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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emo

대한민국 블로거 컨퍼런스

대한민국 블로거 컨퍼런스가 있었다.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갔다 온 사람, 안 간 사람, 준비한 사람, 갔다가 그냥 온 사람, 갔다가 끝까지 견디고 밥 먹은 사람, 갔다가 투덜대다 경품 추첨에서 떨어진 사람, 오랜만에 블로거 만난 사람...





오늘 오후에 오랜만에 MSN으로 아는 동생에게 안부를 묻는데 대뜸 한다는 말씀이,

"형, 왜 블로거 컨퍼런스 안 왔어요!"
"난 블로거 아니다"
"ㅋㅋㅋ"


사실 나는 2003년부터 블로그에 글을 써 오기 시작했는데, 언젠가부터 사람들이 나를 '블로거'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여러 언론 매체에 '파워 블로거'니 '잘 나가는 블로거'니 기사화된 것도 여러 번이다. 내가 나를 블로거라고 지칭하든 말든 상대방이 "블루문, 당신은 블로거!"라고 이야기해 버리니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 당신들 부르고 싶은데로 불러라... 내버려뒀다. 대신 '블로거 간담회'나 '블로그' 혹은 '블로거' 어쩌구하는 이름이 붙은 모임에는 나가지 않기 시작했다. 그게 한 2년 된 것 같다.

이번 모임 - 대한민국 블로거 컨퍼런스 -도 제목이 저런 거창한 것이 아니라 '블로그를 생각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든가 '대한민국, 블로그 놀이터' 혹은 '블로그 토킹 콘서트'와 같은 제목이었으면 나도 갔을 지 모른다. 그런데 제목이 너무 거창했다. 게다가 나는 스스로 블로거라고 생각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는데. 나는 웹 서비스를 기획하는 컨설턴트고 그런 일을 하는 회사의 대표라는 정체성으로 블로그에 글을 쓰고 있다. 뭐 그런 의도를 포괄해도 당신은 블로거다라고 주장하면 할 말 없지만.

어쩌면 나는 '블로거'라는 의미를 다소 딱딱하게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그래서 남들은 다 나를 블로거라고 부르는데 나 혼자 '블로거 아닌데...'라고 생각하고 있는지 모른다. 뭐 그럼 어떤가. 어쨌든 나는 "블로거 블루문"보다는 "웹 서비스 컨설턴트 블루문"이 내 정체성에 훨씬 맞다고 생각한다.

문득 오래 전에 '블로거'라는 brand - 나는 '블로거'를 브랜드라고 생각한다 - 와 관련하여 사석에서 했던 이야기가 생각난다. 한 3년 전인 듯 하다. 블로그에 대한 관심이 집중되고 있을 즈음이었는데 모두가 블로그의 정의와 블로거에 대해 열변을 토하고 있는 자리에서 멀뚱하게 앉아 있다 이런 이야기를 했다,

"그런데 왜 싸이월드는 '블로거'와 같은 브랜드를 만들지 않았을까요? 못한 건가?"

이 이야기를 꺼내자마자 좌중은 찬물을 쏟아 부은 듯 조용해졌고 다들 '저 놈 무슨 소리 하는거야? 이 중차대한 블로그에 대한 논의에 웬 싸이월드 브랜드?'라는 표정으로 쳐다 봤다. 마음 약한 나는 "핫핫핫!!! 술 드시죠!!!"라고 대충 무마했다.

싸디안이나 미니플같은 브랜드를 싸이월드도 만들고 싶었을 것이다. 근거 자료가 몇 개 있긴 하지만 내세울 정도로 신빙성은 없어서 그냥 개인적인 의견이다. 1천만이 넘는 회원을 확보한 싸이월드가 그 사용자를 부르는 독특한 이름을 만들고 싶지 않았다면 그게 더 이상한 일이다. 그런데 블로그는 그 서비스가 처음 나오는 시점부터 블로그를 사용하는 사람들을 '블로거(blogger)'라고 불렀고 지금은 태연히 그 브랜드를 언급한다. 반면 싸이월드는? 참 이상하고, 납득이 되는 측면도 있고 그러면서 또한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다. 왜 싸이월드는 그 사용자 - 정확히 말하자면 미니홈피 사용자들을 공통적으로 지칭하는 어떤 표현을 만들지 못했을까?

바로 그 지점이 싸이월드의 현재를 시사하는 게 아닌가 한다. 사용자들이 스스로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블로그라면, 싸이월드는 공급자가 만들어가는 문화라는 측면이 매우 강했기 때문 아닐까. 그래서 나중에라도 적절한 이름을 붙여 주고 싶었지만 이미 사용자들은 '그냥 쓰면 되지 무슨 얼어죽을 브랜드 네이밍?'같은 생각을 하지 않았을까.

별 다른 근거 없이 내가 평소에 생각했던 것으로 이야기를 푼 것이니 잘못되었을 수 있다. 아니다, 잘못되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 이번 대한민국 블로거 컨퍼런스에 거의 50%에 가까운 신청자들이 참석하지 않은 사태 - 주최자 입장에선 정말 사태다 - 의 근본 이유를 앞서 이야기한 브랜드라는 측면에서 찾아야 하지 않나 싶다. NHN과 다음이라는 국내 굴지 웹 서비스 기업이 사용자를 모집했는데 절반이나 참석하지 않다니. 아마 그들이 인지하는 블로거라는 브랜드에 대한 생각과 주최측에서 생각하는 블로거에 대한 생각이 많이 달랐기 때문은 아닐까. 이런 화두 하나는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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