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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수능이 끝난 후

몇 시간 전 수능이 끝났다고 합니다. 30대 중반인 제게는 그저 출근 시간 1시간 늦어도 되는 날 정도였는데 동숭동 대학로에 수능을 끝내고 홀가분한 표정으로 돌아 다니는 후배들을 보니 '아, 정말 오늘이 수능이 끝난 날이구나' 싶었습니다.

문득 17년 전에 대학입학 학력고사를 치룬 후 일이 생각났습니다. 당시엔 들어가고자 하는 대학에 먼저 원서를 내고 시험을 쳤기 때문에 시험을 치고 난 후에도 마음이 그리 편치 않았습니다. 전기에 시도한 대학에 떨어지면 후기를 준비해야 하고 후기에 떨어지면 전문대를 준비하는 그야말로 대학 입학 롤러코스터였습니다. 저는 운좋게 한 번만 시험을 치고 말았지만 12월 초에 시험을 치른 후 다음 해가 되어도 여전히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들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그 때나 지금이나 일단 시험을 치르고 나면 어느 정도 진학할 곳이 구분되고 이후 한 두달은 사회인도 아닌 것이 고등학생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대학생은 더더욱 아닌 이상한 상태에 놓이곤 합니다. 오래 전 일이지만 대학 입학 전까지 어떻게 시간을 보냈나 기억을 되살려 보았습니다.


- 일단 잠 좀 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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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험 치고 가장 먼저 한 일은 3일 동안 시체처럼 잔 것입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렇게 열심히 공부한 것도 아닌데 왜 그렇게 오래 잠을 잤는지 모르겠습니다. 어머니가 깨우면 겨우 일어나서 밥 몇 술 먹고 다시 자고, 방광이 용량 과다를 호소하면 겨우 일어나 화장실 갔다 다시 자고 나중엔 너무 자서 허리가 다 아프더군요. 어쨌든 그렇게 3일 정도 자고 깨었더니 세상은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더군요. 처음 이틀 동안 자는 모습을 측은하게 바라보던 어머니도 결국 '이 잠충이 같은...'이라고 하시더군요.

- 아르바이트를 결심하다
요즘은 중고등학생들도 아르바이트를 많이 하는 편이지만 예전에는 그렇게 일자리가 많지 않았고 아르바이트를 한다는 자체가 뭔가 학생답지 않은 것처럼 여겨지곤 했습니다. 학생은 그저 공부나 열심히해야 한다는 인식이 매우 강했을 때였습니다. 그래서 시험을 끝내자마자 아르바이트를 한 번 해 보려고 주변에 수소문을 하고 다녔습니다. 역시나 어중간한 상태의 제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주려는 사람은 없더군요. 그러다 동네 아주머니의 소개로 드디어 아르바이트를 얻게 되었습니다.

새벽 5시에 일어났습니다. 어디로 가는지 알려주는 사람도 없이 그저 승합차에 실려 어디론가 갔습니다. 한 시간쯤 달렸나, 천지사방이 분간되지 않는 이상한 곳에 내렸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동네에서 꽤 거리가 있는 가구 제작 공장이 모여 있는 곳이더군요. 대충 교육을 받고 6시 30분부터 일을 시작했습니다. 하는 일은 조립형 가구를 자르는 기계에 나무를 넣었다 뺐다 하는 일이었습니다. 중간에 20분 쉬고 5시간을 일했습니다. 점심 30분 만에 먹습니다. 또 저녁 7시 30분까지 일했습니다. 영원히 일이 끝날 것 같지 않았습니다. 나무 넣고 나무 빼고, 나무 넣고 나무 빼고... 10시간을 그 짓을 하니 "정말 공부가 쉬웠어요!"라는 말이 이해되더군요. 마침내 일이 끝나자 새벽의 그 승합차를 타고 살던 동네로 돌아왔습니다. 승합차 안에서 19살 먹은 애송이를 보고 아줌마 아저씨들이 오랜만에 영계 만났다며 좋아하십니다. 이런 저런 농담을 건네며 크게 웃습니다. 악마같았습니다.

