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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guacu ONLY

음식과 요리 이야기 그리고 기획

배추는 음식이다. 배추로 요리한 어떤 것도 음식이다. 사람이 먹을 수 있고 그로 인해 힘을 얻을 수 있다면 다 음식이다. 때문에 음식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만들 수 있고 그 중 음식을 만드는 일을 업으로 하는 사람을 요리사라고 부른다. 나는 최근 몇 년까지 음식이라는 것은 요리사라고 불리는 사람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 때문에 집에서 내가 해 먹는 음식은 이미 조리된 것을 사오거나 대충 이런 저런 양념을 조금 뿌려서 해 먹는 정도였다. 음식을 할 수 있는 재료를 사서 이런 저런 식으로 요리하는 것은 내가 할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라면 이야기

그러던 어느 날 라면을 끓이던 중 냉장고 문을 열고 물을 마시려는데 눈 앞에 김치가 보였다. 라면에 김치를 넣어 끓여 먹으면 꽤 맛있다는 걸 알고 있다. 하지만 한 번도 그렇게 해 본 적 없었다. 그냥 라면에 계란을 넣어서 끓인 후 김치와 함께 먹는 정도 였다. 그 날 처음으로 김치를 썰어서 라면에 넣었다. 맛 없었다. 라면이 다 익은 후에 김치를 넣었더니 김치의 양념만 둥둥 뜨고 김치는 익지 않았고 라면 면발은 불어 버렸다.

그 이후 일부러 라면과 김치를 넣어 끓이는 법, 그러니까 가장 맛있는 김치 라면에 대해 고민해 본 적은 없다. 부정기적으로 라면을 끓이기 전에 김치를 넣기도 했고, 김치를 잘게 써는 게 좋은 지 어슷썰기를 하는 게 좋은 지 어느 싯점에서 넣는 게 좋은 지 김치 국물도 넣어야 할 지 아니면 갓 담근 김치가 좋은 지 신 김치가 좋은 지 이런 저런 시도를 해 봤다. 어떤 경우엔 지난 번에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걸 기억하지 못하고 똑 같은 시도를 한 적도 있다. 똑 같은 시도를 하고 나면 세 번 실수하지는 않는다. 두번 째 실수에서 분명히 기억을 하게 되니까.

그런데 이런 경험을 몇 년 동안 반복하면서 김치 라면에 대한 몇 가지 경험적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갓 담은 김치보다는 신 김치를 쓰는 게 깊은 맛이 우러 난다. 김치를 적당히 넣어야지 너무 많이 넣으면 김치 국이 된다. 좋은 배추를 쓰고 좋은 맛을 낸 김치는 어디에 넣어도 맛이 난다. 어떤 김치는 단 맛이 나고 어떤 김치는 쓴 맛이 난다. 김치에 이미 양념이 되어 있지만 간혹 다른 재료를 넣어도 좋다. 계란을 풀어 버리면 온통 계란 맛 밖에 나지 않는다. 꼬들 꼬들한 면발을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푹 퍼진 면발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김치라면 국물에 찬 밥을 말아 먹으면 맛있지만 뜨거운 밥도 괜찮다. 라면을 끓인 후 큰 대접에 옮겨 담아서 먹는 게 훨씬 맛있다. 뭐 이런 경험적 상식을 상당히 많이 알게 되었다.

라면에 이런 저런 재료를 썰어 넣다보니 나도 모르게 재료를 써는 법에 대해서도 조금은 알게 되었다. 따로 배운 것은 아니고 텔레비전의 요리 프로그램에서 요리사들이 써는 것을 보고 '아, 저렇게 썰면 좋구나', '아, 저런 경우엔 저렇게 썰어야 하는구나', '아, 이 재료를 썰고 나면 도마를 깨끗이 청소하고 다른 재료를 썰어야 하는구나', '아, 생선 다듬은 칼로 다른 재료를 다듬기 전에 깨끗이 씻어야 하는구나' 뭐 이런 식으로 텔레비전에 출연하는 요리사들이나 이런 저런 프로그램에서 재료를 써는 걸 보며 배우게 되었다. 어디 제대로 배운 것보다 나을 리는 없지만 배우는 재미는 쏠쏠했다 (나는 텔레비전을 결코 바보상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쥐포 이야기

어제 저녁에 여동생이 집에 왔다. 요즘 몸이 좋지 않다고 이야길 했더니 "뭐 도와 줄 것 없어?"라고 하길래 농담 삼아 "청소!"라 했더니 정말 청소하러 온 것이다. 안 그래도 집 청소를 대충 해 둔 상태라 하지 말라고 했더니 굳이 청소를 한다. 한참 이리저리 청소를 끝내고 커피 한 잔 하고 있는데 오는 길에 사 온 쥐포를 굽겠다고 한다. 가서 봤더니 가스 렌지 불에 마른 쥐포를 굽고 있었다. 마른 쥐포를 그냥 구우면 아주 뜨거울 때는 먹을 만 하지만 식으면 아주 딱딱해져서 먹기에 힘들다. 잇몸이 쉽게 붓는 편이라 여러 번 비슷한 경험을 했기 때문에 일전에 어떻게 하면 쥐포를 부드럽게 구울 수 있는 지 알아 봤더니 물에 약간 불린 후 구으라고 한다. (지식in에서 발견했다) 처음엔 물 속에 아예 담궈 뒀었는데 쥐포가 흐물흐물하게 변해 버렸다. 좀 더 알아 봤더니 흐르는 물에 가볍게 스친 후 쟁반 위에 두면 물기가 스며 들어 쫀득쫀득한 상태로 변한다. 아무래도 여동생이 이걸 잘 모르는 것 같아 소파로 가서 커피 마시라고 한 후 내가 간단히 요리를 했다.

