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Memo

벤처, 벤처캐피탈, 돈

한 벤처캐피탈(Venture Capital)의 담당자가 자사의 벤처 육성 프로그램에 대한 기자 간담회에서 한 이야기가 와전되어 한 벤처 경영자가 발끈했고, 그게 아니라는 해명성 블로그 포스트가 올라왔다. 링크를 걸지 않는 건 찾아 보면 쉽게 찾을 수 있고 괜히 그 틈바구니에 끼고 싶지 않을 뿐더러 대충 이야기가 마무리되는 분위기이기 때문이다.

벤처와 벤처캐피탈의 관계는 악어와 악어새의 관계라는 표현이 있다. 그런데 누가 악어고 누가 악어새인지 좀 헷갈린다. 원론적으로 본다면 악어는 벤처이고 악어새는 벤처캐피탈이 맞는데, 실제로 그 반대인 경우가 매우 흔하다. 소자본 혹은 무자본 창업이 흔한 벤처 입장에서 웹 서비스 하나 만들어 놓고 운영을 하려면 돈이 필요하다. 적게는 몇 천만원이고 많게는 몇 십억원이기도 하다. 그런데 돈이라는 것이 그냥 "저 좋은 아이디어 있구요, 기술력 죽이는데 돈만 조금 빌려 주시면 몇 배로 돌려 드릴께요!"라고 말한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오히려 "저 카이스트 나왔는데..."라고 하는 게 빠를 수도 있다. 카이스트 나온 분이나 다니는 분들 발끈하지 말자. 학맥, 인맥이 투자 받는데 실질적으로 더 큰 힘을 갖는 경우가 흔하다는 말이다. (자기 블로그에서도 이런 사족을 달아야 하니 기운 빠지는 일이다)

오래 전에 주변 사람들이 내게 창업을 하는 게 낫지 않냐고 했을 때 나는 이렇게 대답했다, "내 돈 벌어 돈 남으면 그걸로 웹 서비스 만들래요." 지금도 마찬가지 생각이다. 만약 돈이 없는 상태에서 돈을 벌기 위해 창업을 한다면 모험적인 웹 서비스보다는 안정적 수익 모델이 확보된 것을 선택할 것이고 그런 것은 아마도 혁신적이기 힘들 수 있다. 그런 딜레마를 극복하는 방법은 3가지가 있는데 첫째, 많은 돈으로 창업하는 것(빌리든 투자 받든 자기 돈이든) 둘째, 안정적 수익을 거둘 수 있는 사업이 있는 상태에서 웹 서비스를 만드는 것 셋째, 만들자말자 돈을 벌 수 있는 혁신적인 웹 서비스를 만드는 것. 세번째가 가장 힘들다.

그런데 왜 벤처를 만드는 사람들 거의 대부분은 항상 세번째 방법을 선택하는 것일까? 내가 경험해 본 그리고 만나 본 사람들에 의하면 그들은 첫번째 방법은 선택하기 힘든 상황이었고 두번째 방법은 선택하고 싶지 않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견디기 힘들었던 것 같다. 일단 저질러놓고 보자는 생각이 머리를 꽉 채우면 다른 아무런 일도 할 수 없는 마치 신이 내린 사람과 같은 상태가 된다. 그럴 때 머릿 속에 만신이 등장해서 이런 말을 한다,

"신내림을 받아, 아님 죽어!"

많은 벤처들이 그런 계시를 받아 들였고 그래야 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 것 같다. 벤처가 가장 행복할 때는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드는 동안이다. 그 동안 고민했던 것은 사라지고 이젠 반복되는 야근과 철야 그리고 새로운 웹 서비스의 탄생만 남은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엔 새로운 고민이 생긴다. 돈. 이 고민을 털어 줄 수 있는 존재 중 하나가 벤처캐피탈인데 어디 그들의 돈이 눈 먼 돈인가. 회수되지 않는 투자는 하지 않는 게 그들 아닌가. 그들과 만나보면 자신의 꿈과 자신의 웹 서비스가 이토록 초라했나 느끼기 마련이다. 화가 나고 우울해지기 마련이다. 상처는 분노를 만들고 분노의 마음 때문에 창의적 생각은 설 곳을 잃는다. 굳이 비약을 좀 해보자면 모험적으로 만들어진 벤처가 벤처캐피탈 때문에 바보되는 경우는 흔했다.


이번 애피소드를 보며 새로운 웹 서비스를 만들려는 벤처들의 마음을 이해하려 노력해 보았다. 한편 벤처캐피탈의 관계자가 뭐라 이야기하든 자기 할 바 하면 될텐데 왜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나 싶기도 했다. 아마도 돈 때문이 아니었을까 싶었다. 내가 여유가 있으면 돈을 가진 자가 뭐라 떠들든 신경 쓰이지 않는 법이다. 보도를 한 언론사의 곡해도 문제지만 오히려 벤처와 벤처캐피탈 그리고 돈에 대한 생각을 많이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