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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eb Insight

결과가 뻔한 리서치 돈 써서 하는 이유

Read & Lead 블로그의 책 리뷰에 다음과 같은 문단이 있다,


방대한 리서치가 간혹 허무해 보이는 뻔한 결론으로 귀결되는 것.

(출처 : 직관해도 될 것을 분석하다)


이 글은 조사 분석(리서치)이 필요치 않은 상황에 대해 비판하고 있다. 많은 비용을 사용하여 조사 분석한 결과가 뻔한 결론인 예는 수없이 많다. 컨설턴트들은 그런 경험을 가장 많이 하는 직업 중 하나다. 고객이 어떤 문제를 이야기할 때 여러가지 방법론을 사용하여 조사하지 않아도 대안이 무엇임을 아는데 굳이 조사 분석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위 블로그에서 이야기하듯 비선형적인 혁신을 선형적 방법으로 분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칠고 직관적인 이야기 대신 논리적이고 조작적인 방법으로 설명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1. 우리 모두가 직관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 수준이 일치하는 것도 아니다. 어떤 주제를 직관에 근거하여 이야기할 때 선문답으로 흘러가기 쉽다. 주제에 따라, 상황에 따라 직관이 필요한 경우와 분석이 필요한 경우가 있다고 둘러 이야기하지 말자. 만약 그렇다면 직관이 필요한 곳에 조사를 한 것이고, 조사가 필요한 곳에 직관을 들이댄 것이니 조사 분석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니다. 똑같은 상황에 대해 어떤 사람은 직관이 필요하다고 말하며 조사 분석 따위는 필요없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은 조사 분석없이 무슨 근거로 직관을 받아 들이냐고 반발하기도 한다. 직관은 매우 주관적인 경험일 수 있다. 조사 분석은 객관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다만 주관적이지 않다는 인식을 공유하는 게 조사 분석이다. 그래서 뻔한 결론이 나올 것을 예상하면서 조사 분석을 한다.

직관을 이야기하기 좋은 '성공의 예를 가진 사람(스티브잡스같이)'조차 자신의 사례가 보편적이지 않을 수 있음을 자주 이야기한다. 그런 사람들도 공개 석상에 이야기할 때 여러가지 자료를 근거로 제시한다. 하물며 성공의 배경이 없는 사람들은 어떠하겠는가? 직관은 철학이 크게 작용한다. 역사가 반복된다고 믿는 사람은 직관으로 "저건 안돼!"라고 단언한다. 그게 맞는 경우도 많다. 그러나 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모든 역사는 일치하지 않는다. 직관을 맹신하는 사람조차 다른 사람들도 직관에 의존할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어떤 사람은 직관을 믿지만 외부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이런 차이 때문에 직관을 기준으로 대화하는 것은 많은 경우 대화 자체의 의미를 상실한다.


2. 조사 분석을 통해 이해한다.

미국의 한 작은 도시에서 벌어진 일이다. 이웃집 숟가락이 몇 개인지 알고 지낼 정도로 친근하게 지내던 마을은 한 사건으로 인해 두 개의 극단적 집단으로 대립하게 되었다. 도시의 생태 지역을 관통하는 새로운 고속 도로 건설에 대해 개발론자와 환경론자의 대립이 시작되었다. 환경론자들은 그 생태 지역에 밀집해 있는 희귀종인 <블루 팬더>라는 나비의 생태에 새로운 고속도로가 결정적 타격을 줄 것이라 주장했다. 반면 개발론자들은 도시의 발전을 위해 새로운 고속도로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두 집단의 갈등은 끝날 기미가 없었고 그 수준이 도를 넘어서 물리적 충돌까지 발생했다. 결국 시장은 외부의 분쟁 조정 전문가를 불러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 분쟁 조정 전문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양 집단에서 가장 극단적 주장을 하는 사람을 토론에서 제외하는 일이었다. 그 이후 각 집단은 회의에 참석하기 전에 자료를 제출해야 하고 자료를 찾는 과정을 함께 해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회의 중에 미리 협의되지 않은 자료를 제출하는 것은 용납되지 않았다.

외부 분쟁 조정 전문가는 이런 과정을 통해 두 집단의 갈등을 줄이고 대화와 토론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했다. 무려 2 년 간 이런 노력을 지속하여 결국 마을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외부 분쟁 조정 전문가가 개입하기 전에 20 년 가까이 마을 사람들은 싸웠고 그들이 개입한 후 문제를 해결하고 조정하는데 걸린 시간도 2 년이었다. 그 결론이 무엇이었을 것 같은가? 뻔한 것이었다. 새로운 고속도로를 만드는 대신 기존 고속도로를 다목적으로 재건설하고 생태계에 문제가 되는 지역을 우회하며 것이었다. 결코 혁신적인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이 도시 사람들은 오랜 시간에 걸쳐 나온 이 결과에 만족하고 승복했다. 최초 갈등이 발생했을 때 왜 사람들은 뻔한 결론을 받아 들이지 못했을까? 개발론자들도 생태계 보존을 위해 어느 정도 물러설 생각이 있었고, 생태주의자들도 마을 발전을 위해 어느 정도 희생을 감당할 생각이 있었다. 그런데 왜 당시에 이런 타협점에 이르지 못했을까? 이 도시에서 벌어진 사건에서 조사 분석이라는 방법론이 한 역할은 객관적인 사실을 나열하여 누가 더 옳은지 증명하는 것이 아니다. 두 개의 극단적 주장을 하며 분열된 집단이 서로 이해하는 대화의 수단이었던 것이다. 

