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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 사이트와 커뮤니티, 이마트의 사례

원론적으로 커뮤니티(community)는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는 시공간을 의미한다. 또한 커뮤니티는 그 단어 자체로는 가치 중립적이다. 어떤 상태를 의미할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 매우 자주 "우리 서비스엔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라는 표현을 쓴다. 이 표현은 분명히 잘못되었다.







그럼 어떻게 표현해야 하는 걸까? "우리 서비스엔 구매 고객들이 투덜댈 수 있는 커뮤니티가 필요합니다"라는 식의 표현이 맞다. 모든 웹 사이트는 근본적으로 방문자와 상호 작용하는 기능(interactive feature)이 존재한다. 웹 사이트는 물리적으로 존재하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가 있지만 그것 자체는 별 의미가 없다. 웹 사이트에 아무리 많은 기능과 DB가 존재하더라도 사람이 그 사이트의 존재를 인지하고 접속하지 않는 이상 그것 자체는 별 다른 의미를 갖지 못한다. 웹 사이트가 DB archive와 다른 점은 후자는 저장 자체에 의미가 있기도 하지만 전자는 접속 자체에 의미가 있다. 이런 근본적 속성 때문에 모든 웹 사이트는 커뮤니티 형성의 요소가 있다. 다만 어떤 웹 사이트는 그것을 강조하고 또 다른 웹 사이트는 그것을 무시할 뿐이다.

커뮤니티라는 단어는 분명 가치 중립적이라고 했고, 모든 웹 사이트는 커뮤니티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이것에 동의한다면 "우리 웹 사이트에 커뮤니티가 필요해요"라고 말하는 것이 얼마나 잘못된 표현인지 보다 명확해진다. 모든 웹 사이트는 늘 커뮤니티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웹 사이트 제작자가 고려해야 할 것은 커뮤니티를 강화할 것인가 말 것인가이며 둘 중 하나를 선택했을 때 "어떤 식으로 구현할 것인가?"를 고민해야 할 뿐이다. 다시 말해 웹 사이트의 커뮤니티에서 고민해야 할 핵심적인 요소는 콘텐츠 기획에 훨씬 가까운 것이지 시스템 기획과는 다소 거리가 있다.

어떤 콘텐츠를 구현하는 커뮤니티를 생성할 것인지 고민한 후 그것에 맞는 시스템을 고민해야 한다. 매우 상식적인 이야기인 것 같지만 실제 웹 사이트 기획에서 거꾸로 일을 진행하는 경우가 매우 흔하다. 거꾸로 일을 진행한 사례와 잘못된 결과로 사석에서 가끔 언급하는 웹 사이트는 이마트 웹 사이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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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이 웹 사이트의 존재를 알게 된 것은 이마트 매장이다. 사이트를 만든 후 이마트라는 매장에서 한동안 홍보를 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막상 웹 사이트를 찾아가보면 일반 쇼핑몰과 다를 바 전혀 없다. 이마트라는 매장의 특성이 반영된 것이라곤 기껏해야 '매장에 존재하는 상품'을 파악할 수 있는 정도다. 이마트 웹 사이트의 사업적 역할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아마 이 웹 사이트를 기획한 사람도 고객사(신세계)의 요구 조건을 구현하는 과정에서 많은 제안이 기각되었을 것이다. 충분히 많은 아이디어를 제안했겠지만 고객사와 협의 과정에서 누락되거나 기각되었을 것이다. 바보가 아닌 바에야 이마트 웹 사이트를 이 따위로 기획할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내가 이마트 웹 사이트를 "웹 사이트와 커뮤니티"를 이야기할 때 간혹 언급하는 이유는 이 웹 사이트야말로 자신들이 갖고 있는 커뮤니티의 속성을 완벽히 무시하고 있는 전형적인 사례이기 때문이다. 이마트는 입점과 동시에 근처 상권을 말살하는 속성이 있다. 이마트의 이런 속성 중 하나는 이마트의 다양한 고객 확보 시스템에 근거하는데 이 웹 사이트는 이런 속성이 거의 반영되어 있지 않다. 한 이마트 매장을 이미 5년 가까이 방문하고 있고 매달 적게는 수십만원에서 많을 때는 백만원 넘는 상품을 구매하는 충성 소비자인 '나'를 위한 어떤 커뮤니티도 존재하지 않는다. 내가 원하는 이마트 웹 사이트의 커뮤니티는 이런 것이었다,

