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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시사투나잇 폐지와 저널리즘의 전통성

2008년 11월 4일 새벽 1시. 조금 전에 KBS2의 <시사투나잇> 월요일 방송이 끝났다. KBS 경영진은 오는 17일 프로그램 개편에서 <시사투나잇>을 폐지하고 <시사터치 오늘>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프로그램을 개편하겠다고 했다. 실상 <시사투나잇>을 폐지한다는 말이다. 지난 10월 10일은 <시사투나잇>이 태어난 지 5년 되는 날이었다.





언뜻 보면 이름만 바꾸고 프로그램이 콘셉트나 제작진을 유지한다는 식으로 KBS 경영진은 말하고 있지만 KBS에서 이 프로그램을 제작하는 PD들, 그리고 시청자들의 생각은 다르다. 11월 3일 수십 명의 PD들이 아침 출근 길에 <시사투나잇> 폐지를 반대하는 피켓 시위를 했다고 한다. 성명서도 발표했다고 한다.

<사진출처 : 미디어오늘>


정권이 바뀌면 '뭔가' 바뀌는 게 있는 법이다. 군부독재 정권이 끝난 후 오랜 기간 야당이었던 사람들이 정권을 잡았다. 두 대통령이 10년 동안 한국에 변화를 가져 왔다. 그리고 10년 만에 다시 야당이 여당이 되었다. 그들이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표현하는 것을 이해할 수 있다. 그래서 문제가 있는 것을 바로 잡으려고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바로잡음이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면 그야말로 수구(守舊)가 아니던가.


수구(守舊)가 무엇인가? 옛 것을 그저 지키려는 것을 말한다. 지난 10년 간 한국과 한국민과 정치와 사회와 문화가 변화한 모습에 대해 전반적으로 부정하고 옛 것으로 회귀하려는 것을 말한다. 국민들의 소리에 귀를 막고, 민심의 촛불에 저항하고, 규제의 법률을 강화하고, 못 마땅한 저널리즘의 입을 틀어 막고, 공교육을 약화시키며 사교육을 조장하고, 교과서의 공정함 대신 정통성을 위해 교과서를 고치도록 하는 이런 행태를 도대체 뭐라 불러야 할 것인가? 그것이 잃어버린 10년에 대한 바로잡기라면 그들을 통칭해 이렇게 부를 수 밖에 없다,

수구세력


<시사투나잇>의 실질적 폐지는 수구세력이 자신에 대해 비판하는 세력을 얼마나 두려워하며 그들의 존재를 부정하는 지 보여주는 전형적인 예다. 수구세력이 바라는 것은 민주주의도 아니고 보수주의도 아니고 그렇다고 안정적 발전도 아니다. 그저 '과거로 회귀'가 수구세력이 바라는 바다. 그들이 원하는 과거는 "그들이 가장 큰 힘을 갖고 있던 시절"을 말한다. 텔레비전에서 감히 권력자를 비판하지 못하고, 권력자들이 잘못을 해도 몇 번 이야기하고 넘어가던 그런 시절이다. 저널리즘과 비판 정신이 투철한 언론인이 살기 힘들던 그런 시절이다. 수구세력은 그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목표다.




그래서 <시사투나잇>과 같은 프로그램은 당연히 사라져야할 목록 1호인 것이다. 왜냐면 <시사투나잇>은 정권을 가진 자든, 권력을 가진 자든, 돈을 가진 자든 가리지 않고 그들의 치부를 끈질기게 밝혀내려는 저널리즘을 구현하려 했기 때문이다. 수구세력은 <시사투나잇>이 노무현 정권 시절 그들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던 것은 기억하지 않는다. 그런 비판조차 노무현 정권 비호를 위한 위장이었다고 주장한다. 그들이 기억하는 것은 <시사투나잇>이 너무 질기게 자신들의 치부를 후벼 팠던 사실 뿐이다. 수구세력은 <시사투나잇>을 보며 이를 갈았을 것이다. 아마도 그들은 속으로 이런 생각을 했을 것이다,

"저 놈들 정권만 잡아봐 그냥..."

정권을 잡은 그들은 결국 KBS를 장악하고 <시사투나잇>을 없애 버리려 하고 있다.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보수주의자가 아니다. 보수주의자의 탈을 쓰고 있는 수구세력일 뿐이다. 중학교를 졸업한 사람이라면 "전통과 구습"의 차이점을 알 것이다. 사전적 의미로 전통은 '지켜야 할 과거로부터 내려오는 좋은 습관이나 양식'을 말한다. 반면 구습은 예전부터 내려오는 풍습이긴 하지만 계승해서 안되고 없애야 할 것을 말한다.

<시사투나잇>의 저널리즘은 어떠한가? 수구세력은 그들의 저널리즘이 편향적이며 일방적이라고 말한다. 그들의 주장에도 일리는 있다. 왜냐면 수구세력은 항상 자신들에 대한 비판이 없었던 시절을 꿈꾸며 사는 존재라 작은 비판에도 민감하기 때문이다. 세상은 수구세력과 함께 살아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주장도 이해하고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시사투나잇>은 그것조차 스스로 받아 들이려 노력했다고 이야기한다. 오늘 방송분은 그런 반성의 이야기도 있었다. 그러나 수구세력은 그 정도로 만족하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에게 비난하는 존재는 '없어져야 하는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수구세력은 결코 보수세력이 될 수 없다. 진정한 보수는 개혁 세력과 대화하고 이해하며 타협하여 새로운 길을 찾으려 하기 때문이다.