(참고 : 미국 오리곤 주 유진시의 고속도로 갈등, PDF, 17p, 4. 미국 유진시의 조정을 통합 합의 형성 성공 사례)


3. 수준을 맞춘다.

소프트웨어 분야에서 몇 년 전 크게 유행했던 애자일 개발 방법론을 도입하려는 회사가 있었다. 대표이사는 애자일 개발 방법론에 능숙한 개발자를 구했고 그는 새로운 팀을 구성했다. 팀장은 애자일 개발 방법론으로 새로운 소프트웨어 개발 프로젝트에 착수했고 1 년 정도 시간이 지나 베타 버전을 발표할 수 있었다. 사용자들의 반응은 좋았고 더 나은 버전이 나올 것이며 상용화를 곧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 년이 또 지났다. 몇 개의 소프트웨어가 더 나왔고 사용자들의 반응은 여전히 좋았지만 성과가 없었다. 상용화를 향한 일정은 계속 지연되었고 구체적인 성과는 나오지 않았다. 그저 몇 개 소프트웨어가 더 나왔을 뿐이다. 결국 팀은 해체되었고 소프트웨어는 사라졌다.

주어가 없는 이 사례를 듣고 '아 그 서비스?'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맞다, 그 서비스다. 애자일 개발 방법론은 직관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마트한 개발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하며 어떻게 토론하고 협업해야 하는지, 무엇을 혁신 과제로 삼아야 하는지 말하는 중요한 개발 방법론이다. 고전적인 개발 방법론의 문제점을 지적하는데 멈추지 않고 대안을 제시하고 있다. 100 명의 개발자가 모여 고전적이지만 비효율적인 방법으로 개발하지 말고, 소수라도 직관과 혁신을 위해 신속하고 현명하고 창의적으로 효율성을 높이는 방법을 이야기한다. 정말 멋진 이야기 아닌가. 그러나 이 방법론은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애자일 개발 방법론을 통해 높아진 개발자 수준이 다른 조직에게 영향을 끼칠 때 큰 반발이나 비효율로 동작할 수 있다는 점이다.

새로운 소프트웨어를 빠르게 효율적으로 만들었지만 여전히 QA팀은 과거 방식으로 코드를 검수하고 있다거나 마케팅팀은 이 소프트웨어의 상용화를 위해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지 모른다거나 경영팀은 어떤 기준으로 성과 측정을 해야할지 모른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실제 그런 상황이 되었을 때 조직은 어떻게 대응해야할까? 애자일 개발 방법론에서 QA나 마케팅, 경영조직에 대한 언급이 간혹 나오긴 하지만 결국 그것은 개발 방법론에 대한 이야기지 경영 전반에 대한 것은 아니다. 수준이 다른 조직에서 그 수준이 더 크게 벌어지면 결국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다. 좋은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도 그것을 판매하고 투자를 받고 시장을 장악하는데 실패하는 것이다. 

조사 분석은 그런 수준을 맞추는 행위로 동작하기도 한다. 애자일 개발 방법론으로 개발 조직을 혁신하는 팀을 위해 또 다른 조사 연구가 필요하다. 조직의 다른 부분은 어떻게 혁신해야 하는지 조사하고 토론하고 대안을 만들어야 한다. 천천히 모든 조직의 수준을 맞춰야 한다. 조직의 균형 발전을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대화 가능한 수준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너무 큰 수준 차이가 발생하면 조직은 더 이상 대화가 불가능하게 된다. 


결론이 뻔한 어떤 주제에 대해 조사 분석(리서치)를 하는 이유는 더 많이 존재한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이유만 봐도 조사 분석이 갖는 의미는 충분하다. 조사 분석을 취사 선택으로 받아들이는 태도가 더 문제일 수 있다. 조사 분석은 객관적 자료 취합이 아니라 토론을 위한 과제 선정이고, 비전에 대한 검토이며, 어떤 경우 조직에 대한 섬세한 판단이다. 그것을 필요에 따라 선택 가능한 것으로 치부할 때 조사 분석은 쓸데 없는 짓이 되고 만다. 직관과 조사 분석은 함께 존재하는 것이지 대립하거나 취사 선택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뱀꼬리...

현업 컨설턴트 입장에서 조사 분석 관련하여 가장 불쾌한 상황은 이런 것이다. 고객이 "왜 조사 분석에 돈을 써야 하죠?"라고 물은 후 "그거 근거가 뭐요?"라고 연속으로 묻는다. 다른 회사 사례를 설명하고 자료를 주면 "우리 상황이랑 안 맞는 것 같은데?"라고 대답한다. 머리에서 김이 솟는다. 그럼 왜 제게 컨설팅을 의뢰하는 겁니까?라고 물으면 "당신이 전문가니까요."라고 말한다. 그래서 조사 분석이 필요함을 설명하면 다시 "근거가 뭐요?"라고 묻는다. 딱 패 버리고 싶은 고객이다. 조사 분석을 컨설턴트의 무지함을 감추고 추가 비용을 발생시켜 돈 빼 먹으려는 수작으로 굳게 믿고 있는 사람이다. 컨설팅에 대한 불신 문제가 아니라 <조사 분석>을 종이 쪼가리에 뻔한 결과를 보여주는 쓸데없는 행동이라 확신하는 게 문제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실제 그런 짓을 하는 컨설턴트들이 굉장히 많다는 것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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