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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운과 불확정성

행운에 대한 격언 중 가장 흔한 것은 발명가 토마스 에디슨의 "발명은 99%의 노력과 1%의 영감에서 나온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요즘도 그런 지 모르겠지만 내가 어릴 때 초등학교 교과서나 위인전에서 에디슨의 이야기를 자주 읽었다.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은 노력이 성공의 가장 중요한 조건이라고 조언하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어려운 환경에서 노력하여 잘 알려진 대학에 들어가서 사법고시에 합격하여 입신양명하는 이야기도 자주 등장했다. 행운을 기대하는 것은 망상가가 되는 지름길이라고 비난 받았다. 


다이어트 

행운과 노력을 비교하면 여전히 과거 이야기가 옳다고 생각한다. 다이어트 시대인 요즘 텔레비전에 고도 비만인인 사람이 극한의 노력으로 정상 체중이 된 사연이 자주 나온다. 체중 감량에 성공한 사람에게 행운이라는 게 있을까? 먹고 싶은 욕망을 참고 먹기 싫지만 체중 감량에 효과적인 식이요법을 받아 들이고 지방이 타들어가는 고통을 견디며 꾸준하게 운동을 한다. 그게 대부분 체중 감량에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점이다. 요요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감량 성공 후에도 운동을 계속하고 식이요법을 해야 한다. 어디에도 행운이라는 요소는 없는 것 같다. 오직 노력만 필요할 뿐이다. 그러나 다이어트에 '불확정성'이라는 개념이 들어가면 상황이 전혀 달라진다.

체중 감량에 성공하려면 규칙이 중요하다. 고열량의 음식을 자주 많이 먹고 운동하지 않는 규칙을 저열량의 음식을 제한하여 먹고 즉시 운동하는 규칙으로 바꿔야 한다. 규칙이 있다는 말은 예측 가능하다는 말이다. 고도 비만 상태가 유지되는 것은 나쁜 상태의 규칙이 계속 유지된다는 말이고 정상 체중으로 가기 위해 새로운 규칙을 적용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쉽지 않다. 새로운 규칙을 적용하려고 하지만 늘 어떤 사건이 터진다. 야식을 먹지 않으려면 저녁 10시 이전에 자야하는데 갑자기 해결해야 하는 일이 생겨서 새벽 2시까지 야근을 한다. 10시에 자면 느끼지 않을 배고픔을 참고 일해야 한다.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적어도 7시에 일어나야 하지만 야근으로 인해 겨우 8시에 일어나 굶주린 배를 안고 출근을 한다. 점심 식사 시간까지 또 굶주림을 견뎌야 한다. 점심 시간이 되었지만 저열량 음식을 먹어야 한다. 피곤함으로 인해 점심을 대충 먹고 책상 위에 엎드려 잠시 잔다. 점심 식사 후 운동을 해야 하지만 하지 못했다. 이런 식으로 새로운 규칙은 쉽게 무너진다. 무너짐의 시작은 '야근'이었다. 노력이 부족한 것이 아니라 그 노력을 유지할 행운이 따르지 못했다.

다이어트를 하기 위해 노력이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다이어트에 행운이 필요하다면 다들 이해하기 힘들 것이다. 그러나 성공적 다이어트를 위해 반드시 행운이 필요하다. 정해진 시간에 식사를 할 수 있는 행운이 필요하고, 정해진 시간에 운동을 할 수 있는 행운이 필요하고, 정해진 시간에 잘 수 있는 행운이 필요하다. 행운이라고 말하는 것은 우리가 조정할 수 없거나 조정하기 매우 힘든 상황이 자주 발생하기 때문이다. 

삶에서 불확정성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은 마치 우주에서 암흑물질이 차지하고 있는 비율과 비슷하다. 우리는 예측할 수 있는 것들만 알고 있을 뿐 나머지는 모른다. 예측 가능한 부분으로 어떤 일을 시작하고 그것이 진행되고 있을 때 아무런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어느 순간 예측이 빗나가고 일정이 지연되고 준비하지 못했던 일이 튀어나오기 시작한다. 예측은 엉망이 되고 계획은 의미없고 탄식과 실망의 감정에 휩싸인다. 그리고 묻는다, "왜 내게 이런 일이 생긴 거지? 정말 운이 없어."


비즈니스

비슷한 상황에서 비슷한 비즈니스를 했지만 어떤 사람은 성공하고 어떤 사람은 실패한다. 노력의 관점에서 둘을 비교하면 성공한 사람이 더 노력했고 실패한 사람은 덜 노력했다고 볼 수 있다. 행운의 관점에서 비교하면 성공한 사람에게 더 큰 행운이 있었다고 볼 수 있다. 노력은 계획할 수 있는 것이고 행운은 우연한 것이라 생각하면 아무래도 노력에 더 많은 가치를 줄 수 밖에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인생에서 불확정성이 갖는 영역이 훨씬 크다고 바라보면 노력은 성공의 이유가 될 수 없다.

어제 쓴 글에서 아이러브스쿨 창업자인 김영삼씨에 대한 아쉬움을 그런 것이다. 그는 우연한 기회에 사업적으로 성공할 가능성을 발견했고 또한 운 좋게 주변에 그 아이템을 웹 사이트로 구현할 사람이 있었고 초기 투자자금도 확보할 수 있었다. 그리 어렵지 않게 거대한 사용자가 사용하는 웹 사이트를 구축할 수 있었다. 행운이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행운으로 즉 불확정성의 영역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면서 행운은 불행이 되었다. 법률적으로 회사의 지분을 빼앗기게 되었지만 그가 아이러브스쿨을 경영하거나 다른 웹 사이트를 만들 기회도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에게 다가온 행운이 계획의 일부라고 굳게 믿었다. 행운이 사라지자 그의 계획은 어디서나 발견할 수 있는 그저 그런 아이디어일 뿐이었다. 

실패한 사람이 덜 노력했다고 평가하거나 성공한 사람에게 더 큰 행운이 있었다고 짐작하면 아무런 배움을 얻지 못한다. 우리가 측정하지 못했던 어떤 요소 - 나는 그것을 불확정성이라고 부른다 - 를 발견하기 위해 집중할 때 비로소 배움을 얻을 수 있다. 행운은 어디에나 존재한다. 그러나 그것이 언제 다가올지 어떤 형태로 나타날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행운은 예상하지 못한 시간에 예상하지 못한 형태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능숙한 어부는 어떤 시기에 어떤 장소에 낚시대를 내려야 할 지 안다. 그러나 늘 계획했던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부는 끊임없이 낚시대를 내리고 올리고 주변을 관찰하고 새로운 곳으로 옮긴다. 불확정성의 영역을 줄이려는 게 아니라 그런 게 인생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노력과 행운을 대립시켜 바라보면 어떤 배움도 얻을 수 없다. 행운에 대한 기대로 일을 시작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노력을 측정 가능한 요소로 바라보고 행운을 분명히 존재하지만 계획할 수 없는 불확정성의 영역으로 이해할 때 비로소 미래를 꿈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