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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명량, 이순신의 전장 리더십을 ICT에 적용하지 말라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이 보여준 리더십은 전쟁의 리더십이다. 게다가 백중지세나 우세의 전장이 아니라 필패가 예견되는 전장에서 발휘되는 리더십이다. 때문에 영화 속 이순신은 12척의 판옥선으로 3백여척의 왜군과 싸우면서 실상 17대 1의 전설과 같은 싸움을 한다. 만신창이가 된 이순신은 어쨌든 혼자서 첫 싸움에서 이겼고 그 광경을 멀리서 지켜보던 부하들은 지금 개입하면 죽지 않을 것 같다는 판단과 함께 뒤늦게 이순신을 돕기 시작한다. 출동을 지시하는 깃발이 오른지 한참 지난 후에 말이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이 처한 상황을 굳이 ICT에 비유하자면 자본금 5천만원으로 시작한 회사가 우연히 10억 짜리 프로젝트를 진행하게 되었는데 1년 동안 쌍코피 터져가며 프로젝트를 진행하다 결국 파토 지경이 되었고 고객사는 손해배상까지 고려 중인 상황에서 투입된 PM의 입장과 비슷할 것 같다. 회의 첫 날 개발팀장이 한다는 소리가 "이건 안됩니다. 포기하고 손해배상 적게 나오는 방안이나 고민합시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영화가 시작되는 것을 생각하면 될 것이다. 내부의 적은 싸움 자체를 포기하자고 종용하고 조직원은 리더를 불신하고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이 싸움에서 이길 수 없다는 두려움을 다스리며 전쟁을 치뤄야 하는 이순신의 상황을 ICT의 그것과 비교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그러니 이 영화가 개봉 후 열흘이 지나지 않아 8백만을 찍고 국내 최대 관객 동원을 할 게 뻔하고 박근혜 대통령이 친히 관람을 했더라도 굳이 이 영화의 이순신과 자기 회사의 리더십을 대입하여 설교하는 무리수는 두지 않는 게 좋을 것 같다.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이 보여준 리더십은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유명한 문구로 정리할 수 있다,


生卽必死 死卽必生 (생즉필사 사즉필생)

살고자 하면 곧 죽을 것이고 죽고자 하면 곧 살 것이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회사에서 죽을 각오로 일하는 사람은 사장 빼고 없다. 그러니 부하직원에게 "너 영화 명량을 보았느냐? 죽고자 하면 살고 살고자 하면 죽는다..."는 식으로 전장의 리더십을 설파하고자 한다면 결국 "너 죽고 싶냐, 안 잘리고 일하고 싶냐?"고 묻는 것과 다를 바 없다. 전장의 리더십은 전장에서 쓸모있을 뿐이다. 좋은 영화를 보고 감동하면 그만이지 그걸 부하 직원에게 설교하는데 쓰지 말길 바란다.


벌써부터 이순신의 리더십을 회사 교육 자료로 쓰려는 움직임이 나라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길래 허튼 짓 하지 말라 염려하는 마음에 하는 소리다. 근데 <명량>을 보고 나니 오히려 그 다음편이 더 기대가 된다. 구선(거북선)을 처음 본 왜군들의 반응은 어떠했을까? 이순신의 최후는 과연 어떻게 다루게 될까? 선조는 나올까, 나오지 않을까? 영웅적 죽음으로 묘사된 이순신의 아들과 관련한 에피소드는 나올까? 참 많은 궁금함이 이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