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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오피스텔과 개 키우기

오피스텔은 아파트와 달리 매우 개인적인 주거 공간이다. 아파트는 동 별 반상회 같은 것도 있고 부녀회도 있어서 서로 왕래가 잦은 편이지만 오피스텔은 옆 집에 누가 사는지 모르는 경우가 허다하다. 나 또한 지금 살고 있는 오피스텔의 같은 층에 누가 사는 지 모른다. 서로 알려고 하지 않고 알려고 나서는 것이 이상한 곳이 오피스텔이다. 혼자 사는 사람도 많고 그래서 애완동물을 키우는 사람도 많다. 1년 전 일이다. 2년 간 지냈던 오피스텔에서 계약이 끝나 현재 있는 곳으로 이사올 무렵 엘레베이터 버튼 근처에 낙서가 하나 있었다.

"5층에 개새끼 때문에 시끄러워 죽겠다. 복날 조용히 넘기고 싶으면 성대 수술을 하든가 해라."

가만 생각해 보니 나도 가끔 강아지가 짖어대는 소리를 들은 것 같다. 이 낙서를 본 지 얼마되지 않아 그 아래에 또 다른 낙서가 있었다,

"개만도 못한 새끼. 시끄러우면 니가 이사가!"

몇 개의 낙서가 더 있었는데 서로에 대한 비난이 이어지고 있었다. 결국 건물 관리인이 지워 버렸는지 며칠 후에 가보니 엘레베이터 버튼 근처는 깨끗했다. 며칠 후 나는 그 오피스텔에서 이사를 갔다.

조금 전 편의점에서 담배를 사서 들어 오는데 오피스텔 보안 출입구에 작은 메모지가 붙어 있었다. 빽빽히 적힌 글을 요약하면 이랬다,

"강아지가 오피스텔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 ***동 주민의 강아지인 것 같은데 ***동과 공원 근처를 몇 시간째 혼자 배회하고 있다. 주인이 빨리 강아지를 데려갔으면 한다. 이 쪽지는 주인이 볼 때까지 다른 분이 떼지 말았으면 한다..."

주인 잃은 강아지가 오피스텔 주변을 배회하는 것을 보고 주변에 사는 분이 쪽지를 붙인 것 같다. 주인이 누군지 알면 연락을 했을텐데 아마 주인을 몰라서 이런 쪽지를 붙인 것 같다. 카드 키를 대는 부분에 붙어 있어서 아마 주인이 아직 집에 들어오지 않았다면 들어오는 길에 볼 수 있을 것이다. 저런 쪽지 하나에 훈훈함을 느낀다면 감정의 굴곡이 심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오피스텔이라는 공간에서 저런 쪽지 하나가 주는 느낌은 남다른 것이다. 1년 가까이 오피스텔에 살고 있지만 엘레베이터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늘 다른 사람들이었다. 심지어 한 층에 사는 사람들도 1년이 넘도록 제대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저런 쪽지 하나에서 묘한 감동이 느껴졌다.


만약 웹 사이트를 주거 공간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을 제작하는 사람 - 웹 기획자, 개발자, 디자이너, 사장 등등 - 은 주거 공간의 본질적 특성을 규정한다. 오피스텔과 같은 웹 사이트를 만든다면 주거 공간의 특성과 거주자의 목적 의식 때문에 근본적으로 웹 사이트는 매우 개인적인 특징을 갖게 될 것이다. 아파트와 같은 웹 사이트를 만든다면 또한 그 특징 때문에 자연스럽게 동 단위의 자치 조직과 부녀회나 운영회의 위상이 강한 커뮤니티가 생성될 것이다. 전원주택과 같은 웹 사이트를 만든다면 그 나름의 커뮤니티와 생활 환경이 생성될 것이다. 또한 모든 오피스텔과 아파트와 전원 주택이 똑같은 성격의 주거적 특징을 갖지 않을 것이다. 앞서 이야기했듯 어떤 오피스텔은 강아지의 소음 때문에 불만이 쌓여서 간접적인 공간에서 불만을 토로하며 투쟁할 것이다. 반면 또 다른 오피스텔은 주변을 배회하는 강아지의 주인에게 손수 쓴 쪽지를 붙이는 노력을 마다하지 않을 것이다. 강아지의 소음 때문에 싸웠던 오피스텔은 저렴한 가격대의 오피스텔에 공간이 협소했고 방음이 매우 취약했다. 반면 현재 오피스텔은 제법 가격이 비싸고 방음이 잘되는 편이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전자는 20평 미만의 동일한 평수의 거주지였고 후자는 20평 미만에서 40평까지 다양한 평수가 존재하는 대단위 오피스텔이다. 전자에 비해 후자의 오피스텔이 좀 더 나은 환경이고 경제적 편차도 큰 편이다.

