴근 후에 휴대 전화를 끄는 게 어떠냐?"고 말한 적이 있는데 그는 말도 안된다는 표정으로 쳐다보며 "일의 특성상 어쩔 수 없다"고 대답했다. 내가 알기로 그는 전형적인 야근, 철야의 반복 속에서 생활하는 엔지니어다.

15년 전 조그만 벤처 기업에서 처음 회사 생활을 시작했을 때 그 회사는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이 따로 없었다. 대표이사가 주 개발자였기 때문에 사무실에서 숙식을 했는데 그가 깨면 출근이고 자면 퇴근이었다. 물론 다른 사람들도 그런 것은 아니었다. 다른 사람들은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을 지켜가며 생활했는데 점차 대표이사의 생활 방식에 적응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근 시간은 9시였지만 퇴근 시간이 점점 늦어지기 시작했다. 처음엔 6시에 퇴근을 했지만 한달 쯤 지나니 그 시간은 9시로 변해 있었다. 이제 저녁이 되면 자연스럽게 근처 식당으로 가서 함께 식사를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1년이 지나지 않아 결국 회사를 나올 수 밖에 없었다. 가족적인 분위기와 토론 문화,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업무 영역 등 장점이 많았지만 도무지 규칙적이지 않은 업무 일정에 적응하기 힘들었다. 물론 이직의 이유에는 생활의 불규칙함과 함께 낮은 급여도 한 몫을 하긴 했지만.

이후 몇 번의 회사를 옮기며 다양한 근무 환경과 직종을 경험했는데 이들 회사에서 야근과 생산성에 대한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어떤 회사에서도 야근을 종용하는 경우는 없었다. 또한 대부분의 회사는 야근이 필요한 시점에 야근하기를 원했다. 어떤 회사도 야근이 노동 생산성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말하지 않았다. 잘 노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는 모토를 내세우는 회사도 있었다. 그러나 이런 회사조차 야근이 필요한 시점이 도래했음을 직원들에게 알리는데 거리낌이 없었다. 이런 회사들을 거치며 도대체 왜 야근이 필요한 것이며 그것을 직원들에게 요구하는 회사의 입장이 무엇일까 생각해 봤다.


야근의 이유 1 : 부족한 인력

20여년 전 입대를 하고 배치 받은 부대는 하루에 두 시간씩 부대 정문과 부대 주위 초소에서 근무를 서게 되어 있었다. 그 외의 시간은 군사 훈련이나 특기 교육, 사역 등을 하게 되어 있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 초소 근무를 서는 것은 그리 힘든 일이 아니었다. 두 시간 정도 총기를 들고 부대 주변을 경계하면 되기 때문이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는 그랬다. 그러나 부대원 중 일부가 휴가나 외출을 가게 되면 상황이 완전히 바뀌었다. 정문과 초소는 정해진 인원이 있기 때문에 인원이 빠지는 순간 남은 부대원들이 모자란 인원의 근무 시간을 나눠서 추가 근무를 해야 한다. 인원이 많이 빠진 어떤 일주일은 하루에 4시간씩 자며 24시간 근무를 하는 경우도 있었다. 야근이 발생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력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부대 인원을 충원하면 되지 않을까? 앞서 이야기했듯 정상적인 상황에서 부대 인원은 전혀 모자라지 않는다. 더구나 초소 근무는 특별한 기술이 필요한 일도 아니고 기초적인 교육만 받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이다. 몇몇이 특별한 이유 - 대개 휴가나 외출 -로 부족하다고 해서 부대 인원을 충원한다면 평상시에 과인원 상태가 된다. 회사로 치자면 불필요한 직원이 발생하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이런 현상이 자주 발생한다면 어떻게 판단해야 할까? 다시 말해 일년에 일주일 정도만 하루 4시간씩 자며 근무하는 상황이 아니라 한달이 멀다하고 이런 일이 벌어진다면 말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는 것은 정상적인 상황이 정상이 아니고 비정상적인 상황이 정상인 것이다. 만성적인 인원 부족 현상으로 판단할 수 있다.


