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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부산의 40계단

부산 동광동에는 40계단이라는 추억의 명소가 있다. 한 블로거가 이 40계단의 최근 모습을 소개하고 있다.








나는 부산에서 30여년을 살았고 40계단의 이름은 잘 알고 있었고 가끔 그 계단을 오르내리기도 했지만 역사적 의미는 전혀 몰랐다. 역사적 유적지 옆에 살아도 그걸 누가 알려주지 않으면 그냥 돌덩어리에 흙무더기일 뿐이다. 40계단이 재조명된 것은 아무래도 한국 영화 때문이다. 박중훈과 안성기가 열연한 <인정사정 볼 것 없다>가 40계단을 현실로 돌아오게 만든 큰 이유였일 것이다. 나도 그 영화를 봤지만 그게 40계단인지 한참 후에 알았다.

혹시 기차 여행으로 부산에 갈 기회가 있으면 10분의 시간만 더 쓰면 40계단을 볼 수 있다. 부산역에서 택시로 5분이면 40계단에 도착할 수 있다. 걸어 가도 20분이면 충분하다. 사진으로 영상으로 보는 40계단은 뭔가 있어 보이지만 실제로 가 보면 별 것 없다. 콘크리트로 만들어진 그저 그런 계단일 뿐이다. 큰 기대를 갖고 찾아가면 "장난이가!"라고 소리칠 지도 모르겠다.

부산 사람들에게 40계단은 그냥 계단일 뿐이다. 역사적으로 재포장되어 있지만 그런 역사적 의미라면 40계단 보다 영도 다리가 훨씬 더 의미있고 그 주변의 삶이 훨씬 현실적이다. 영화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초반부 장면 중 박중훈과 장동건이 골목길을 자동차로 순찰하는 장면이 있다. 여기가 어디냐면 영도 다리 아래에 있는 골목길이다. 부산 사는 30년 동안 여기를 몇 번 가본 적 없지만 30년 전이나 지금이나 이 골목은 다를 바 없다. 늦은 저녁까지는 어떻게 참을만하지만 어두컴컴할 때 이 골목을 걷는 것은 뉴욕 할렘가를 걷는 기분과 비슷할 것이다. 할렘가를 가 본 적 없지만 그 느낌을 알고 싶다면 밤 10시 이후에 혼자 걸어보면 좋을 것이다.

어쨌든 40계단은 부산이 만들어 낸 부산의 현대사 중 하나를 상징하는 아이콘이다. 만약 당신이 40계단을 방문하고 싶다면, 그리고 2시간 정도의 시간을 낼 수 있다면 이런 관광 코스를 제안하고 싶다.

1. 40계단 : 5분 (사진 한 장 찍고)
2. 40계단 박물관 : 비추
3. 걸어서 10분 미문화원 : 이제는 이름이 바뀌었지만 1980년대 초반의 민주화 운동의 흔적을 느끼고 싶다면 가볼 것
4. 용두산 공원 : 미문화원 바로 옆에 있음. 30분이면 모든 것을 볼 수 있음. 용두산 타워를 철거하고 새로운 타워를 세운다는 소문이 있는데 왜 그런 짓을 하는 지 의문...
5. 에스칼레이터 : 용두산 공원에서 광복동으로 내려오는 에스칼레이터. 다 내려오는 즈음에 몇몇 아주 예쁜 찻집이 있음. 여기서 차 한 잔 하실 것.
6. 건어물 거리 : 영화 <친구>에서 네 친구가 영화를 보기 위해 뛰어가던 바로 그 건어물 거리. 아주 좁고 볼품 없지만 사는 맛이 느껴짐. 한 번 뛰어 보는 것도 좋음.
7. 영도 다리 아래 : 조금 전에 이야기한 그 거리. 밝을 때 다니면 나름대로 괜찮음. 험하다는 게 어떤 건지 온 몸으로 느낄 수 있음. 소주 한 병 마시며 남항을 구경하는 재미는 정말 훌륭함.


위 7가지 코스를 거치는데 걸리는 시간은 대략 2시간~3시간 정도. 만약 당신이 부산을 방문하고 40계단을 봤다면 저 코스를 꼭 기억하기 바란다. 부산에는 해운대와 태종대만 있는 건 아니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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