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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우공이산"과 비전의 공유

우공이산의 이야기는 잘 아실 겁니다. 이 이야기는 하고자하는 마음이 있다면 오랜 세월이 걸려도 이루고자 만다는 이야기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좀 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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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자>에 나오는 이 이야기는 북산에 사는 우공이라는 90살된 노인이 산을 옮겨 남과 북의 길을 뚫고자하면서 시작합니다. 친구인 지수가 평생을 해도 못할 일을 아흔살이나 된 우공이 하려고 하니 만류를 하는데 그 때 우공은 '내가 못하면 내 자손이 계속 할테니 산은 더 늘어나는 일이 없으니 결국 옮기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다. 우공의 이런 원대한 이야기에 지수는 할 말을 잃는데, 이 이야기를 엿들은 산신령이 천황상제(옥황상제)에게 인간의 이 끊임없는 노력으로 자기의 살 터전이 없어질까 두려워 만류를 요청합니다. 옥황상제는 정성에 감동하여 남과 북을 가로 막고 있던 두 산을 각각 다른 곳으로 옮기게 합니다.

원문은 앞 뒤가 좀 긴데 핵심적인 부분만 옮기면 이렇습니다,

北山愚公長息曰:"汝心之固,固不可徹,曾不若孀妻弱子. 雖我之死,有子存焉;子又生孫,孫又生子;子又有子,子又有孫;子子孫孫,無窮也,而山不加增,何苦而不平?"

우공이산의 고사성어는 꽤 많은 경우에 인용됩니다. 가장 흔히 인용되는 경우는 "어떤 일이든 끊임없이 의지를 굽히지 않고 하면 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과 신념에 대해 흔히 인용됩니다. 그런데, 이 고사성어는 단지 이렇게 이해되는 것 이상의 많은 의미가 있습니다. 가장 먼저 우공은 자신의 의지를 가족들에게 밝혔을 때 가족 중 가장 믿을만한 사람이라고 할수 있는 아내가 그의 뜻에 반대하며 "도대체 그 산에서 판 흙은 어디에 갖다 버릴 것인가요?"라고 묻습니다. 그러자 우공은 "발해에 버릴 것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주변의 반대를 극복하는 기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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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의 또 다른 교훈은 '주변의 반대'입니다.

<열자>가 기원전 5세기 경이니 벌써 2천 4백년 전의 일입니다. 그런데 그 때도 우공처럼 뭔가 다른 방식으로 세상에 도전하려는 사람에겐 '주변의 반대'가 있었습니다. 가장 먼저 반대한 것은 가족이었고 그 중 아내였습니다. 기록으로는 아내의 반대만 나와 있지만 사실 고령의 노인이 산을 옮기자니 그 가족의 반대도 만만치 않았을 겁니다. 게다가 우공은 아내에게 말했듯 발해에 흙을 버리고 오는데 왕복하는데 1년이 걸렸다고 합니다.

그걸 보고 친구인지 동네 사람인지 모르겠지만 '지수'라는 사람이 그 무모함에 헛웃음을 지으며 반대를 합니다. '지수'만 그러했겠습니까? 아마 동네 방네 소문이 다 났을 겁니다. 죽을 날이 훨씬 지난 노인이 망령이 들었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우공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대손손 이 일을 하면 산을 옮기지 못할 이유가 없지 않나?"

만약 우공이 주변의 반대에 대해 자신 혼자 무엇을 할 것이라 말했다면 비웃음을 크게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공은 어떤 식으로든 자신의 가족을 설득했고 가족들도 대를 이어 산을 옮길 것이라 말했습니다. 주변 사람들도 할 말이 없었을 것입니다. 가만 생각해 봤을 때 만약 우공의 자손이 끊임없이 산을 옮기는 일을 한다면 가능할 수도 있으니까요. 그들은 자신이 산을 옮길 수 있나 없나를 고민했을 지 몰라도 대를 이어 수 십년 아니 수 백년이 걸려도 산을 옮길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비전의 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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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공이산이라는 고사성어의 핵심은 인간의 노력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이 고사성어의 핵심은 "비전(vision)"입니다.

