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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내게 맞는 것과 표준

1997년 초였나. 인터넷 익스플로러 4 프리뷰가 나왔을 무렵 이 브라우저에 맞게 제작한 웹 사이트를 몇 군데 본 적이 있다. 정말 멋 있었다! 당시엔 넷스케이프와 브라우저 전쟁이 한창이던 시절이라 이런 웹 사이트에 대한 비난이 만만치 않았다. 표준을 지키지 않는다는 비난에는 'M$ 따위에 동조하는 것이냐!'는 힐난의 의미가 배경에 있었다.

그런데 나는 그런 웹 사이트들이 좋았다. 표준이고 뭐고 어쨌든 보기에 너무 좋았으니까.

지금도 이런 생각엔 변함이 없다. 최근엔 많이 줄어 들었으나 간혹 표준에 맞는 웹 페이지 제작이나 접근성에 대해 이야기하며 마치 청교도의 윤리 강령이라도 읊어대려는 듯 보이는 사람들이 있다. 안타깝게도 '표준'이라는 것조차 원래는 표준이 아니었다. 웹 페이지를 제작하는 표준이라는 것이 도대체 무엇인가, 그것은 도덕율도 아니고 생활 규범도 아니고 단지 '그렇게 하는 게 더 편하고 장기적으로 더 효율적이다'라는 것 뿐이다. 게다가 잘 몰라서 그렇지 따지고 들면 그런 표준에도 각 기업과 개별 조직의 이해 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다. 왜 각종 오픈 컨소시엄이나 프로젝트에 세계적 대기업들이 개입하고 있겠는가?

게다가 표준에 대한 논쟁에 실제 그것의 수혜자인 대중들은 별 관심이 없다. 단언하건데 때만 되면 언론에서 비판하는 '저조한 투표율'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소수의 사람들만 이러한 표준 논쟁에 관심이 있다. 그 극소수 중 또한 극소수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고 있으며 결국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의 사람들이 내 뱉은 말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표준 논쟁의 핵심을 이루고 있다.

물론 이것이 온라인을 통해 이 토론에 참가하고 있는 많은 사람들의 존재를 무시하는 표현으로 비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좀 냉정하게 생각해 보자. 이런 것을 가족들과 모인 자리에서 이야기할 수는 없지 않나. 나는 그것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다. 직업적으로, 학문적 이유로 혹은 취미로 표준화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은 이 점을 명확히 알아야 한다. 진대제 장관이 표준화에 관심을 갖는다고 하여 언론이 그것을 다룬다고 하여 그런 논제가 세상의 중심에 있다는 의미는 아니다. 다만 나 자신의 중심에 있기는 하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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