쥐포를 물에 살짝 스친 후 1~2분 정도 지나면 약간 촉촉하게 변한다. 쥐포를 굽는 게 아니라 튀길 생각이라 마른 수건으로 물기를 제거해야 한다. 마른 수건이 없어서 키친 타올로 물기를 제거한 후 가위로 먹기 좋은 크기로 잘랐다. 개인적으로 가위를 쓰는 요리법을 아주 싫어 하지만 바쁠 때는 할 수 없다. 더구나 쥐포 같이 가볍게 먹는 음식을 만들 때 너무 거창한 요리 도구를 쓰는 건 바보 같다. 큰 후라이펜을 꺼내서 강한 불에 1분 정도 달궜다. 그 위에 버터를 조금 던져 넣어서 녹였다. 후라이팬에 쥐포 조각을 던져 넣고 1분 정도 빠르게 휘저으면 튀겼다. 가만 내 버려 두면 금새 타 버리기 때문에 나무 주걱 같은 걸로 빠르게 저어 줘야 한다. 5분 안에 요리를 끝내고 싶었고 버터 기름이 쥐포에 너무 베여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 강한 불에서 튀겼다. 1분 이상 튀기면 아주 바싹하게 되고 그 안 쪽이면 적절하게 무르고 씹는 맛이 있다. 다 튀긴 후 키친 타울 위에 올려 놓고 버터 기름을 뺐다. 그냥 내버려 둬도 좋지만 쥐포가 다 식어 버리면 또 맛이 없기에 키친 타울을 한 장 더 뜯어서 위에서 살짝 눌러서 기름을 뺐다. 큰 접시를 꺼내서 중앙에 담아 놓고 냉장고를 보니 피클과 토마토 남은 게 있길래 함께 담아 내 놓았다. 토마토는 잘게 썰지 않고 한 입에 들어가는 것보다 조금 크게 썰었다. 쥐포 위에 깨를 조금 뿌리면 훨씬 보기에 좋았을 것 같았는데 내 놓고 나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 만드는데 5분 정도 걸렸고 내 놓으려는데 마침 맥주 캔이 보이길래 함께 마셨다. 유리 잔이 없어서 와인 잔에 부어서 마셨는데 맥주는 머그 컵이나 종이 컵보다는 유리 컵에 마시는 게 훨씬 맛이 좋다. 맥주의 차가움을 유지하려면 맥주 잔은 두꺼운 것이 좋지만 와인 잔은 아래에 잡는 부분이 있기 때문에 한 잔 다 마실 때까지 손의 온기가 전해지지 않아 나름대로 차가운 온도를 유지할 수 있었다. 쥐포를 마요네즈에 찍어 먹어도 맛있기 때문에 작은 종지에 마요네즈도 함께 내 놓았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여동생과 거실에 앉아서 텔레비전을 보며 쥐포 요리를 먹으며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할 수 있었다. 생각해보니 36년을 살며 처음으로 동생에게 뭔가 만들어서 준 것 같다. 요리 같지도 않은 요리였고 맛 있다 맛 없다는 이야기 한 마디 없었지만 그러면 또 어떤가.


요리와 기획

기획을 잘 하는 사람은 요리도 잘 할 수 있지 않을까? 아니다. 요리라는 것도 타고 난 절대 미감이나 요리를 배우기 위한 노력과 재능이 필요하기 때문에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기획을 잘 하는 사람이 노력한다면 기획을 못하는 사람보다 요리를 잘 할 가능성은 높을 것 같다. 제대로 요리를 하려면 누가 먹을 것인지, 그 사람은 무엇을 좋아하는지, 요리를 하는 환경은 어떤지, 자신은 어느 정도의 실력이 있는지 잘 알아야 할 것이다. 기획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누가 그 서비스를 쓸 것인지, 서비스 주요 고객은 무엇을 요구하는지, 서비스를 만드는 데 필요한 자원과 비용은 얼마나 들 것인지, 그리고 내가 그 서비스를 만들 역량이 있는지 잘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

어떤 일이든 하면 할수록 다른 어떤 일과 다른 점보다 비슷한 점이 많아지는 것 같다. 우리는 스스로 변화하기 위해 항상 새로운 무엇을 배우려고 한다. 유학을 가고, 새로운 학문이나 이론에 목 말라하고, 유명한 사람의 강연을 듣거나 훌륭한 회사에 들어가 배우고 싶어 한다. 그러나 단지 세상을 바라 보는 관점을 바꾸기만 해도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것 같다. 굳이 멀리 떠나지 않아도, 굳이 새로운 책을 펴지 않아도, 굳이 존경받는 사람과 만나지 않아도 자기 혁신을 끊임없이 추구할 때 세상 모든 것으로부터 배울 수 있는 게 아닐까.

현명한 학습의 방법은 내가 세상의 지식을 갈구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이 내게 지식을 말해 주도록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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