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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우리 가족 다 잡아 가세요

한미 FTA와 미국소 수입 재협상에 대한 촛불 시위가 이미 한달 가까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저는 그동안 시위 주변을 맴돌기만 했을 뿐 시위에 참가하지는 않았습니다. 시위의 본질에 대한 미온한 태도와 판단 때문이었습니다. 그런 과정에서 이 사태에 대해 당사자인 한나라당의 원희룡 의원과 인터뷰를 한 적도 있습니다. 그 날도 촛불 시위가 있었습니다.





이 기사를 쓰고 2주일이 지난 며칠 전이었습니다. 새벽 2시쯤 여동생에게 문자가 왔습니다.

"자나? 광화문에선 지금도 난리인가봐"

무슨 소리일까. 혹시나 광화문 현장에 있나 싶어 문자를 보냈습니다. 어제 통화를 했습니다. 그 동안 몇 차례 촛불 시위에 나갔다고 합니다. 어제도 새벽 1시까지 촛불 시위 장소에 있었다고 합니다. 조금 전까지 오마이뉴스를 통해 시위 현장 중계를 지켜 보고 있다가 동생에게 전화를 했습니다. 시위가 가두 시위로 변하고 경찰들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 보였기 때문입니다.
잠결에 동생이 전화를 받습니다, 어제 새벽까지 같이 있느라 오늘은 체력이 다해 못 나갔다고 합니다. 동생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금요일 저녁에 나도 나갈테니 함께 있자."

동생은 무슨 말인가 잠깐 생각하더니 그러자고 합니다. 그렇게 동생과 나는 이번 주 금요일에 함께 촛불 시위를 하기로 했습니다. 금요일에 집회가 있는지 없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아마 있을 겁니다. 어쨌든 우리는 그 때 광화문에서 만나기로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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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 대한 미안함

제 여동생은 올해 서른 셋입니다. 여동생은 서울 시청 근처에서 열심히 회사 생활을 하는 여성입니다. 그런데 저는 대학 생활 내도록 여동생에게 죄 지은 것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소위 운동권 학생이었습니다. 나라와 민족과 시민을 위해 대학생이 해야 할 일이 분명히 있다고 믿었고 그런 일을 향해 대학생으로서 충실히 살려고 노력했다고 지금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봐도 가족에게 그리 좋은 아들은 아니었습니다. 일주일에 한 두번 집에 들어가고 데모한다고 부모님 마음 졸이게 만들고 시위 대열에서 가족을 힘겹게 만든 시간이 많았습니다.

제가 그런 애국적인(?) 일을 할 동안 여동생은 매우 힘들게 학교 생활을 했나 봅니다. 대학 3년을 마치고 군대에 갔는데 휴가 기간에 왔더니 여동생이 대학 진학을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유를 물어봤더니 '오빠처럼 대학가서 데모나 할 것이면 나는 가지 않겠다'고 했다고 부모님이 그러시더군요. 저는 처음으로 오빠로서 여동생에게 깊은 죄스러움을 느꼈습니다. 또한 처음으로 우리 가족의 장남으로 해야 할 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동생의 변화를 모릅니다

나는 동생이 그 이후에 어떻게 변했는지 잘 모릅니다. 제 삶을 꾸리기에도 너무 바빴습니다. 그런 여동생이 며칠 전 제게 이야기를 했습니다, "촛불 시위에 나가고 있다"라고. 저는 엊그제 일을 나가며 동생에게 현재 정세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습니다. 나가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지만 현재 촛불 시위에 대해 정권과 언론이 불법 시위로 규정하고 밀어 부치고 있으니 조심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동생은 그날도 시위 장소에 나갔고 새벽까지 자리를 지키다 왔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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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이 시위 자리를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의 강제 진압이 있었다고 합니다. 마음이 놓였던 것이 아니라 머리가 끓어 오르는 것 같았습니다. 만약 동생이 30분 더 그 자리에 있었고 동생이 체포되었다면 나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그래서 저는 동생을 지키려고 시위 현장에 나가기로 했습니다.



이 글을 쓰고 있을 때(2008년 5월 28일 00:15) 오마이뉴스 동영상을 보고 있습니다. <남대문 경찰서장>이라는 분이 나와서 그럽니다, "기자분들 계십니까? 기자분들은 (시위대열에서) 밖으로 나와주시기 바랍니다"라고 확성기를 들고 외칩니다. 그리고 불법 시위니 강제 진압을 하겠다고 경고합니다. 여러분. 나는 이런 상황에서 내 여동생을 보호하기 위해 금요일 촛불 집회에 참여합니다. 과거 내 가족이 나를 지켜 주었듯 이번엔 내가 내 가족을 지키려고 합니다.

이제 이 집회는 미국 쇠고기 수입 문제가 아니라 대한민국 서민의 삶을 지키기 위한 문제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든 게 아닙니다. 정당하고 서글픈 우리의 현실적 요구에 대해 아무도 대답하지 않으니 모두가 나와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을 잡아 가두겠다고 하니 이젠 가족들도 나서서 내 가족을 보호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내 여동생을 지키기 위해 집회에 참여하듯 다른 어떤 사람들은 다른 목적으로 이 집회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이 집회의 규모는 계속 커질 것입니다. 국민이, 시민이, 우리가 무엇을 원하는 지 모른다면 확성기를 들고 "기자는 빠지라"고 외치던 남대문 경찰서장의 태도가 유지된다면 이 시위는 끝나지 않을 겁니다. 우리를 잡아 가두면 가둘수록 더 많은 사람들이 가족을 보호하기 위해 나설 겁니다.


그렇게 되면 이것은 결코 끝나지 않는 시위가 될 것입니다. 그 끝에 도달하길 원하십니까? 부모님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어쩌면 금요일 저녁에 아들과 딸이 함께 연행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저는 한 가지 믿는 게 있습니다. 저와 여동생, 둘은 아마 그 순간 이 땅에 살고 있는 형제임을 깨닫게 될 것 같습니다.


2008.00:30 당당하게 연행되는 시위대

이 글을 쓸 즈음 100여명의 시위대가 조용히 태연하게 연행되고 있습니다. <남대문 경찰서장>의 경고처럼 '불법 시위'를 했기 때문에 연행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분들의 표정은 한결같이 느긋합니다. 몇몇은 연행 중에 "우리의 시위는 정당했다"고 언론에 대답하고 있습니다. 연행되는 사람들 주변에는 민주변호사협회 분들이 대기하며 이들을 보호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런 당당함이 앞으로 시위에 참여하는 시민들에게 더 용기를 주게 될 것입니다. 잡아가라, 그러나 나는 당당하다. 이런 명제를 현 정부가 어떻게 받아 들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