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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아내가 경력직에 지원해 보라고 한다

아내와 만난 것은 1996년. 그녀는 그 해 졸업이라 여러 회사에 지원을 했다. 방송국 PD에 지원해서 5차에 걸친 과정에서 최종 합격자 2인 중 하나가 되었지만 탈락했고 그 과정에서 대기업 계열 광고 회사의 최종 면접까지 갔지만 그건 통지서를 늦게 받아 본의 아니게 탈락. 정말 원하고 원했던 PD 부분에 탈락 통보를 받았던 시점에서 별 생각없이 지원했던 공기업에서 합격 통지를 받았다. 그렇게 회사를 다녔던 것이 벌써 15년 째. 우여곡절이 많았지만 공기업의 특성 때문인지 회사를 잘 다니고 있고 지방으로 발령 받았다가 다시 서울 본사로 발령 받는 행운도 있었다. 

그녀와 결혼한 지 10년이 넘었다. 그 동안 가끔 자기 회사의 경력직으로 지원하라는 이야기를 하곤 했다. 나는 발끈하기도 했고 무시하기도 하며 살아 왔다. 엊그제 그녀가 2012년 경력직 지원 서류를 테이블 위에 놓고 간 걸 봤다. 무시하는 대신 이번엔 좀 진지하게 그 서류를 봤다. 

사회 생활 15년. 옮겨 다닌 회사는 10개 정도. 내가 회사를 만들어 웹 서비스 컨설팅을 한 것은 5년. 15년의 사회 생활을 돌이켜 보면 한 마디로 '불도저'다. 주위에 어떤 기회가 오든 말든 내가 선택한 길이 있으면 그냥 밀어 부쳤다. 진득하게 기다리는 건 성격에 맞지 않았다. 한 걸음 늦게 갔으면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것도 알았지만 재미 없지 않나. 먼저 나가서 다른 일을 하고 싶었다. 그렇게 10년을 밀어 부쳤다. 뭐 인생 별 거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한동안 굉장히 아팠다. 병원을 드나드는 시간이 흔했다. 병상에 누워 있거나 집에 있으면서 생각을 했다. 100미터를 있는 힘껏 달리고 1년 동안 앓아 눕는 것과 매일 매일 10미터씩 달리는 것 중 뭐가 더 현명한 가 처음 비교해 봤다. 한 번도 그런 비교를 한 적 없었다. 아프니까 그런 비교가 되었다. 한 번도 내 나이에 대해 생각해 본 적 없었다. 그런데 주변 사람들은 내가 나이가 드는 걸 알았다. 점점 동생들이 많아 졌다. 그들이 내게 물었다, "형, 나는 지금 뭘 해야 해요?" 그들에게 100미터를 미친 듯 달리라고 말할 수 없었다. 온 몸을 다해 달리고 앓아 누으라고 말할 수 없었다.

아내는 마흔이 된 내게 자기 회사 - 공기업의 경력직에 지원해 보라고 한다. 울컥했다. 내가 지난 세월 동안 만들어 온, 혹은 만들고자 한 삶이 어떤 것인데 이렇게 폄훼하는 가 싶어 화가 났다. 그런데 나는울화감을 누르고 진지하게 생각해 봤다. 100미터를 불태우며 달리고 쓰러진 것에 대해.

그래서 오랜만에, 한 5년 만에 이력서를 다시 쓴다. 그 기업에 합격하기 위해 이력서를 쓰고 있는 게 아니다. 건방진 내 삶에 대한 반성이고, 아내에 대한 미안함으로 이력서를 쓰고 있다. 내가 정말 가치로운가?라고 다시 묻고 있다. 아니면 어떤가. 중요한 건 스스로 묻는 것이다,

"제대로 살고 있나?"

정말 나는 제대로 살고 있나? 라고 묻는다. 새로운 이력서와 자기 소개서를 쓰고 나면 더 나아질 것이다. 최소한 나이값은 할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고 그렇게 되어야 한다. 매번 물어 볼 때마다 매번 다른 답을 하고 있지만 늘 의미가 있는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