야근의 이유 2 : 기술 인력의 부족

군대에서 인력이 부족한 경우엔 충원을 하면 된다. 군대에서 인력 충원은 일반 사회와 달리 매우 쉬운 편이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여동생의 남편의 경우엔 인력을 충원하고 싶어도 충원할 수 없는 경우다. 그가 필요로 하는 인력은 일정 수준의 기술력을 갖추어야 하고 경험 또한 풍부해야 하며 게다가 창의적으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능력도 있어야 한다. 물론 찾아보면 없을 리 없겠지만 회사가 제공할 수 있는 능력의 한계가 있는 법이니 쉽게 인원을 충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2년 넘게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지 못하고 끝없는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는 것 또한 문제가 있는 것이다.

집 근처 편의점에는 항상 아르바이트 구인 공고가 붙어 있다. 24시간 운영되는 편의점의 특성 때문에 주간과 야간, 최소 2명의 아르바이트 직원이 필요하다. 그리고 휴일이나 주말을 위한 아르바이트 직원도 필요하다. 아르바이트 직원이 없는 시간에는 주인이 직접 일을 하기도 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처음하는 직원에게 오리엔테이션을 하는 광경을 본 적이 있다. 대개 2~3 시간 정도의 오리엔테이션을 끝내고 곧장 현장에 투입된다. 편의점 아르바이트는 지극히 높은 기술적 숙련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오래하는 경우도 드물고 설령 오래 하더라도 경력으로 인정 받는 경우도 드물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경력 10년이라도 받는 시급은 같다는 말이다.

반면 습득 기술이 필요한 직업이나 숙련이 필요한 직종의 경우라면 부족한 인력을 충원하는 것이 매우 힘들 수 있다. 그런 특별한 기술이나 숙련을 얻으려면 먼저 그 일을 할 수 있어야 할텐데 정작 그런 회사에서 원하는 인력은 초급자가 아닌 숙련자다. 회사의 요구와 구직자의 요구가 일치하지 않는 것이다. 이런 경우 기존 인력 즉 기술과 숙련도를 이미 습득한 회사 직원은 강도 높은 야근을 요구 받는다. 자기 외에는 그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없는데 야근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야근의 이유 3 : 욕심

앞서 이야기한 야근의 이유 두 가지는 야근의 본질적 이유가 아니다. 그저 현상으로 나타나는 일에 대해 설명했을 뿐이다. 대개의 야근, 특히 회사에서 자주 발생하는 야근의 근본적인 이유는 욕심 때문이다. 일을 더 많이 더 잘하고 싶은 욕심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회사 생활 초기에 웹 서비스 기획자로 부족함을 자주 느꼈던 나는 업무 시간이 끝난 후 회사에 남아 있는 경우가 흔했다. 낮에 급하게 처리했던 일을 되짚어 보고 나로 인해 발생한 지연 업무를 처리한 후 개발, 디자인, 마케팅 부서에서 요구하는 사항을 미리 고민하는 시간을 갖곤 했다. 그렇게 일을 하고 공부를 하다 보면 야근이 철야로 이어지는 경우가 흔했고 다음날 아침 출근하는 직원들과 만나는 경우도 많았다. 이런 야근은 우리가 이야기하는 야근이 아니다. 우리가 이야기하는 야근은 원치 않는 야근, 혹은 "왜 야근을 해야하지?"라고 의아해 하는 야근이다.

