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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기획자를 위한 주말 생각하기 - 요구와 욕망

토요일 새벽입니다. 이번 글은 기획자라는 직업을 가진 분들이 주말에 생각할만한 주제에 대한 것입니다. 제가 이번 주말과 휴일에 생각할 과제도 이것입니다.

"요구와 욕망에 대하여"




요구라는 단어 대신 니즈(needs)라는 표현을 쓰면 좀 더 와 닿지 않을까 합니다. 사용자의 요구라고 표현하지 사용자의 욕망이라고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보통 업계에서 무슨 무슨 '요구'라고 말할 때는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어떤 것을 의미하기 위해 이 단어를 사용합니다. '욕망'이라는 것을 주관적이며 바람직하지 않은 어떤 것을 의미할 때 자주 사용합니다. 기획자는 요구와 욕구를 구분해야 한다고 교육 받고 그렇게 판단하기 위해 노력합니다. 그러나 그 노력만큼 자주 요구와 욕망은 혼용되고 잘 구분되지 못하여 기획자의 판단을 흐리게 만듭니다.

웹 서비스를 제공하는 어떤 회사의 기획자가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사용자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왜 저는 그 요구를 정확히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제가 만드는 웹 서비스는 늘 사용자로부터 외면 당하는 것 같습니다."

그 기획자에게 제가 했던 조언은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먼저 생각하고 그 다음에 사용자의 요구를 생각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한지 오랜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도 그와 같은 질문에 똑같은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것을 먼저 생각하고 그것이 사용자의 요구와 얼마나 가까운지 판단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이 순수하게 바라고 원하는 어떤 것을 공적인 공간에 구현하는 게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그런 생각을 하는 것 같습니다. 첫번째 이유는 겸손함입니다. 대중을 상대하는 웹 서비스를 기획해야 하는 웹 서비스 기획자는 대중 즉 사용자 일반이 원하는 것을 파악하여 만족시켜야 할 임무가 있다고 스스로 생각합니다. 때문에 매우 겸손하게도 자신의 욕구는 중요하지 않다고 믿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번째 이유는 두려움 때문입니다. 지금도 오로지 자신이 원하는 형태의 웹 서비스를 만드는 개인과 조직이 있고 그 결과 처절한 실패를 경험하는 예가 적지 않습니다. 어떤 회사의 일원이자 기획자인 사람은 그런실수가 곧 생계의 위협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크게 이 두 가지 이유 때문에 기획자는 스스로 자신이 순수하게 바로고 원하는 어떤 것을 공적인 공간, 회사의 웹 서비스에 구현하지 못합니다.

이런 문제에 대해 구글의 20% 개인 프로젝트를 위한 시간 제공은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구글의 조직원들은 전체 업무 시간 중 20%를 자신이 원하는 프로젝트에 시간을 투입할 수 있도록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제멋대로 시간을 쓰라는 것은 아니고, 회사 내부에서 진행 중인 개인적 프로젝트나 집단 프로젝트에 반드시 참여해야 합니다. 자신이 직접 프로젝트를 제안할 수도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Orkut와 같은 서비스가 그런 프로젝트를 통해 만들어진 것입니다. 흔히 구글의 20% 프로젝트를 개인의 자율에 대한 보장이라고 이해하는 분들이 있는데 이 프로젝트는 앞서 이야기했듯 기획자의 자신의 욕망을 공적인 공간 - 회사 웹 서비스 - 에 투영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20%의 시간을 기획자가 원하는 어떤 일을 위해 쓸 수 있도록 하고 그것을 구현하기 위해 회사의 자원을 배분한다면 기획자는 불필요한 겸손함과 두려움을 버리고 어떤 창조적 일을 할수도 있을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할수도 있다'고 말했지 '할수 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구글 또한 20%의 시간을 구글이 원하는 식으로 쓰지 않는 사람을 색출하기 위해 전담반을 꾸릴 정도로 실리적입니다. 누구에게나 20%의 자율적 시간을 배분한다고 창조적 열정을 발휘하지 못할 것은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대개의 회사는 구글처럼 조직원들에게 자유로운 기회를 부여하기 힘들 것입니다. 그러나 최소한 기획자라면 일주일 중 이틀, 주말과 휴일은 자신을 위한 창조적 시간으로 배분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며 고민하고 생각하고 창작할 수 있는 시간으로 주말과 휴일을 이용해야 합니다. 자신이 원하는 것과 사용자가 원하는 것이 다르다면 좋은 서비스를 기획하기 힘듭니다. 생계를 위해 어떤 주어진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하는 것보다 자신이 욕망하는 것과 일치하기 때문에 일할 때 항상 뛰어난 성과를 보장 받을 수 있습니다. 물론 기획자를 비롯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이건 매우 힘든 일입니다. 우리는 대부분 자신이 관심 없거나 심지어 싫어하는 일도 자주 해야하기 때문입니다.

가끔 이런 생각을 합니다, '싫어하거나 전혀 관심없는 웹 사이트, 웹 서비스를 기획하는 것보다 고통스러운 일이 어디 있을까?' 세상 모든 일을 좋아하고 관심이 있고 또한 그것을 기획할 수 있는 역량이 있는 기획자가 될 수 있다면 좋겠지만 말도 안되는 희망이라는 건 모두 인정할 겁니다. 현실적으로 우리는 어떤 것을 좋아할 수 밖에 없고 또한 싫어할 수도 있습니다. 기획자라서 싫어하는 걸 좋아하는 척할 필요도 없고 또한 좋아하는 걸 모른 척 할 이유도 없습니다. 기획자들이 일상에서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하지 못한다고, 내가 싫어하는 일을 기획해야 한다고 투덜거리며 고통스러워할 때 이런 이야기를 전해주고 싶습니다.

"단지 우리가 원하는 것을 정확히 이야기하지 못하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 원치 않는 일을 반복해야만 한다."


오늘 이런 생각을 한 번 해 볼 것을 권합니다. 내가 정말 원하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원하는 것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사람들은 내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변화의 시작은 무엇을 사랑하는 순간부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