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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Insight

팀 블로그 (team blog)

0. 팀블로그에 대한  고민

국내에 블로그가 소개되던 초창기에 블로그의 정의와 유형에 대한 많은 토론이 있었다. 팀 블로그(team blog)는 블로그에 대한 개론적 논의에서 빠지지 않고 언급되곤 했는데 대개 "특정 주제를 여럿이 함께 다루는 블로그"를 의미했다. 기술적 관점에서 팀 블로그는 기존 블로그에 다수의 계정(account)을 추가하는 정도라서 그리 특별할 것은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블로그에 대한 개론적 논의에서 팀 블로그를 중요하게 언급하는 연사들이 많았다. 그 대부분의 이유는 상업적 가치 때문이었다.

1인 미디어로서 블로그가 상업적 가치를 갖기 위해 팀 블로그를 매우 중요한 의미가 있었다. 지금은 아주 시들해버렸지만 몇 년 전만해도 대기업의 경우 인트라넷(intra-net)에 기업원 개개인의 블로그를 설치하여 메타 블로그를 운영하거나, 부서의 팀 블로그 운영이 경영 혁신이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해다. 결과론적 분석일 수도 있으나 국내에 블로그가 보급된 지 6년이 넘는 시간이 흐르는 동안 블로그를 통한 경영 혁신 사례 혹은 회사내 팀 블로그의 성공 사례는 발견되지 않고 있으니 앞선 생각들은 그리 훌륭한 예측은 아니었나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여전히 팀 블로그에 대한 의문을 갖고 있었다. 5~6년 전 블로그에 대한 개론적 논의가 가득하던 시절 혹은 최근 몇 년 사이에 탄생한 블로그 마케팅 회사들의 팀 블로그에 대한 주장을 들을 때마다 '뭔가 설명이 부족하다'는 생각을 자주 했다. 팀 블로그의 중요성이나 가능성에 대해 그들의 주장 - 혹은 나 또한 반복했던 주장 - 에 동의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설명이 뭔가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몇 년 전 내 생각 또한 매우 추상적인 것이어서 뭔가 부족함을 느낄 뿐 질문 자체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 수도 없었다.

약 5년 전에는 그리 심각한 고민이 아니었지만 2년 전 쯤 '팀 블로그의 중요성'에 대한 고민을 다시 하게 되었다. 태터앤미디어를 비롯한 블로그 마케팅을 전문으로 하는 기업들이 생겨날 즈음이었는데, 당시 웹 서비스 컨설팅을 하던 회사에서 내게 이런 질문을 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온라인 브랜드를 위해 회사 직원들이 팀 블로그를 운영하는 게 효과적일까요?"

대개의 경우 단호하게 의견을 제시하는데 익숙한 나였지만 이 질문에 대해 아직 결론을 내지 모하고 있었고, 심각한 수준으로 고민을 못했기 때문에 적절한 답변을 할 수 없었다. 상황에 따라 다르지만 팀 블로그가 그리 효과적이지 못할 가능성이 크다고 대답했을 뿐이다. 하지만 고객사가 팀 블로그에 대해 공부할 시간을 줄 필요는 있기 때문에 몇몇 블로그 마케팅 업체를 소개해줬다. 업체들은 자신들의 팀 블로그 운영 방식을 소개했고 그 가능성을 높이 평가했다. 업체들의 이야기를 듣자면 팀 블로그는 새로운 가능성이 충분했고, 일정 수준의 교육을 받는다면 기존 매체 광고보다 나은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런 설명에 대해 매우 불만스러웠고 입술을 쭉 내밀고 회의실 구석에서 투덜거리곤 했다. 그러나 뭐가 불만인지 여전히 알 수 없었다. 이런 상태 즉 뭔가 불만이긴한데 뭐가 불만인 지 알 수 없는 상태는 2년 가까이 지속되었다. 그러다 최근 내 불만이 뭔지 알게 되었고 그 불만에 대해 다소 적절한 그러나 여전히 불완전한 대답을 찾게 되었다.


