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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병원에서 병 더 키우기

방금 병원에서 어머니를 모시고 왔다. 지난 2월 10일 39도가 넘게 열이 올라 결국 응급실로 가셨는데 '원인 불명의 고열'이라고 하여 일단 입원하고 이런 저런 검사를 받은 후 3주 만에 퇴원하셨다. 응급실에서 최초 처치를 받은 후 12시간 가량 지나 열이 조금 떨어져 깨셨던 어머니가 대뜸 하시는 말씀,

"아이고... 남대문이 왜 저렇게 되었냐?"


입원 3주 동안 병원이라는 시스템 특히 대학 병원 시스템에 대해 과거에 느꼈던 불만을 다시 느낄 수 있었다. 제대로 걸렸으면 블로그 뉴스로 피드해서 난동(?)을 부릴 수도 있었을텐데 그게 참 애매하여 시비를 걸기 힘들었다. 예를 들자면...

1. 응급실에 갔더니 레지던트인지 인턴인지 어머니의 오른쪽 손등에서 채혈을 했다. 그런데 노인인데다 당뇨가 있어 혈관이 약한 상태인데 마구잡이로 쑤시다 결국 핏줄이 터지고 피가 줄줄 흐르는 사태가 벌어졌다. 자기들끼리 전문 용어 쓰면서 뭐라고 떠들었는데 결국 "주사 바늘이 너무 크다"는 이야기를 서로 주고 받고 있었다. 화가 머리 끝까지 치밀어 올라 뭐하는 짓이냐!고 버럭 소리를 질렀더니 죄송하다고 한다. 죄송하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2. 입원 당일 열에 들뜬 어머니가 혼자 화장실에 가시다 미끄러져서 갈비뼈 두 개에 금이 갔다. 어머니의 잘못도 있었지만 간호사가 그런 것도 파악하지 못하고 있냐고 소리를 지르려고 달려갔더니 죄송하다고 한다. 죄송하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3. 어머니가 몇 년 전에도 비슷한 증상이 있었고 당시 신장의 염증으로 인한 것으로 밝혀졌다고 여러번 이야기했는데, 계속 혈액 검사에 배양 검사에 CT 촬영에 X레이 촬영을 했다. 그러다 갑자기 "뼈 검사"를 하겠다고 한다. "뼈 검사"는 온 몸의 뼈를 정밀 검사하는 것인데 가격이 1백만원이 넘는다. 왜 이 검사를 해야 하는지 여러차례 물었으나 담당의는 "할 수 있는 검사는 다 해야 한다"는 논리적으로 이해는 되지만 감정적으로 받아 들일 수 없는 이야기를 했다. 강력하게 거부 의사를 밝혔는데 갑자기 뼈 검사를 하겠다며 지하 검사실로 어머니를 모시고 갔다고 한다. 어머니가 거부해서 다시 병실로 올라 왔는데 이 소식을 듣고 열 받아서 전화를 했더니 "착오가 있었다. 죄송하다"고 한다. 죄송하다는데 뭐라고 하겠나.

4. CT 촬영을 하니 자궁에 혹 같은 것이 보인다고 한다. 수술하자고 한다. 어머니 자궁의 혹은 15년 전에 발견된 것이고 지금까지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자궁의 혹과 고열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의사에게 물어 보았다. 자신은 잘 모르겠고 산부인과 담당의가 수술하는 게 좋다고 했다고 한다. 다시 물었다, 자궁의 혹과 고열이 무슨 관계가 있냐고. 별 관계가 없을 수 있다고 한다. 냅두라고 했다.


 2인 실에 이틀 있다 5인 실로 옮겼는데 얼마나 시끄러운지 병이 더 날 것 같다며 빨리 퇴원하자는 어머니의 요구가 있었다. 그래도 의사의 의견을 존중하여 3주 꼬박 다 채우고 나왔다. 병원에 갈 때마다 느끼는 점이지만 병을 치료하는게 아니라 병을 더 키우는 게 병원이 아닌가 한다. 쓰다보니 지난 3주간 일이 생각나 열이 더 받는다. 

처음 방문하는 병원에서 여러가지 검사를 받는 건 당연하고, 원인을 알 수 없는 열 때문이라면 다양한 가능성 때문에 또한 다양한 검사를 받는 건 당연하다. 10여년 전에 비하면 의사들은 훨씬 더 친절하고 간호사들도 열심히 일하는 것 같다. 좀 낫다는 대학 병원도 이렇게 병자와 보호자를 힘들게 하는데 막 나가는 병원들은 도무지 어떤 지경일까 싶다. 이 나라에서 편하게 살려면 의사, 변호사, 경찰 한 명쯤은 친구로 삼으라고 하는 말이 있다. 참으로 불쾌한 이야기지만 병원 한 번 다녀오고나면 그 말이 정답이다 싶다.

의료 서비스라고 한다. 몇 십만원짜리 전자 제품 살 때도 온갖 질문 다하고 꼬치꼬치 캐묻는다. 그런 질문을 귀찮아하지 않고 '고객의 질문'이라고 생각하여 성실히 답변해 주는 것이 물건 파는 사람의 기본 태도다. 그런데 우리나라의 의료 서비스는 수백만원이 넘는 비용을 내고도 시키는데로 다 검사 받아야 하고 이유를 물어봐야 겨우 대답해주는 식이다. "왜 그런가요?"라고 물으면 여전히 "당신이 그것 알아서 뭐하려고?"라고 대답하는 의사들도 적지 않다. 내가 경험한 대학 병원은 물어보면 나름대로 대답은 잘 해주는 편이었다. 나름대로 낫다고 하는데 이런 분통 터지는 일을 여러 번 경험했다. 의료비로 장사하는 다른 병원의 현실은 어떤지 정말 궁금하다.

언제쯤 제대로 의료 서비스 받을 수 있을까. 내 돈 내고 입원한 병원에서 환자와 보호자가 호구 취급 당하는 이런 현실이 언제쯤 바뀔 수 있을까. 성실하게 노력하는 의료인들이 들으면 불쾌할 지 모르겠지만 현실에서 의료 서비스를 제대로 받으려면 더 많은 돈과 인맥이 필요하다고 우울한 탄식을 할 수 밖에 없는 의료 소비자들의 목소리를 가볍게 듣지 말았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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