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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인생 그리고 목숨을 걸고 만든 웹 서비스

원피스라는 일본 만화가 있다. 애니메이션으로도 유명한 이 만화의 초기 애피소드 중 황금을 숨긴 해적과 그의 친구인 어묵 만드는 친구에 대한 것이 있다. 어린 시절 한 사람은 세상의 모든 황금을 쓸어 담는 해적이 되겠다 했고 또 다른 친구는 세상에서 가장 훌륭한 어묵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어묵을 만들겠다던 친구가 해적 친구를 만나는 과정에서 원피스의 주인공들을 만나서 진행되는 애피소드 중 "목숨을 걸고 만든 어묵"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어묵 하나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그야말로 일본인다운 생각이 아닌가 싶다. 아무리 하찮은 것이라도 목숨을 걸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하면 온 생을 바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가치로운 삶이라는 그런 생에 대한 가치관. 훌륭한가 그렇지 않은가는 논외로 하더라도 무언가에 목숨을 건다는 것은 굉장히 멋진 일이 아닐까 싶다. 오늘 이야기는 이것이다, '목숨을 걸고 만든 웹 서비스'.


목숨을 건다는 것, 그건 어떤 것일까? 스무살 무렵 이런 가사의 노래를 들은 적 있다,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 사랑은 그럴 때 아름다워라.
술마시고 싶을 때 한 번쯤은 목숨을 내걸고 마셔 보아라..."

박종화라는 사람이 가사와 곡을 만든 <바쳐야한다>라는 투쟁가였다. 이 두 구절 뒤의 가사는 "전선에서 맺어진 동지가 있다면 바쳐야 한다, 죽는 날까지 아낌없이 바쳐라"는 매우 정치적인 가사였지만 일단 앞의 가사는 너무 마음에 들었다. 사랑이란 모름지기 목숨을 걸고 해야 될 것 같았던 어린 나이였으니까. 게다가 그 시절에 나는 술을 정말 목숨 걸고 마셨다. 그런데 오랜 시간이 흐른 최근에야 이 노래의 가사가 박종화 자신이 처음부터 창작한 것이 아니라 이광웅의 시를 빌어 쓴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광웅의 원래 시는 이런 것이었다.

목숨을 걸고


이 땅에서
진짜 술꾼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술을 마셔야 한다.

이 땅에서
참된 연애를 하려거든
목숨을 걸고 연애를 해야 한다.

이 땅에서
좋은 선생이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교단에 서야 한다.

뭐든지
진짜가 되려거든
목숨을 걸고
목숨을 걸고……


 전교조에 몸 담았던 이광웅은 1992년 굵고도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어쨌든 이 노래와 이 시는 내 인생에 있어서 '무엇을 제대로 하려거든 목숨 바칠 각오로 하라!'는 각오를 다지게 만들었다. 이광웅의 시처럼 뭐든지 '진짜'가 되려면 목숨을 걸고 온 생을 바쳐서 해야 할 것 같았다. 아니, 나는 지금도 그렇게 믿고 있다. 뭔가 '진짜'가 되려면 비록 지금 진짜가 아니더라도 진짜가 되기 위해 내 목숨 바치면서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목숨 바칠 것이 두렵다면 그냥 잘 살면 될 일이다. 진짜로 잘 살려면 목숨을 걸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내게 있어서 목숨 건 일은 정말 내가 원하는 웹 서비스를 하나 만드는 것이다.

최근 웹 서비스 기획에 대한 글을 쓰며 많은 생각을 했다. 때문에 18개월 동안 많은 글을 썼지만 정작 책을 낼만한 수준의 글을 쓰지 못하고 있다. 글을 썼다 포기한 것이 수백 개가 넘는다. 그 글 중 대부분은 '목숨을 거는 것' 때문이었다. 내 기준으로 본다면 웹 서비스를 만드는 것은 중요하고 큰 책임이 필요하고 나 자신과 우리 모두에게 굉장한 것이다. 문제는 내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이다. 18개월 전 나는 목숨을 건 웹 서비스를 만드는 이야기를 쓸 생각이었다. 앞서 이야기한 원피스의 예를 들자면 남들이 볼 때 정말 별 것 아닌 것에 목숨을 거는 그런 이야기를 쓰려고 했다. 한 동안 그런 식으로 글을 썼다. 그러다 갑자기 깨달았다. 웹 기획을 하는 사람들은 많지만 목숨을 걸고 웹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은 매우 드물다는 것을. 웹 서비스를 만들어 성공하려는 사람은 많지만 목숨을 걸고 웹 서비스를 만드는 사람은 적다. 아니, 거의 없다. 그걸 깨닫는 순간 내가 그 동안 쓴 글은 모두 의미가 없게 되었다.

솔직히, 나는 지금도 '목숨을 걸고 만든 웹 서비스'에 대해 생각한다. 그리고 그런 서비스는 어쩌면 없을 지 모르겠다는 생각도 한다. 웹 서비스는 장인의 정신보다는 대중적인 흥미가 더욱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장인의 정신으로 웹 서비스를 만드는 것도 좋지만 그런 것이 꼭 '목숨을 걸어야 하나?'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내게 있어서 '목숨을 건다'는 것은 그것 외엔 아무것도 없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내가 새로운 커뮤니티를 목숨 걸고 만들겠다고 말하면 그것은 평생 그것을 향해 돌진하겠다는 의미와 같기 때문이다. 정말 어떤 웹 서비스가 그런 '목숨'을 걸만한 것일까? 오늘도 스스로 질문해보지만 누구도 답을 주지 않는다. 스스로 답할 수도 없다.

만약 목숨을 건 서비스를 만들었다면, 정말 그럴 수 있다면 나는 그 다음에 무엇을 해야할까? 죽어야 하나? 나는 그 답과 비슷한 것을 몇 년 전에 찾은 적 있다. 내 인생의 1년 정도를 완벽히 걸고 만든 웹 서비스였는데 그건 내가 기대했던 성과를 거뒀다. 예상했던 결과와 예상했던 사람들과 예상했던 결과가 있었다. 비록 회사에 큰 이익을 주거나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키거나 내게 부를 가져다주지 않았지만 내가 기대한 것 이상을 성취했다. 그 경험으로 인해 웹 서비스 컨설팅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평생의 숙원 사업은 아니었지만 분명 어떤 것을 확신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목숨을 걸려면 자신의 목숨이 얼마나 중요한 가치가 있는지 알아야 한다.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숭고한지 알아야 한다. 오늘 아침 일어나 시작하는 '생의 또 다른 시작'이 얼마나 큰 의미인지 알아야 한다. 웹 기획자의 생은 종이 조각에 생각의 조각을 모아서 나열하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다. 거칠고 거친 생의 조각을 모아 인간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울 수 있는 지 보여줄 수 있다. 그게 웹 기획자가 목숨을 걸만한 생의 업이다. 그 업을 받아 들일 때 웹 기획자는 위대해질 수 있다. 목숨을 걸만한 일을 발견할 수 있다.

거창하지만 자신에게 용감할 수 있는 삶, 목숨을 걸만한 일에 도전하는 삶을 찾을 수 있다. 이것이야말로 스스로 위대해지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