몇 년 전 급하게 어떤 웹 사이트를 만들어야 할 상황이 발생했다. 회사 내부 인원으로 한 달 안에 도무지 만들 수 없는 상황이었다. 야근을 하고 철야를 해서 만들 수 있다면 그렇게 했겠지만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급하게 새로운 인원을 채용하기도 힘든 상황이었다.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는 웹 에이전시와 함께 일하기로 하고 예산을 책정했다. 우리가 요구하는 규모의 웹 사이트를 만드는데 당시 시장에서 요구하는 비용보다 50% 정도를 더 지급하는 것으로 예산을 구성했다. 짧은 제작 기간으로 인해 우리도 그렇지만 외주를 하는 웹 에이전시도 야근과 철야가 필수적이라 판단했기 때문이다. 공고를 내자 몇 군데 웹 에이전시에서 즉각 연락이 왔다. 우리는 현실적으로 무리한 일정이고 때문에 야근과 철야를 해야 할 것이라고 이야기했다. 세 군데 회사에게 똑같은 이야기를 했는데 두 곳은 별 무리가 없다고 대답을 했다. 반면 한 곳은 회사로 돌아가 협의를 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 날 저녁 세번째 회사로부터 연락이 왔다, "죄송하지만 저희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현재 인력을 모두 쏟아 부어도 그 일정을 맞출 수 없습니다." 우리는 그 회사와 계약을 했다.

사실 우리는 그 일정 안에 무슨 수를 써도 웹 사이트를 만들 수 없음을 이미 알고 있었다. 다만 사업 상 일정이 있었고 투자자에게 보여 줘야 할 것이 반드시 필요했기 때문에 무리하게 일정을 잡았다. 우리와 협의한 웹 에이전시의 과거 경력이나 인원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군데는 가능하다고 했고 한 군데는 불가능하다고 대답했다. 나는 우리 회사 대표 이사를 설득했다. 가능하다고 말한 곳과 일을 하게 되더라도 결국 일정을 지키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가 일정을 조정하지 않으면 무엇 하나 얻을 수 없을 것이라고 설득했다. 결국 우리는 보다 현실적인 일정을 새롭게 만들었고 투자자들을 설득하기로 했다. 그리고 우리의 욕심에 대해 정직하게 대답해 준 웹 에이전시와 계약을 하고 그들에게 웹 사이트 제작을 위한 권한 대부분을 위임했다. 그 웹 사이트 제작을 위해 함께 하기로 되어 있던 우리 회사 내부 인력은 이미 진행중이던 다른 프로젝트에 몰입할 수 있었다.


회사에서 발생하는 대부분의 야근은 욕심 때문에 발생한다. 무리하게 일정을 만드는 조직이나 개인이 있고, 그것을 제어하지 않는 또 다른 조력자가 있다. 이 둘의 합작품으로 야근이 탄생한다. 야근을 하면서도 야근의 이유를 모르는 직원들은 그저 힘들 뿐이다. 회사에도 인격이 있다면 - 실제로 인격이 있다 - 좀 더 인간적인 인격을 가진 회사가 야근을 적게 할 것이다. 반면 회사의 존재 이유 자체를 이윤의 추구라고 못 박고 있는 회사가 있다면 거리낌없이 직원들에게 야근과 철야를 종용할 것이다. 자신을 비롯해 전직원이 야근을 밥먹듯 하는 어떤 회사의 CEO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그가 대답했다, "야근을 하더라도 일이 있다면 받아와야 회사가 살지" 맞는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묻고 싶다. 끝없는 야근을 통해 회사가 살 수 있다면 아마도 그 회사는 직원의 고혈을 빨아 먹으며 생존하는 일종의 흡혈 회사가 아닐까. 직원들이 밝은 태양 아래서 건강한 삶을 누리지 못하는데 회사만 성장하면 도대체 무슨 소용인가?

내가 사업을 시작하기 전 마지막으로 선택한 회사는 다른 회사보다 연봉도 낮고 사회적 인지도도 낮았지만 야근과 철야가 없고 집과 가까운 회사였다. 우리가 회사를 선택하는 기준은 가끔 바뀐다. 연봉이나 유명도 같은 것 보다 더 소박하지만 직접적인 기준이 있기도 하다. 그 중 하나는 '생활할 수 있느냐'가 아닐까. 생활하기 위해 다니는 회사에서 목숨 걸고 야근하는 건 참 슬픈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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