"나는 매주 몇 번씩 방문하는 이마트 매장의 캐셔가 누군지 모른다"
"그 매장의 점장이 누군지 모른다"
"칼질 잘하는 정육 코너의 젊은 친구가 누군지 모른다"
"매번 같은 시간대에 같은 줄에 서서 계산하던 저 아가씨가 누군지 모른다"

내가 이마트 매장에서 알고 있는 사람은 딱 한 명 있는데 와인 코너에 파견나와 있는 30대 중반 정도의 여성 판매원이다. 와인을 고를 때 대개 이런 저런 질문을 많이 하는 편이라 그 사람의 얼굴은 기억한다. 그런데 이름이 뭔지 모르고 어떤 와인 업체에서 나온 사람인지 모른다. 몇 주 전에 새로운 상품이 나온다며 기대하라고 이야기했는데 지금 그 와인이 나왔는지 알 수 없고 그 사람에게 물어 볼 방법도 없다.

이마트의 고객으로서 나는 이마트 웹사이트가 지금 언급한 이런 커뮤니티를 일부라도 구현해주길 바랬다. 그리고 장기적으로는 해당 지역에서 이마트를 방문하는 소비자들이 만날 수 있는 채널 역할도 해 주길 바랬다. 이런 기대를 한 것은 이마트를 방문할 때마다 "이미 존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강하게 느꼈기 때문이다. 현실 공간에서 이미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히 존재하는데 그 브랜드를 구현한 웹 사이트에는 존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구현하는 어떤 커뮤니티도 없다. 남들은 없는 커뮤니케이션도 만들고자 노력하는데 이 회사는 무슨 생각인지 있는 커뮤니케이션도 커뮤니티로 구현하지 않는다. 정말 신기한 일이라고 밖에 표현할 수 없다.

도대체 이 웹 사이트를 만들 때 무슨 생각을 한 것일까?

아마 이 웹 사이트를 만든 사람들 - 특히 고객사인 신세계 관계자들 - 은 '커뮤니티'에 대해 뭔가 잘못된 생각을 했거나 아니면 소비자를 대상화했거나 혹은 다양한 커뮤니티의 강력함을 무시했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왜 이마트 웹 사이트 방문자가 팍팍 늘어나지 않는 걸까?" 멀쩡하게 존재하는 커뮤니케이션을 버리고 엉뚱한 짓만 하고 난 후 이런 고민을 분명히 하고 있을 것이다. 알고 보니 이런 고민조차 안하고 있다면 허탈하겠지만...


앞서 이야기했듯 모든 웹 사이트는 커뮤니케이션이 존재하고 커뮤니티는 그런 커뮤니케이션을 담는 그릇이다. 사용자들이 그 그릇에 무엇을 담도록 규정하는 것이 '커뮤니티 콘텐츠 기획'이다. 거의 모든 웹 사이트가 좋은 그릇을 만들고 사용자들이 그 그릇의 용도에 맞는 콘텐츠를 올리길 기대한다. 반면 어떤 웹 사이트 - 이마트 웹 사이트와 같은 곳 - 는 사용자들에게 그릇도 주지 않고 줄 생각도 별로 없는 것 같다. 순수 공급자 마인드라는 표현이 이 웹 사이트에 적절할 것 같다. 상품 디스플레이하기에도 바빠 죽겠는데 무슨 얼어죽을 사용자 커뮤니티?라고 웹 사이트가 온 몸으로 부르짖고 있는 것 같다.

커뮤니티는 웹 사이트를 활성화시키는 핵심 키워드 중 하나다. 또한 커뮤니티는 선택의 여지가 없이 무조건 존재한다. 그것을 강화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정이 필요할 뿐이다. 이것을 명확히 기억하고 웹 사이트를 개발한다면 "우리 사이트에 커뮤니티가 필요해요"와 같은 우둔한 이야기는 더 이상 하지 않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