1. 팀 블로그의 정의와 운영

팀 블로그에 대한 많은 논의와 개념 토론에서 내가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은 이런 것이었다,

"팀 블로그의 실제적 구분과 개념적 정의"
"팀 블로그의 성공적 운영을 위한 조건"


팀 블로그에 대한 기술적 정의는 "여럿이 하나의 브랜드로 블로깅하는 것"이라고 정의하는 게 가장 바람직한 것 같다. 하나의 도메인을 여러 사람이 공유하여 사용하는 게 일반적인 팀 블로그의 형태이긴 하지만 만약 서브 도메인을 각각 사용한다고 해도 팀 블로그라 부르는데 큰 무리는 없다. 심지어 개별적으로 자신의 도메인을 유지하고 특정 포스트(post)만 공유하는 메타 블로그 형태도 팀 블로그가 될 수  있다. 기술적으로 팀 블로그는 다양한 형태를 유지할 수 있다. 때문에 팀 블로그를 다른 형태의 블로깅과 구분하는 가장 적절한 정의, 즉 실제적 구분을 위한 개념적 정의는 "팀"이라는 명칭에서 찾을 필요가 있을 것 같다.


"팀"은 협력 관계의 단위를 뜻한다. 기업에서 "팀"은 보다 복잡한 의미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팀은 목표와 리더로 구성되는 단위를 말한다. 이 의미가 팀 블로그를 이해하는데 가장 적절한 것 같다. 팀 블로그는 목표를 공유하고 있어야 하며 리더가 있어야 한다. 보통 팀 블로그에서 목표는 '주제'가 되고 리더는 '편집자(editor)'가 된다. 운동 경기에서 '팀'이 승리하기 위해 필요한 요건이 무엇일까? 명확한 목표와 과학적인 훈련, 적절한 전술, 협동심, 리더쉽, 물적 지원, 팀원의 육체적 능력, 합리적 지시, 규율, 절제, 도덕심... 엄청나게 많은 요소들이 존재한다. 팀 블로그의 성공 요인은? 그냥 글만 잘 쓰면 되는가? 글 잘 쓰는 여럿이 모이면 성공할 수 있는가?


"모든 중요한 것들을 제외한 나머지 것들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차라리 성공하는 인생에 대해 논의하는 게 빠를 지 모르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성공적인 팀 블로그 운영에 대한 조건 중 가장 소중한 조건 2가지를 정리할 수 있었다.

1. 비전의 공유
2. 필연적 불확실성


이 두 가지를 만족시키지 못하는 조직이라면 팀 블로그를 만들 필요도 없고, 만들어도 제대로 운영할 가능성이 매우 낮다. 팀 블로그를 성공적으로 운영한다는 건 목표를 성실하게 수행하는 상태가 오랫동안 지속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핵물리학자들이 팀 블로깅을 통해 최신 이론에 대한 논의를 계속하고 싶다면 팀 블로그를 만든 이후에도 매주 2개 이상의 글이 계속 올라오는 상태가 유지되어야 한다. 방문자에는 별 관심이 없기 때문에 방문자 숫자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반면 기업의 홍보를 위해 유지되는 팀 블로그라면 하루 방문객 1천 명 이상의 숫자가 꾸준하게 유지되는 게 중요하다. 댓글 따위는 안 달려도 관계없다. 자신의 브랜드를 확대시키기 위해 팀 블로깅을 한다면 방문자와 댓글이 매우 중요하다. 이슈의 생산도 중요해진다.


2. 비전의 공유

그런데 어떤 목적으로 만들어진 팀 블로그든 비전(vision)이 공유되지 않은 상태라면 반드시 실패하거나 흐지부지한 상태로 운영될 수 밖에 없다. 뻔한 이야기라고 생각할 지 모르겠지만 의외로 많은 팀 블로그가 이런 비전의 공유를 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상태에서 운영된다. 대표적인 경우가 회사의 홍보 블로그다. 회사 홍보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비전은 무엇일까? 대개의 경우 "회사의 홍보"를 비전이라고 생각한다. 천만의 말씀이다. 그건 비전이 아니라 그 블로그의 주제일 뿐이다. 블로그의 주제가 곧 블로그 운영의 비전이라고 생각하는 건 아주 흔한 착각이다.


