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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싸움의 상대

어릴 때 어머니는 싸움을 하지 말라 하셨다. 싸우면 이기라고도 하지 않으셨고 그저 싸움은 하지 말라고만 하셨다. 대신 내가 어딘가에서 부당한 대우를 받고 오면 꼭 대신 가서 싸우셨다. 아이 싸움이 어른 싸움 된다는 것과는 좀 달랐다. 어머니는 내가 당했기 때문에 싸운 게 아니라 어머니 자신이 싸웠다. 꽤 이상한 상황이 자주 연출되었는데 나와 싸웠던 아이와 나는 열외고 그냥 어머니와 상대방 부모님이 싸우는 거다. 지금 생각해 보면 어머니는 당신께서 정당하게 싸울 꺼리를 찾고 있었던 건 아닌가 싶다. 내가 잘못한 것에는 결코 끼어들지 않으셨고 내가 부당하게 당한 경우엔 나는 집에 있으라고 한 후 혼자 출정(?)하여 싸우곤 하셨다. 두 아이 중 누구의 잘잘못을 따지는 게 아니라 상대방이 명백히 잘못된 경우에만 싸우러 가셨다. 이 기묘한 상황을 오래도록 이해하지 못했다.

어머니는 한 번 싸움을 하면 반드시 이겼다. 아니면 끝까지 원수로 남든가. 그 성격은 나도 그대로 물려 받은 것 같다. 싫은 놈은 끝까지 싫다.

사람들은 내가 쓰는 글만 보고 맨날 여기저기 쑤시고 다니며 싸울 것이라 생각하는 것 같다. 지금까지 내 기억에 남은 싸움은 다섯 손가락에 꼽을 정도다. 그 다섯 모두 어떤 사람과 싸운 게 아니라 권력과 싸운 것이었다. 평화주의자는 아니지만 싸움을 즐기고 이기는 것에서 성취감을 느끼지 않는다. 주변에서 싸움을 걸어 오면 가장 먼저 생각하는 것은 "이 자가 싸울만한 존재인가?"라는 것이다. 서른 다섯 해를 살아 오며 그럴만한 인간을 만나지 못했다. 대개는 자신의 이익을 위해 싸움을 걸어 오는 자들이었다. 최근에도 그랬고 그냥 무시했다.

선한 척하며 실상 싸움을 통해 이익을 추구하는 자들이 흔하다. 제대로 싸우는 것은 모든 걸 버리는 거다. 욕이나 하고 삿대질이나 하며 감정을 쏟아 내는 건 싸움이 아니다. 그냥 배설이다. 똥 싸는 데 무슨 규칙이 없듯 이런 배설은 규칙도 없고 원칙도 없다. 제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싸우는 것이고 마음에 들면 화해를 한다. 그게 무슨 싸움인가. 싸움은 목숨 걸고 해야 의미있다. 제 것을 모두 버릴 각오를 하고 상대방을 완벽히 괴멸시킬 각오를 해야 그게 싸움이다. 인생에서 그럴만한 싸움이 몇 번이나 될 것 같은가? 무슨 고양이도 아니고 목숨이 아홉개씩 달려 있지 않은 바에야 싸움은 흔치 않다. 서로 똥구멍을 마주 대고 배설을 하며 그걸 싸움이라고 말할 뿐이다.

제대로 싸움할 수 있는 상대를 만나는 건 굉장히 소중한 인연이다. 우린 그런 걸 일상적인 배설과 구분하여 '라이벌 관계'라고 부른다. 라이벌이 인생에서 흔한가? 라이벌은 끝까지 가는 존재다. 끝까지 싸우고 끝까지 투쟁하고 누군가 하나 이겨야 끝나는 그런 싸움을 하는 관계다. 그런 관계가 인생에서 흔한가? 똥 싸는 놈이 누구 똥이 더 굵은 지 겨뤄보자고 하면 그냥 이러면 된다,

"그래, 니 똥 존나게 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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