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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촛불집회의 끝은 어디인가?

지난 6월 29일의 경찰의 폭력적 진압이 있었다. 당시 상황으로 볼 때 이후 시위 참여자들이 극렬한 대응을 결심하고 실천했다면 다음 단계는 화염병과 쇠파이프 그리고 최루탄의 등장과 공권력의 강력한 대응의 수순이었다. 그런데 천주교 정의구현 사제단이 나타났다. 바로 그 시점에서 촛불집회는 극적인 변환를 경험하고 있다. 과거를 돌이켜본다면 50일이 넘게 진행되던 촛불집회는 공권력의 강력한 탄압에 응대하여 폭력적 방법이 동원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번엔 상황이 달라졌다. 얻어 맞은 측을 '위로'하고 그 뜻의 올바름을 알리기 위해 종교 단체가 나섰고 많은 사람들이 그들을 따르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촛불집회의 마지막이 어떻게 될 것인지 궁금해한다. 그런데 나는그 결과보다는 현재의 과정을 이해하는 것이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물리학뿐만 아니라 사람의 관계, 사회적 관계도 작용과 반작용이 존재한다. 때리면 그냥 얻어 맞고 있는 것이 아니라 맞서 싸우는 것이 힘의 논리다. 지난 1980년대의 시위가 그런 것이었다. 민주의 목소리를 공권력으로 막으려는 힘이 있었고 그것에 대항하는 힘이 있었다. 공권력을 통한 탄압이 커질수록 대항하는 측도 더욱 극적인 방법으로 대응했다.

그런 힘과 힘이 부딪치는 과정은 무질서하게 보였지만 오히려 내재적 질서가 있었다. 마치 전쟁의 룰과 같은 것이다. 전쟁은 일견 죽고 죽이는 과정의 반복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전쟁은 많은 전략과 전술이 교차한다. 그 전략과 전술은 몇 가지 큰 규칙 속에서 이뤄진다. 대표적인 것이 민간인 살상에 대한 금지이고 교전 중인 적이 항복을 선언했을 때 포로로 생포하거나 적이든 아군이든 중립적 위치에 속하는 의무병이나 민간인을 살해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규칙은 쌍방이 동등하거나 비등한 힘을 가진 상태에서 전쟁이 진행될 때 비교적 잘 지켜지는 편이다. 이런 전쟁의 규칙을 어기는 민간인 학살과 같은 사례는 대개 일방적인 침략으로 압도적 우위를 차지한 경우에 자주 나타났다.

1980년 광주의 시민 학살을 전쟁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모든 면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였던 정부군이 민간인과 민간 저항 세력을 무규칙하게 살해한 것이다. 1987년의 6월 민주항쟁을 기점으로 한국은 더 이상 전쟁의 룰이 통하지 않는 나라로 변하게 되었다. 물론 그 이후 공안 정국은 몇 차례 반복되었고 또 많은 민주 열사가 생겼지만 과거와 같은 전쟁적 상황은 도래하지 않았다. 그리고 2008년 우리는 아주 새로운 환경을 경험하고 있다. 전쟁적 상황이 될 수 밖에 없었던 시점에서 다시 비폭력 평화 시위로 전환되고 시민들이 다시 평화의 기치 아래 모이고 있다. 그 첫 출발을 만든 것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시민이 원하는 것을 잘 이해했을 뿐 정작 변한 것은 시민 자신이다.

과거의 '죽거나 민주화거나'라는 패러다임은 사라지고 있거나 사라졌으며 이제는 '끝까지 의지를 굽히지 않으면 변화한다'라는 성숙한 민주주의의 행동 방법으로 패러다임이 변화했다. 때문에 촛불집회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이다. 한국에서 민주주의를 위한 투쟁의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음을 우리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전쟁의 패러다임이 사라지고 생활 속 투쟁의 패러다임이 생성된 것이다. 투쟁하지 않으면 민주주의에 기여하는 것이 아니고, 거리에 나서지 않으면 바른 삶이 아니라는 1980년대의 투쟁 기조는 더 이상 시민들의 참여를 얻기 힘들다. 반면 그 끝이 어딘지 알 수 없지만 평범한 일상을 영위하며 저녁이 되었을 때 촛불 하나 들고 시청으로, 거리로 나오는 시민들의 자발적 투쟁이 이어지고 있다. 전쟁은 누군가 승리하거나 패배했을 때 비로소 끝난다. 우리가 지금 경험하고 있는 것은 전쟁의 규칙을 따르는 민주화 투쟁이 아니라 삶의 변화를 요구하는 민주화 투쟁이다. 전자는 누군가 승리하거나 패배를 인정했을 때 끝나지만 후자는 결코 끝나지 않는 싸움이다. 일상의 영역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2008년의 촛불 투쟁은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목표를 이뤘을 때 끝나는 것이 아니다. 강력한 충돌과 투쟁으로 끝장을 내야 변화가 완료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은 아직도 변화한 시민들의 생각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우리는 스스로 놀랄 수 밖에 없는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유럽의 민주주의를 배우며 토론과 합리성을 근거로 그들의 민주주의가 우수하다고 배워왔고 때문에 군부독재의 잔당이 만들어 낸 정당이 민주혁명 이후에도 십여년 간 정권을 차지했던 과거를 부끄러워 한 적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후진적 민주주의가 아닌 그런 과거를 통해 우리의 민주주의를 지키는 방법을 스스로 체득했음을 오늘 증명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기대했듯 폭력적 진압 이후 우리는 다시 촛불을 들고 느리지만 '우리의 원칙'을 지키며 민주주의를 외치고 있다. 우리의 폭력을 내심 기대하며 최루액과 더 튼튼한 방패와 물대포를 준비했던 일부의 무리들은 당황하고 있다. 전쟁의 논리로 우리를 제압하려고 했는데 전쟁은 일어나지 않았다. 지극히 깊은 인내심과 변화에 대한 믿음이 다시 조용하지만 거대한 촛불을 모으고 있다.


한국적 민주주의가 새롭게 태동하고 있다. 변화는 바로 우리 속에서 시작했다. 우리는 스스로 자랑스러워해야 한다. 자랑스러운 마음으로 촛불을 들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