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emo

메모

"이번 강의는 메모를 하지 않아도 됩니다. 그냥 듣고 기억하든가 아니면 기억에 남는 것만 기억하십시오."

가끔 강의를 할 때 서두를 이렇게 시작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열심히 메모를 하는 사람도 있지만 곧 메모를 멈추고 이야기에 집중하게 된다. 내가 약속했던 것처럼 메모할 것이 별로 없는 강의이기 때문이다. 그런 강의는 어떤 주제를 반복적으로 이야기한다. 여러가지 주제가 아니라 하나의 주제를 두 시간 동안 반복 심화하기 때문에 메모가 필요없다. 더구나 메모를 한다고 더 기억이 잘 나거나 나중에 새로운 생각이 나는 것도 아니다.

반면 메모가 반드시 필요한 강의도 있다. 강의 주제는 하나지만 참석자의 상황과 의지가 상이하여 받아 들이는 사람의 입장이 중요한 강의인 경우 메모할 것을 미리 요청한다. 그 메모는 강의가 끝난 후 질의를 할 때 필요할테니 메모를 꼭 하라고 말한다.

삼성그룹의 창립자인 고 이병철회장의 메모광으로 유명하다. 사람들은 흔히 그의 일화를 이야기하며 메모가 얼마나 중요한가 역설하곤 한다. 그러나 이병철회장이 하는 일을 아는 사람이면 그가 메모를 하지 않고 도저히 일정을 소화시킬 수 없기 때문에 메모가 일상화되었음을 안다. 그런 사업가와 달리 하루에 수백가지 결정을 할 필요가 없는 우리에게 반드시 메모가 필요한 것은 아니다. 불필요한 메모는 단지 자신의 기억력을 불신할 뿐이다. 하루에 몇 가지 고민을 하며 사는가? 하루에 몇 가지 반드시 기억해야만 하는 결정을 하는가? 자신의 생활이 모든 것을 메모할 정도로 모두 기억해야만 하는 것으로 구성되어 있는가?

자신을 자유롭게 하라. 잊어야 할 것을 잊기 위해 메모하지 말라. 기억해야 할 것만 메모하라. 나머지는 버려라. 늘 새롭게 살기 위해 기억하지 말아야 할 것은 메모하지 말라.

'Memo' 카테고리의 다른 글

구글과 엠파스  (2) 2006.09.25
메모 2  (1) 2006.09.25
쩝...  (0) 2006.09.24
What women want  (2) 2006.09.23
싸움의 상대  (1) 2006.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