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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SKT 11번가와 웹 서비스 기획의 관점

내가 SKT의 오픈마켓 <11번가>에 비판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은 그 어디에도 '사랑'을 느낄 수 없었기 때문이다.





오늘 우연히 MBC에서 심야에 방영했던 <장한나 다큐 콘서트>를 봤다. 나는 장한나를 잘 몰랐지만 앞으로 이 친구를 잘 알고 싶어할 것 같다. 장한나의 열정적인 태도는 마치 일주일 동안 밤셈을 하고 끄덕없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뿜어내고 있던 내 기획자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

나는 서른에 에미넘의 음악을 좋아하게 되었다. 또한 서른에 바흐를 사랑하게 되었고 그로 인해 사람들이 좋아하는 많은 콘텐츠와 서비스를 알게 되었다.

장한나는 어렸을 때 음악을 시작했고 또한 어린 나이에 베토벤의 교향곡을 지휘한다. 그러나 나는 장한나의 나이와 관계없이 그녀가 음악을 통해 깨달은 어떤 것을 지휘를 통해 구현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장한나를 음악을 통해 세상의 이치를 깨닫고 우리는 웹을 통해 세상을 이치를 깨달았다.

그녀는 음악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 같았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없다. 사랑하지 않는다면 결코 저런 지휘를 할 수 없다. 노련함을 부족하지만 진심이 분명히 보이는 지휘 말이다.

바로 그런 에너지 때문에 우리는 우리가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일을 아주 태연하게 그것도 훌륭하게 해 낼 수 있다. 첼리스트로 잘 알려진 장한나가 지휘 또한 훌륭하게 해냈듯 쇼핑몰 기획자인 당신은 언제든 포털의 기획도 훌륭하게 할 수 있다.

인생의 의미를 위해 매진하다보면 분명 통하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나는 그것을 사랑이라 생각한다.


<11번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갑자기 사랑으로 이야기가 바뀌었던 걸까? <11번가>를 기획했던 사람들이 이 글을 읽는다면 내가 지금 무슨 이야기를 하는 지 잘 알 것이다. 아마 <11번가> 기획자들은 스스로 최선을 다해 새로운 웹 서비스를 사랑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그 사랑은 일방적이지 않았을까?"

<11번가> 기획자 중 아이를 낳아 본 사람이 있다면 이렇게 바꾸어 다시 물어 보겠다,

"아이가 태어나기 전에 우리는 굉장히 훌륭한 부모가 되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아이가 태어나는 바로 그 순간부터 우리는 뭔가 굉장히 중요한 한 가지를 무시했음을 깨닫게 된다.
 뱃속에 있는 아이는 아무런 반응을 할 수 없지만 태어나는 순간부터 반응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내가 아무리 아이에게 좋을 부모가 되고 싶어도 아이의 반응에 따라
 나는 좋은 부모가 될 수도 있고 나쁜 부모가 될 수도 있다.
 그건 내 노력과 별 관계 없다."

<11번가>는 지금 막 태어난 아이와 같다. 부모로써 11번가를 기획하고 개발하고 준비한 모든 사람들은 이제 다시 겸허해져야 한다. 왜냐면 이제 아이는 탯줄을 통해 숨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숨 쉬기 때문이다. 특히 아이가 커질수록 부모 뿐만 아니라 더 많은 주변의 사람과 환경을 영향을 받게 된다. 겸손한 부모가 될 필요 있다는 말이다.

그 겸손함은 <11번가>를 기획하는 것과 꽤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11번가를 제대로 성장시키려면 단 한 가지가 필요하다.

"끝없는 믿음"

바로 "사랑"이다. <11번가>를 기획했던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는 바로 이것이다. "사랑하라"

그 사랑이 무엇이었는지 지금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다. 왜냐면 뱃속에 들어 있는 <11번가>에 대한 사랑은 이미 끝나 버렸고 지금은 많은 사람들, 많은 생각들, 많은 문화와 만나고 있는 <11번가>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태의 11번가에 대한 사랑은 지금까지 고민했던 것과 전혀 다르다. 고민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한다.


p.s : 이걸 운영에 대한 도움말이라고 생각하지 말기 바란다. 나는 어제도 <11번가>의 경쟁사를 만나서 "망할 확률이 현재는 80%다"라고 이야기한 사람이다. 조언이나 도움말이 아니라 경고다. "즐거운 쇼핑의 구매 전환률은 놀라울 정도다"라고 표현하는 기획자에 대한 노골적인 불만이다. 마치 한 회 100만원짜리 과외 보낸 부모가 "우리 아이 등수가 10등 올랐어요!"라고 놀라와 하는 느낌이다. 50등에서 40등이 되었는데... 그게 뭐 어쨌다고?

p.p.s : <11번가>를 기획했다는 두 사람의 블로그 글을 보았다. 그런데 그 둘의 글 어디서도 진정한 사랑을 발견하지 못했다. 단지 "이 서비스는 굉장하고 멋지며 훌륭하여 정말 성공해야 한다"는 강박을 느꼈을 뿐이다. 푸근한 사랑은 어디에도 없었다. <11번가>가 실패한다면 그 이유는 사업 모델의 문제도 아니고, 프로모션의 문제도 아니고, 비용의 문제도 아니고, 웹 사이트 완결성의 문제도 아닐 것 같다. 만약 실패한다면 분명히 "인간"의 문제다. 사랑하지 못한 인간을 그 곳에 배치한 SKT의 멍청한 결정 때문일 것이다. 이건 확신할 수 있다.


*** <11번가>를 기획했다는 몇몇 기획자에 대한 질문


이 글을 아마도 <11번가>를 기획한 사람들이 읽을 것이다. 정중히 이런 질문을 해 본다. 대답하지 않아도 좋다. 하지만 이 질문에 한번은 진지하게 스스로 대답해 보길 바란다.

1. 고객을 누구라고 생각했나?
2. 자신이 만든 서비스를 누가 제일 즐거워할 것이라고 생각했나?
3. 솔직히, 당신들이 SKT 직원이 아니라면 이런 사이트를 만들었겠는가? 이렇게 만들어 수익을 발생시키고 그 수익으로 회사가 급여를 지불하고 성장해야 했다면? 그러니까 돈이 지금보다 훨씬 적었다면?

내 질문에 대해 잘 대답하고 <11번가>를 잘 꾸려가시기 바란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있지만 그렇다고 문제가 없어지는 건 아니다.


p.s : 2008.03.08에 업데이트

"<11번가>에 대해 지적하는 것 우리도 다 알고 있다"고 말하는 트랙백이 붙었다. <11번가>에 대해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는 블로거들의 이야기에 "우리 의도는 이렇다"는 설명은 한 번으로 족한 듯 하다. 그런 대꾸 전에 웹 사이트로 직접 설명하는 게 맞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