웹 사이트 또한 그것이 규정한 서비스의 질과 형태, 운영 방침에 따라 사용자의 편차가 존재한다. 어떤 웹 사이트는 그 편차가 적고 어떤 웹 사이트는 편차가 크다. 예를 들어 토씨(www.tossi.com)과 같은 웹 사이트는 - 아직 정식으로 공개된 것은 아니지만 - 향후 정식 서비스가 되었을 때 모바일을 통해 블로깅을 할 수 있는 사람을 주 고객으로 하게 된다. 반면 미투데이(www.me2day.net)과 같은 사이트는 웹 사이트 사용자를 기본으로 모바일은 부가적인 접근 경로를 제공하게 된다. 토씨를 제대로 활발하게 쓰고 싶다면 데이터 정액 요금제에 가입하거나 새로운 요금제(아마도 토씨 요금제)에 가입해야 할 것이다. 반면 미투데이는 웹 사이트에 접속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더 많은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도 서비스를 만족스럽게 쓸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요금제의 장벽이 낮을 수도 있고, 요금제를 쓰지 않는 다수의 사람들이 해당 웹 사이트의 주류 문화를 구축할 수도 있다. 그러나 분명 이런 요소 즉 경제적, 환경적 차이 때문에 웹 사이트 사용자의 문화와 생활을 바뀌게 된다.

주거 공간과 웹 사이트에 대한 메타포는 매우 훌륭한 상상을 하게 한다. 과거 많은 웹 기획자들이 어떤 웹 사이트에서 다른 웹 사이트로 옮겨 가는 사람들 - 흔히 '이사한다'고 말했다 - 에 대해 고민하곤 한다. 예컨데 아이러브스쿨(www.iloveschool.com)이 급격히 증가하는 사용자 때문에 접속 자체가 크게 힘들었을 때 다음 카페나 다모임 등의 유사 웹 사이트의 사용자 증가 효과가 있었던 것과 같은 사례가 있었다. 새로운 웹 사이트를 기획하는 웹 기획자들은 이런 현상에 주목했고 경쟁사가 위험에 빠졌을 때 자신의 웹 사이트가 그 대안이 되길 기대하는 경향이 있었다. 이것은 주거 공간에 대한 메타포에서 의미 있는 것이었다. 서울 강남에서 아파트 분양이 과열되자 신시가지로 투자를 옮긴 사람들의 경우도 이와 비슷한 유형이 있었다. 무한대의 접속을 제공할 것 같았던 웹 사이트가 과도하게 밀집할 경우 문제가 발생하여 주변의 업체가 반사 이익을 취하는 것처럼 현실의 주거 공간에서도 비슷한 사례가 발생했다. 물론 메타포는 메타포일 뿐이다.

현실과 가상 현실, 혹은 웹이 완벽히 일치하지는 않지만 웹에서 사는 사람들 특히 웹 기획자들은 오프라인의 현상과 현실에서 메타포를 발견해야 한다. 만약 강아지의 소음 때문에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사람들이 많은 오피스텔이었다면 주변을 배회하는 강아지를 소리소문없이 처단했을지도 모른다.

인간은 환경에 의해 지배를 받는데 우리가 상식적으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지배받고 있을지 모른다. 웹 기획자들은 자신의 웹 사이트를 기획하며 환경 요소에 대해 보다 예민할 필요가 있다. 버튼 하나 링크 하나 추가하는 것이 바로 환경을 구축하는 것이다. 그 환경에 의해 웹 사이트 사용자는 우리가 예상하는 것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 강아지를 복날에 발라 버리겠다고 말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 강아지의 주인을 위해 메모지를 붙이는 노력을 할 수도 있다. 환경이 절대적이지는 않지만 또한 환경은 극적으로 웹 사이트 사용자의 태도를 바꿀 수 있다. 웹의 인터페이스와 콘텐츠와 사용성에 대해 공부하는 웹 기획자라면 더 이상 인터페이스, 콘텐츠, 사용성이 단지 표준화된 어떤 웹 사이트를 위한 것이 아님을 분명히 깨달아야 한다. 그런 것이 모여서 웹 사이트 사용자의 정체성을 정의한다.

웹 기획자가 위대해질 수 있는 이유는 이것 때문이다. 자신이 생각하는 것 보다 훨씬 높은 수준에서 웹 기획자는 사용자의 인생을 지배할 수 있다. 웹 기획자가 어떤 웹 사이트를 만들어 놓고 그것이 어떻게 사용자에게 영향을 미치는지 정확히 모른다면 이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이 될 수 있다. 다행히 웹 사이트는 공개되는 순간 사용자에 의해 사용되고 평가 받으며 위험한 요소가 많은 웹 사이트는 자연 도태된다. 그렇다고 해서 웹 기획자의 책임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나마 다행이다. 웹 기획의 기술적인 요소는 웹 기획자에게 요구되는 자질 중 10%도 되지 않는다. 나머지 90%는 상상력, 통찰력, 철학 그리고 책임감이다. 웹 사이트 기획은 예술이 아니라 현실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