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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Insight

느끼지 못하는 변화

3년 전에 구입한 진공 청소기가 있다. 이 진공 청소기의 내부에는 먼지나 세균을 잡아 준다는 종이 필터가 있는데 3년 동안 한 번도 갈아 본 적이 없었다. 그래도 동작하는데 별 문제는 없었다. 매뉴얼에는 6개월에 한번씩 갈아주라고 조언하고 있었지만 기능에 문제가 없는데 왜 갈아야 하나 싶었다. 게다가 여분의 종이 필터가 어디에 있는 지 찾는 것도 귀찮은 일이었다.

몇 주 전 오븐용 장갑을 찾다 싱크대 구석에서 여분의 종이 필터를 발견했다. 문득 진공 청소기의 필터를 갈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요리를 해야 했기 때문에 다음에 하려고 그냥 내버려뒀다.

2시간 전, 청소를 하기 위해 진공 청소기를 꺼냈고 종이 필터를 갈아야겠다고 결심했다. 1분도 안되어 종이 필터를 갈고 진공 청소기를 작동시켰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어제와 달리 진공 청소기는 놀라운 흡입력으로 바닥의 먼지를 빨아 들이기 시작했다. 마치 진공 청소기를 처음 샀을 때처럼 강력한 파워를 느낄 수 있었다. 종이 필터와 진공 청소기의 성능이 도대체 무슨 관계가 있었단 말인가. 매뉴얼에도 그런 이야기 - 주기적으로 종이 필터를 갈지 않으면 성능이 저하될 수 있다 - 는 읽은 기억이 없다. 분명한 건 진공 청소기의 종이 필터가 갑자기 제 성능을 다하지 못한 것은 아니고, 또한 진공 청소기는 지난 3년 간 아무런 문제없이 동작했다는 점이다. 또한 진공 청소기의 성능은 매일 조금씩 낮아 졌을 것이다. 성능이 떨어진 것을 확연히 느낄 정도였다면 뭔가 대책을 찾았을 것이다.



뭔가를 행동하기로 결심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변화'다. 소를 잃어 버려야 외양간을 고친다는 말이다. 외양간에 큰 구멍이 나 있더라도 소가 그 자리에 있으면 외양간을 고칠 이유가 없다. 왜 소 주인은 외양간을 고치지 않은 걸까? 게을러서? 구멍의 위험성을 몰라서? 소를 믿기 때문에? 그것도 이유가 되겠지만 근본적인 이유는 느끼지 못하는 변화에 있다. 분명 상황이 변화했지만 그것을 느끼지 못하는 것을 "느끼지 못하는 변화"라고 부른다.

만약 진공 청소기에 파라미터가 표시되는 기능이 있어서 "현재 70%의 기능으로 동작하고 있다"고 표시된다면 어땠을까? 아마 그 시점에서 뭔가 행동하기로 결심했을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나는 그 변화 - 성능의 하락 - 를 느끼지 못했고 게다가 필터를 갈아야할 필요성도 느끼지 못했다. 왜냐면 여전히 진공 청소기는 동작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잘 동작하는 지' 판단할 기준점이 없었고 우연한 기회에 종이 필터를 갈아끼자 비로소 뭔가 변화했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이다. 개선된 후에 변화했음을 느꼈던 것이다.


웹 사이트를 운영하는 사람들, 특히 꽤 오랜 기간 어떤 웹 사이트를 운영해 온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다보면 이런 '느끼지 못하는 변화'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경우를 자주 본다. 때문에 그들은 자신들이 보지 못하는 자신들의 모습을 찾기 위해 많은 외부 사람들이나 전문가, 혹은 조언을 들을만한 사람들을 찾아 다닌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그 조언자들은 한결같은 이야기를 한다. 그러니까 뻔한 이야기를 한다는 말이다. 고객 응대 방식을 바꿔야 한다. 새로운 사업 모델을 만들어야 한다. 웹 사이트를 개선해야 한다. 뭐 이런 뻔한 이야기 말이다. 조언자들의 뻔한 이야기에 실망하고 회사로 돌아온 그들은 뭔가 새로운 것을 찾기 위해 다시 고민에 빠진다.

외부 조언자들이 한결같은 혹은 뻔한 조언을 한다면 그 외부 조언자를 탓하기 전에 스스로 '느끼지 못하는 변화'라는 덫에 붙잡힌 게 아닌가 의심해 볼 필요가 있다. 이미 상황은 변화했는데 자신만 그것을 인정하지 않던가, 혹은 변화에 대해 고민하고 있지만 크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던가, 심지어 변화 자체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자문해봐야 한다. 문제는 변화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변화의 본질을 느끼지 못하는 무감각에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