우공은 사방 700리에 달하는 두 개의 산 때문에 소통이 막혀 있는 현재의 상황에 대해 깊이 고민했을 것입니다. 자연이 만든 두 개의 산 때문에 불편하기 이럴데 없는 현재의 상황을 타개할 방안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오랜 시간 고민을 한 후 결심을 했을 겁니다. 비록 내가 살아 있는 동안 달성할 수 없는 일이지만 "우리"가 노력하고 노력하면 해결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 고민했을 것입니다. 자신의 한계에 대해 이해했을 것이고, 그 속에서 할 수 있는 일에 대해 생각했을 겁니다. 그가 선택한 것은 수십 년 혹은 수백 년이 걸리더라도 '저 두 개의 산'이 사라지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중요한 건 바로 이 지점에서 우공이 어떤 선택을 했는가 입니다. 그는 남에게 무엇을 요구하기 전에 스스로 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90살이 되도록 살았던 그는 많은 자손이 있었을 것이고 어쩌면 중대 병력은 되었을 지 모릅니다. 그 정도면 대를 이어 할 수 있는 과업 즉 비전을 제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비전을 가족들을 모아놓고 설득했을 것입니다. 아무리 2천 년 전이고 가부장적 지배 구조가 강력했던 시절이라도 우공이 이런 황당무개한 비전을 설득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가족들 중 일부는 '몇 년만 참으면 노인이 돌아가시겠지...'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가족들은 이 사업에 동참했고 결국 옥황상제가 산을 옮겨 버리는 사태가 발생합니다. 물론 이 사태는 현실이 아닙니다 :-)


우공이산의 함의

우공이산이라는 고사성어는 리더와 리더십, 그리고 리더가 제시하는 비전에 대한 다양한 시사점이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 회사의 리더가 "100년의 비전"을 제시하면 여러분은 어떻게 대응하시겠습니까? 당장 돈이 되지 않지만 분명 큰 비전이 존재하는 어떤 이야기를 한다면 어떻게 이야기하시겠습니까? 큰 비전은 항상 현실적으로 볼 때 '비현실적'입니다. 우공은 가족을 어떻게 설득했을까 궁금해집니다. 또한 우공은 주변의 비난과 비웃음을 어떻게 견뎌 냈을까 궁금합니다. 그리고 우공의 행동에 긴장한 산신령의 행동과 그것을 듣고 두 산을 옮겨 버린 옥황상제의 마음도 궁금합니다.

잘 생각해 보면 이 사자성어는 정치와 매우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한 지역의 문제를 풀고자하는 한 개인이 "내 평생 이 일을 할 것이며 수 많은 사람이 대를 이어 이 일을 이루고 말 것이다"라고 했을 때 지자체 의원이나 공무원들의 변화가 생각납니다. 한 블로그에 대해 제가 썼던 "불독 저널리즘"은 이 이야기에 대한 좋은 예제입니다. 최병성 목사님의 2년 가까이 시멘트 문제에 대해 노력과 인생의 투자는 결국 이 사회가 그 결과를 받아 들이게 만들었습니다.

또한 사업적인 이야기도 생각납니다. 다들 유료화니 사업성이니 떠들고 있을 때 "이 사업은 세상을 위해 무료로 제공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오픈 소스 프로젝트가 그런 경우였고 지금은 수많은 기업들이 오픈 소스를 활용하고 있습니다. 이제 국가적 차원에서 오픈 소스를 활용하는 방안에 대해 고민하고 있고 협의하고 있습니다.


우공이산은 참 많은 교훈을 주는 사자성어입니다. 깊은 의미와 비전을 제시할 수 있다면, 그런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더가 있고 그것에 공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세상은 변화할 수 있다는 의미 말입니다. 우공이 바로 여러분이라면 산 대신 인생이 있을 수 있고 산 대신 정치가 있을 수 있고 산 대신 사업이 있을 수 있습니다. '산' 대신 바뀌는 단어가 무엇이든 우공이 되어 세상을 사는 것은 참으로 흥미로운 일입니다. 영원할 수 없는 인간의 삶을 영원한 것으로 바꿀 수 있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