그 후 대학 입학할 때까지 아르바이트 한다는 소리는 입 밖에도 꺼내지 않았습니다. 집에서 지어 주시는 따뜻한 밥 먹고 피둥피둥 살이 쪄서 입학했더니 다들 "3수생이냐?"고 묻더군요.

- 동문회의 호출
고강도 아르바이트에 심한 정신적 충격을 받고 두문불출하고 있을 때 고등학교 동문회에서 연락이 오더군요. 어떻게 알았는지 대학에 합격했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동문회에 출석하라고 연락이 온 것입니다. 요즘도 그런지 모르겠지만 당시엔 대학에서 남고와 여고가 연계된 동문회가 제법 있었습니다. 그 흔하다는 미팅 한 번 못해본터라 가슴 두근거리며 동문회에 나갔습니다. 학교 여선생님 이후로 장성한 처자들을 근접 조우한 것은 평생 처음이라 어찌나 좋던지. 열심히 화장하고 가꾼 처자들을 보니 갑자기 여고생들이 애로 보이더군요. 또한 동문회라는 게 원래 친목이 주 목적이라 개념있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도 되는 아주 자유로운 분위기더군요. 그런데 그 날 하루 나가고 안 나갔습니다. 동문 회비 내라고 하더라구요.;;;

- 예비대학
당시엔 대학 학생회에서 아직 입학식도 하지 않은 신입생을 학교로 불러서 예비 대학이라는 것을 했습니다. 원래 목적은 대학에 입학하기 전에 대학 생활에 대해 알려 주고 교수님, 선배들과 친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나 말이 그렇고 실제로는 이념화 교육의 산실이 되는 예비 대학이 태반이었습니다. 예비 대학 때 열심히 활동하여 대학 1학년 2학기가 되어 보니 쇠파이프와 화염병 들고 데모대 선두에 있더라...는 전설과 같은 이야기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게 예비 대학은 아직도 좋은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예비 대학만 하고 대학 졸업했다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도 가끔 했습니다. 결혼 3년 가고 연애 6개월 간다더니 대학의 환상은 1개월 가더군요. 요즘은 좀 나아졌나요?

- 술
시험치고 나서 술 한잔 안 먹었다면 거짓말일 것입니다. 저는 안 먹었습니다. 그래서 할 말이 없군요. ㅡ_ㅡ;;; 저는 안 먹었지만 제 친구들은 많이 마셨던 것 같습니다. 12월 중순쯤 학교 뒷산에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 있길래 무슨 일인가 싶어 가 봤더니 막걸리 한 주전자를 놓고 잔을 돌려가며 풍취를 즐기고 있었습니다. 그 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는데 10여 명이 그 차가운 막걸리를 한 잔씩 돌려 마시며 이제 고등학생이 아님을 뽐내고 있더군요. 이미 술을 많이 먹은 몇몇은 개 잡아 술 사 먹자며 나무 막대기 들고 동네 개 쫓아 다니고 있었습니다. 고등 학교가 바로 아래에 보이는 곳에서 마시는 그 술 맛, 아마 평생에 딱 한 번 경험할 그런 것이었던 것 같습니다.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안 마셨습니다. 그냥 개 잡으러 다녔습니다.



돌이켜보면 시험 치고 나서 몇 달을 별 하는 일 없이 탕진한 것 같습니다. 지금 같으면 토익 공부를 하거나 어학 연수 준비나 아르바이트로 돈 벌어 여행이라도 갔을텐데 말입니다. 네, 거짓말입니다. 지금 제가 수능을 마쳤더라도 17년 전과 별 다를 바 없이 와우 만렙이나 찍으며 폐인 짓하고 있을 겁니다. 어떻게 보면 지금까지 살아 오며 가장 편안했던 시간으로 그 몇 달이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텔레비전이나 신문이나 부모님이나 주변 사람들이 "이 시간을 잘 보내야 한다"고 충고를 할 것입니다. 저도 원칙적으로 그런 조언을 드립니다, "의미있게 남은 시간을 보내세요." 그런데 감성은 이렇게 이야기하는군요,

"닥치고 고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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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자신을 위해 아무 생각없이 끌리는데로 사는 것도 필요합니다. 10대의 끝과 20대의 시작을 알리는 그 짧은 순간 좀 놀아도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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