A라는 은행에서 고객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고객만족팀에게 팀 블로그를 운영하기로 결정했다. 경영진이 생각할 때 팀 블로그를 통해 고객에게 하지 못했던 이야기와 널리 알릴만한 고객 응대 사례를 팀 블로그를 통해 쓰면 좋으리라 생각했을 것이다. 게다가 블로그 마케팅 전문 기업이 컨설팅을 해 준다고 했으니 크게 문제는 없으리라 생각했다. 팀 블로그를 위한 규칙이 세워졌고 콘텐츠도 계속 올라가기 시작했다. 몇 개월이 지났다. 페이지뷰도 제법 나오고, 가끔 댓글도 붙어 있다. 블로그 마케팅 전문 기업의 보고 자료에 의하면 꾸준한 성장세라고 한다. 그런데, 뭔가 부족하다. 이런 정도의 수준을 기대한 것인 아니다. 뭔가 화끈한 반응이 올 것이라 기대했지만 그렇지 못하다. 그저 예상했던 수준 정도일 뿐이다. 불만스럽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감동도 없다. 오히려 가끔 댓글에 불만 가득한 고객의 욕설이 올라와 곤란할 뿐이다. 게다가 팀 블로그 담당자가 바뀌면서 과거에 비해 글의 수준도 낮고 글을 써야 하는 부서에서 불만도 생기고 있다. 아무래도 곧 팀 블로그를 정리해야 할 것 같다.


이 사례에서 발견할 수 있는 착각은 무엇일까? 회사 경영진에서 팀 블로그의 운영을 결정할 때 그들의 목표는 명확했다. 그러나 정작 팀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단지 목적이 있었을 뿐 서로 비전의 공유가 없었다. 그들이 공유하고 있는 비전은 "더 많은 봉급"일 가능성이 높다. 비전의 공유가 중요한 이유는 '이슈(issue)'를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고의적으로 이슈를 만들어내지 않아도 비전이 공유된 상태에서 작성된 콘텐츠에는 자신도 모르게 이슈가 포함되기 마련이다. 이것은 팀 블로그를 목표 수치 이상의 성과를 거두게 만든다.

예컨데, 한 정치인의 브랜딩을 위한 팀 블로그가 있다. 이 블로그는 그 정치인의 일상 생활을 다루고 있다. 블로그에 작성되는 글은 정치인 주변 사람들에 의해 취재된 것이다. 이 블로그를 유지하는 서너명의 보좌진들은 팀 블로그를 운영하게 된다. 팀 블로그의 주제는 특별히 정해 진 것이 없었고, 그저 온라인을 통해 서로 더 친근해지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이 블로그에 올라 온 글을 종합일간지 기자가 읽게 되었는데 정치면에서 큰 이슈가 된다. 바로 보좌진들의 봉급에 대해 언급한 내용이었다. 별 생각없이 올린 내용이었지만 기자 입장에서는 흥미로운 콘텐츠였고 종합 일간지에 블로그가 언급됨으로써 정치인의 브랜딩에도 큰 도움이 되었다.

버즈 마케팅을 하려는 의도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팀 블로그가 유명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들이 '정당인' 혹은 '정치인'의 보좌진으로서 하나의 비전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큰 비전의 테두리 속에서 운영되던 팀 블로그였기에 설령 주제가 불명확하게 보이더라도 실제로는 아주 명확한 주제를 갖고 있었던 것이다. 이것은 매우 흥미로운 현상이다. 많은 기업 홍보 블로그가 팀 단위로 운영된다. 그런데 팀 블로그의 운영 주체들의 면면을 보면 "주제"만 있고 "비전의 공유"가 없다. 때문에 뻔한 이야기가 올라올 뿐 일상적이지만 동시에 큰 이슈가 될만한 이야기는 올라오지 않는다.



3. 필연적 불확실성

팀 블로그의 고유한 특징 중 하나는 "필연적 불확실성"이다. 어떤 일이 벌어질 지 예측할 수는 있지만 그 일이 언제 벌어질 지 알 수는 없다는 말이다. 블로깅을 하다 보면 반드시 악플과 만나게 된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걸 잘 알고 있다. 그러나 언제 악플이 붙게 될 지 알 수 없다. 어떤 글에 붙게 될 지 알 수도 없다. 다만 언젠가 악플과 만나게 된다는 것은 분명히 알고 있다.

