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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블로그에서 좋은 적을 만나는 법

"좋은 친구를 만나기는 어렵다. 그보다 훨씬 어려운 것은 좋은 적을 만나는 것이다."




친구를 사귈 때 어른들이 흔히 하는 충고는 "좋은 친구를 만나라"는 것이다. 좋다는 기준이 무엇인지 이해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우리는 이런 충고를 쉽게 받아 들이고 좋은 친구를 찾기 위해 노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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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친구에 대한 관점이 불분명할 때는 자신의 이야기를 잘 들어 주는 사람, 어려운 시기에 도움을 주는 사람, 자신을 끝까지 믿어 주는 사람을 좋은 친구라 생각한다. 좀 더 관점이 분명해지면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는 사람, 그 잘못을 이해하고 해결하기 위해 도와주려는 사람, 비판하며 끝까지 지지하는 사람을 친구로 생각한다. 좀 더 어른스러워지면 좋은 친구를 찾기 위해 스스로 좋은 친구가 되어야 함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적'에 대해 비로소 생각하게 된다.




친구의 반대가 적인가?

이 질문에 대해 어떤 대답을 할 수 있을까? 질문을 듣기 전에 무슨 생각을 했는지 먼저 따져봐야 할 것이다. 왜냐면 이런 질문을 하면 대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하기 때문이다. 우리들 대부분은 질문을 듣기 전에 자신의 생각과 질문을 들은 후 반응하는 자신의 생각을 혼동한다. 만약 친구의 반대 개념이 뭐냐고 스스로 질문한 적 없다면 평소 자신의 반응으로 판단해야 한다. 자신이 힘겨운 상황에 처했을 때 그런 상황에 대해 이해하는 사람과 오히려 자신의 잘못을 탓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누가 친구고 누가 적인가? 누구에게 호감이 생겼고 누구에게 적개심이 생겼나?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우리는 당연한 반응으로 전자를 친구라 생각하고 후자를 적이라 생각한다. 아니다, 그렇게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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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구의 반대 개념이 적이 아님은 천천히 생각해 보면 대부분 이해할 것이다. 왜냐면 친구는 매우 광범위한 개념인 반면 적은 매우 구체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적은 자신의 이익을 침해하고 자신을 적대시하고 자신을 파괴시키려는 대상을 지칭하기 때문이다. 때문에 적은 반대 개념은 친구가 아니라 '아(我, 자신)'이다.

친구의 반대 개념을 적이라고 규정한다면 참으로 편협하게 세상을 바라보게 될 것이다. 자신과 친한 사람 외엔 모두 적이 되어 버릴테니까. 반면 적의 반대 개념은 자신이고, 친구와 적은 반대 개념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좀 더 너그러운 관점에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


블로그에서 친구와 적

블로그는 많은 친구와 적을 만나게 할 수 있는 공간이다. 과거 BBS나 포털의 카페, 미니홈피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달리 블로그는 자신을 위한 공간이다. 블로그를 찾는 사람들이 어떤 정보를 위해서든, 누군가의 블로그 링크를 통해서든, 우연히 방문했든 관계없이 블로그는 대부분 어떤 사람 혼자의 공간이다. 팀 블로그나 기업 블로그, 단체의 블로그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블로그는 어떤 사람 혼자 운영하는 공간이다. 때문에 친구를 만들기도 쉽고 적을 만들기도 쉽다. 블로거가 쓴 어떤 글에 찬성하고 공감하는 사람들은 쉽게 친구가 되고 그것에 반대하는 사람은 또한 쉽게 적이 된다. 친구가 되고 적이 되는 방법도 매우 쉽다. 댓글을 남기거나 트랙백을 보내거나 그 블로그를 언급하며 글을 쓰면 된다. 순식간에 친구나 적이 생성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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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안타깝게도 블로그에서 친구와 적은 우리가 일상에서 흔하게 판단하는 기준으로써 친구와 적 - 앞서 이야기한 친구와 적에 대한 우리의 판단 - 과 또 다른 현실이 있다. 매우 많은 사람들이 어떤 블로그를 방문할 때 그 블로그를 쓰는 사람이 아니라 개별 글(post)을 기준으로 판단한다. 만약 어떤 사람이 1천 개의 글을 블로그에 썼더라도 내가 오늘 본 글이 무엇이냐에 따라 그 사람을 즉각 판단하기 마련이라는 의미다. 이런 현상은 블로그를 방문하는 사람들의 일반적인 행태이며 매우 당연한 것이기도 하다. 때문에 블로그에서 친구와 적은 일상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개념과 매우 다르기도 하다.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들은 이런 차이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자주 상처를 받곤 한다.

한 블로거의 이야기가 좋은 사례가 될 듯 하다. 이 블로거는 거의 2년 가까이 영화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블로그에 써 왔다. 이 블로그를 오랫동안 방문하며 나는 몇 번 댓글을 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영화에 대한 편견 보다는 영화 자체를 매우 사랑하고 그 스스로 단편 영화 제작에 참여한 적도 있고 영화에 대해 그의 의견과 반대되는 또 다른 블로거의 의견에도 적대적이지 않았음을 알고 있다. 2년 동안 그가 쓴 글을 계속 읽어 온 결론이 그것이다. 그런데 그는 얼마 전 심형래 감독의 영화 <디 워>에 대해 비판적인 글을 쓴 적이 있다. 당시 <디 워>에 대한 한국 영화 관객들의 긍정적인 평가가 샘 솟을 때였다. 내가 알기로 그는 한국 영화는 재미있든 재미 없든 무조건 가서 보는 사람이었다. 영화 자체를 사랑했기 때문에 영화를 가리지 않고 가서 봐야 이야기를 할 수 있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그는 아마도 <디 워>에 대해 다소 실망한 것 같았고 그런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블로그에 이야기했다. 어떤 결과가 벌어졌을까?