<시사투나잇>의 폐지는 KBS의 문제가 아니다. 한국 사회가 정권의 변화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저널리즘과 자정능력을 가질 수 있느냐 그렇지 않느냐의 중대한 질문에 대한 도전이다.

나는 뉴라이트라는 자칭 신흥 보수주의자의 조직이 나올 때 '도대체 뭐하는 사람들이냐?'며 맹비난을 했다. 그러나 그들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는 않았다. 뉴라이트 따위는 해체해야 한다고 말하지 않았다. 왜냐면 세상은 그런 생각을 가진 사람도 있고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갈등하며 사는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그렇게 믿었다. 갈등(藤)이라는 단어의 뜻을 아는가? 갈등은 파괴적 단어가 결코 아니다.

葛    칡 갈
     등나무 등


칡과 등나무과 서로 얽히듯 복잡하게 이해 관계가 얽혀 있는 것을 '갈등'이라고 한다. 수구세력은 갈등이 위기라고 생각하여 칡과 등나무의 얽힌 것을 모두 끊어 버리려 한다. 그러나 상식적인 사람들은 갈등을 통해 칡과 등나무가 더 단단하게 세상의 기둥을 감싸 받침을 안다. 갈등이 없으면 아름답고 깨끗할 것 같지만 실상 그 사회의 저항력과 생존력과 자기 정화 능력이 약화되는 것이다.


민주주의는 시끄럽기 마련이다

민주주의의 뿌리는 복잡하게 얽힌 갈등을 통해 더 튼튼해진다


<시사투나잇>은 저널리즘의 관점에서 이런 민주주의의 속성을 잘 이해하는 몇 안되는 훌륭한 프로그램이다. 심지어 요즘에 와서 KBS의 시사 간판 프로그램이라고 이야기하는 시청자들도 있다. 자정이 가까이 시작하는 프로그램이지만 졸린 눈 부비며 <시사투나잇>을 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시사투나잇>은 지난 5년 간 시끄럽고 갈등이 많은 한국 사회의 여러 모습을 보여주며 민주주의의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며 시사 프로그램의 전통성을 잇기 위해 노력해 왔다. KBS가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것은 KBS 스스로 저널리즘의 전통성을 포기하는 행위다.


시사투나잇의 시청자로서...

이 글의 마지막은 간절한 읍소로 마무리하고 싶다. 이 읍소가 KBS 경영진일수도 있고, 성명서를 발표한 젊은 PD들일 수도 있고, 그들의 상사인 부장이나 본부장일 수도 있다. 혹은 오직 과거로 회귀하려는 보수세력일 수도 있다. 그들에게 정말 간절히 부탁드린다.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건 KBS 저널리즘의 보석을 빼서 시궁창에 던져 버리는 행위다. KBS는 공영방송이다. 공영이 무엇인가? 공공의 이익을 위한다는 말 아닌가?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려는 분들의 입장에서 공영의 의미는 지금 이야기하는 것과 많이 다를 것이다. 그들은 아마도 <시사투나잇> 같은 프로그램이 과거 정권의 이익에 편파적으로 복무했기 때문에 공영에 이바지 하지 않았다고 생각할 지 모른다. 그렇다면 <시사투나잇>을 폐지하는 대신 당신들의 요구를 더 받아 들이도록 요구하고 제안하는 게 옳지 않겠나? 그저 개편 시기에 프로그램 개편일 뿐이라며 이름 바꾸는 식으로 어설프게 폐지하는 것은 비겁한 행동 아닌가?

늦은 밤 퇴근하여 자정 뉴스나 봤던 내게 <시사투나잇>은 대한민국의 하루를 정리하여 알려 주는 훌륭한 프로그램이었다. <시사투나잇>은 세상에 대한 관심이 점점 옅어지는 30대 후반의 한 시청자에게 '그래도 당신이 관심가졌을 때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고 알려주던 프로그램이었다. 단신이나 전하는 마감 뉴스보다 몇 개의 꼭지를 심도 깊게 매일 전해 주던 세상과 소통할 수 있는 훌륭한 채널이었다. 왜 그 채널을 없애 버리려고 하는가. 더구나 그 프로그램을 만들었던, 그리고 지금도 만들고 있는 KBS의 PD 선후배들도 한결같이 <시사투나잇>이 계속 이어져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데...

간곡히 부탁드린다. <시사투나잇>을 다음 주도 그 다음 주도, 그리고 몇년 후에도 계속 볼 수 있도록 해 달라. 재방송도 하지 않아 늘 '본방 사수' 밖에 할 수 없는 시청자를 위해, 이 프로그램의 가치를 이해하고 헌신하고 있는 PD와 제작진을 위해, 그리고 정말 중요한 '한국 저널리즘의 전통성'을 위해 <
시사투나잇>을 보존해 달라. 고개 숙여 부탁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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