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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전준호의 2000안타

평소 야구에 대해 거의 관심이 없었는데 요즘 가끔 리퍼러에 잡히는 한 블로거의 블로그에서 "전준호의 2000 안타"에 대한 이야기를 뒤늦게 읽었다. 그리고 문득 전준호에 대한 하나의 기억이 떠 올랐다.








1993년 늦은 가을, 입영 통지서를 세번 째 거부하다 결국 군대에 가게 되었다. 부산에 살고 있던 내게 입영지로 53사단이 배정되었다. 현역 입영 대상자는 대게 논산이나 보충대로 입영 명령이 떨어지고 당시 '방위병'인 경우엔 지역 사단으로 입영 명령이 떨어졌다. 그런데 내가 훈련소에 입소할 즈음 현역병이 많았던 것인지 나는 지역 사단에서 훈련을 받게 되었다. 군대 이야기를 하며 내가 53 사단 훈련소에서 훈련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하면 지금도 "당신 방위였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다. 어쨌든 나는 집에서 1시간 거리에 있는 해운대 53사단 신병 훈련소에 입소했다.

훈련 기간이 시작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방위병 훈련 중대에 롯데의 전준호가 들어 왔다는 소식을 들을 수 있었다. 당시 8개 중대 중 현역 배치 받은 중대가 2개 중대였고, 나머지 6개 중대는 방위병이었다. 우리는 왜 전준호가 방위병으로 훈련 받고 있는 지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만한 이유가 있겠지만 감정적으로 이해하기 힘들었다. 그러나 그 감정은 오래지 않아 "빌어먹을 전준호"로 변해 버렸다.


훈련소 입소 5주차 쯤에 훈련 중대 간 야구 경기가 있었다. 전준호가 상대편 팀으로 나왔다. 대충 쳐도 2루타, 마음 먹고 치면 홈런이었다. 야구 경기가 끝난 후 방위병 중대는 회식을 했고 현역 중대인 우리들은 연병장 청소와 땅 고르기를 했다. 전준호가 정말 미웠다.


그 일이 벌써 15년 전이다. 전준호는 그 이후 방위병 생활을 끝내고 현역으로 복귀했고 2008년 2000 안타를 쳤다. 나는 1993년 멀리서 전준호가 방위병 중대의 한 사람으로 야구 방망이를 휘두르며 안타를 치는 모습을 봤다. 저 멀쩡한 인간이 왜 방위병이 되었나 궁금했고 전준호 덕분에 약간의 고통을 당했던 기억도 있다. 그 시점에서 벌써 15년이 지났다. 전준호는 여전히 프로야구에서 방망이를 들고 열심히 살고 있다. 아무래도 이 친구는 정말 멋지다. 올해 우리 나이로 마흔인데 여전히 방망이는 불을 뿜는다.

어쩌면 나는 참 좋은 경험을 한 것인지 모른다. 전준호가 휘두른 방망이를 제대로 볼 수 있었으니 말이다. "빡!"하며 연병장 너머로 날아가던 그 공을 전준호가 지금도 기억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어쨌든 전준호,당신 때문에 당시 현역 훈련병들은 저녁을 먹지 못했다고. 반성하시고 앞으로 10년 더 불같은 방망이 휘둘러 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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