어디선가 찾아 온 사람들이 그의 글에 그야말로 악플을 남기기 시작했다. 평소 몇 개의 댓글만 붙던 그의 블로그에 유독 <디 워> 관련 글에만 수 백개의 댓글이 붙었고 대부분 비난의 댓글이었다. 그는 악플에도 성심껏 답글을 달았고 자신의 의도를 설득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그런 노력은 별 의미가 없었다. 결국 그는 자신이 썼던 글을 지웠고 자신의 블로그에서 댓글을 쓸 수 없도록 했다. 그 일이 벌어진 후 그는 블로그에 "블로그에서 친구를 만나기 힘들다"는 글을 남겼다.


블로그는 미디어

블로그는 사람과 사람을 만나게 하는 도구이기도 하지만 또한 미디어(media)이기도 하다. 이것이 블로그를 운영하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특히 친구를 사귀고 싶어 하는 사람을 힘들게 한다. 블로그는 미디어와 같은 특성이 있다. 카페나 미니홈피에서 <디 워>에 대해 비판하는 글을 썼다면 어떠했을까? 기껏해야 친구들(미니홈피)과 좀 싸우거나 카페 사람들과 논쟁을 하는 정도다. 그러나 블로그에서 그런 글을 쓰면 상황이 달라진다. 검색 엔진이나 포털이나 메타 블로그를 통해 그 글을 읽은 사람들이 접속해서 반대되는 의견을 남길 수 있다. 그런 의견을 대하는 블로거가 만약 그런 댓글 하나하나를 자신에 대한 어떤 반응이라고 생각한다면 스스로 힘들어질 수 있다. 그런 댓글은 단지 자신이 쓴 하나의 글에 대한 어떤 의견일 뿐이다. 받아 들이기 힘들 수 있지만 그렇게 받아 들여야 한다. 왜냐면 블로그가 그런 속성, 미디어의 속성이 있기 때문이다.

믿기 힘든 사람도 있겠지만 블로그에 쓴 글 때문에 공중파 9시 뉴스에 언급될 수도 있다. 정말이다. 우리가 유명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그럴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블로그는 어떤 사람이 쓴 글을 모아 둔 곳이고 때문에 블로그는 하나의 미디어로 인정 받을 수 있다. 개인의 사적인 역사만 모아둔 곳(미니홈피)이나 여러 사람의 의견이 모인 곳(카페)이 아니라 개인의 사적이며 공개될 수 있는 의견이 있는 곳이 블로그이기 때문이다. 바로 이런 속성 때문에 블로그는 완벽한 개인의 공간이 아니라 공개된 개인의 공간, 개인의 미디어(1인 미디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런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블로그를 운영하는 개개인은 항상 친구와 적을 구분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블로그에서 좋은 적을 만나는 법

블로그에서 좋은 적을 만나는 법과 블로그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는 법은 완벽히 일치한다. 길고 긴 이야기를 할 수 있고, 누구나 고개를 끄덕거릴 수 있는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원칙으로 정리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원칙은 지난 5년 간 내가 블로그를 쓰며 느낀 것이며 그 이전에 블로그를 썼던 해외 유명 블로거들도 공감하는 것이고 그들도 나와 비슷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첫번째 원칙, 네트워크의 건너편에는 사람이 있다.
두번째 원칙, 우리가 항상 모든 것을 이해할 수는 없다.
세번째 원칙, 가장 옳다고 생각하는 순간 가장 잘못된 것일 수 있다.
네번째 원칙, 이것이 반드시 이겨야 하는 싸움인가?
다섯번째 원칙, 블로그보다 가치있는 일이 훨씬 더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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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공간이고 좋은 친구를 만날 수 있고 또한 좋은 적을 만날 수 있다. 그럴 가능성은 블로그 뿐만 아니라 다른 모든 인터넷 웹 서비스에서 가능하다. 또한 인터넷 뿐만 아니라 일상 생활에서도 가능하다. 다만 우리는 일상 생활에서 혁신하기 힘들다고 믿기 때문에 보다 새로운 어떤 공간에서 그런 일이 가능하리라 기대한다. 그 기대가 무너졌을 때, 그러니까 블로그에서 우리가 예상하지 못했던 아픈 순간과 대면하게 될 때 절망하곤 한다. 그러나 다섯 가지 원칙을 기억한다면 그런 절망은 순간일 뿐이다.

인생에 대한 여러분의 관점은 어떠한가? 단 한 마디로 정의할 수 없는 게 인생이라고 믿는가? 그런 믿음은 훌륭하고 소중하다. 겸손함이야말로 우리가 인정할 수 있는 가장 보편적인 관점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블로그에서 좋은 친구를 만나든 좋은 적을 만나든 그것이 통하는 길은 하나다. 삶에 대한 거침없는 긍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