팀 블로그도 마찬가지다. 이슈(issue)는 언젠가 반드시 발생한다. 이슈에 의해 하루 방문자가 10만 명이 넘을 수도 있고, 순식간에 유명한 팀 블로그가 될 수도 있다. 그러나 그게 언제인지 알 수 없다. 어쩌면 영원히 이슈를 만들지 못할 수도 있다. 영원이라는 개념에 크게 신경쓸 필요는 없다. 이슈를 만들지 못한다면 대개의 기업 팀 블로그는 그 존재가치 자체를 상실하기 때문이다. 그 불확실성은 마치 리얼 버라이어티 프로그램 (real variety program)의 속성과 유사하다. 리얼 버라이티의 원조격이라고 할 수 있는 어메이징 레이스(amazing race)는 매우 간단한 몇 가지 규칙이 있다. 각 구간 별로 팀이 경쟁하고, 별도의 코스를 극복해야 한다. 1등에게는 큰 금액의 상금이 주어진다. 언뜻 생각하면 각 팀들은 그저 열심히 코스를 극복하여 1위를 향해 달리기만 하면 될 것 같다. 그러나 어메이징 레이스에는 드라마(drama)가 존재한다. 바로 사람과 사람이 만들어내는 드라마다. 언제 일이 터질 지 알 수 없지만, 이 레이스에 참가한 사람들은 어떤 식으로든 싸우게 된다. 또한 어떤 식으로든 화해하게 되고, 어떤 식으로든 배신하고, 경멸하며, 욕하고, 웃고, 울게 된다. 어떤 형태든 시청자의 눈시울을 자극하는 장면이 반드시 등장하게 된다. 문제는 그게 언제가 될 지 알 수 없을 뿐이다. 너무 오래 이런 장면이 나오지 않으면 프로그램 자체의 시청율을 보장할 수 없기 때문에 프로듀서는 각종 장치를 마련해 둔다. 그러나 이런 장치가 반드시 의도한대로 작동하지는 않는다. 다만 가능성을 높여 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프로듀서는 "필연적으로 드라마틱한 상황"이 벌어질 것임을 잘 알고 있다.


4. 편집자

팀 블로그에서 프로듀서의 역할을 하는 사람은 편집자다. 편집자는 고의적으로 콘텐츠를 선택하기도 한다. 기업 홍보 블로그에 주제와 그리 맞지 않는 콘텐츠를 올리기도 하는데 일종의 변화 전략으로 관심을 유도하기 위함이다. 또한 편집자는 글을 올리는 사람들 - 팀 블로거 - 에게 끊임없는 자극을 줘야 한다. 드라마가 나와야 비로소 팀 블로그는 "요구조건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기 때문이다. 만약 기업이 팀 블로그를 통해 얻을 수 있는 수익이 100이고, 그 수익과 똑같은 수익을 기존 광고나 경영 기법으로 얻을 수 있다면 굳이 팀 블로그를 해야 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요구 조건 이상의 가치"를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팀 블로그를 운영하게 되는 것이다. 팀 블로그 운영은 기존 홈페이지나 광고에 비해 결코 저렴하지 않다. 오히려 기업 구성원 개개인에게 필요로 하는 노력을 생각해 본다면 외형으로 지출되는 비용으로 평가할 수 없는 비용이 소요된다고 볼 수 있다.


팀 블로그의 성공적 운영을 위해 필요한 것은 글을 잘 쓰는 사람도 아니고, 멋진 콘텐츠도 아니다. 그것은 기술적인 문제일 뿐이다. 심지어 외부 집필가를 고용해도 관계없다. 기업이 요구하는 수준을 만족시키는 팀 블로그라면 비전의 공유는 불필요하다. 그러나 팀 블로그를 통해 "요구조건 이상의 가치"를 창출하고 싶다면 두 가지를 반드시 고려해야 한다. 팀 블로깅을 하는 사람들의 비전 공유와 필연적 불활실성을 이끌어나갈 편집자다. 기업, 특히 내부에 훌륭한 콘텐츠가 많이 존재하는 대기업에서 팀 블로그가 제대로 운영되지 않는 것은 다른 특별한 이유가 아니라, 팀 블로그의 특성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또한 그 특성에 맞게 편집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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